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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20세기 소녀' 달콤하고 폭신한 영상편지

[리뷰] '20세기 소녀' 달콤하고 폭신한 영상편지

발행 :

전형화 기자
사진

그러니깐 그 애를 좋아했던 모양이다. 아니 사실은 많이 좋아했다. 생각하면 보고 싶고, 보고 싶으면, 만나고 싶다. 남들은 누군가를 좋아하면 잠도 안오고 살도 빠진다는데, 여전히 피자 2판은 먹는다. 그래도 이 마음은 진짜다. 왜냐하면 심장이 아프니깐.


'20세기 소녀'는 그런, 그랬던, 과거의 내가 보내는 영상편지다.


밀레니엄을 앞둔 1999년. 17살 소녀 나보라는 심장 수술을 위해 미국으로 떠난 절친한 친구 연두를 위해 그녀의 짝사랑 상대 백현진을 관촬한다. 키가 몇인지, 발사이즈는 몇인지, 좋아하는 가수는 누구인지. 그런 현진 옆에는 친한 친구 풍운호가 늘 따라다닌다. 풍운호도 백현진 못지않게 키 크고 잘 생겼다.


보라는 백현진이 방송반에 지원한다는 소리에 응모했다가 덜컥 붙고만다. 정작 백현진은 방송반 지원을 포기하고, 풍운호만 방송반에 합격했다. 그래도 보라는 백현진을 조사하기 위해, 풍운호에게 백현진에 대해 묻는다. 그러면서 점점 보라에게도 뜻밖의 감정이 찾아온다.


심장수술을 무사히 마친 연두가 돌아오고, 네 사람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그리고 뜻밖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17살 연두의 마음은 21세기에무사히 전해질 수 있을까.


'20세기 소녀'는 달달한 대만 청춘영화 같다. 소녀들의 우정, 소년들의 우정, 그리고 첫사랑. 우정과 사랑의 구분이 애매하던 시기, 사랑보다 우정이 앞서야 할 것 같은 때. 그럼에도 우정을 위해 사랑을 응원했던 시절. 달달하고 폭신한 대만 카스테라 같다.


이 달달한 20세기에는, 씁쓸한 현실은 없다. 아픔마저 달콤하다. 햇살 가득한 방송반의 풍경도, 선생님 몰래 술에 취했던 수학여행도, 비와 함께 내리는 설렘도, 이별의 놀이공원도, 만남의 기차역도, 모두 파스텔로 그려졌다. 함께 먹던 아이스크림도, 자두도, 달콤하다. 그렇기에 이 세계 속 등장인물들은 만화 속 주인공들 같다. 마치 아다치 미츠루 만화 속 주인공들 같다. 좋아하는 것도 서툴고, 아파하는 것도 서툴고, 그래도 직진이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상황, 본 것 같은 인물들 같은 건, '20세기 소녀'가 20세기에 유행했던 아다치 미츠루 만화 같고, 21세기에도 달달해서 사랑받는 대만 청춘영화 같아서다.


그래도 좋다. 삐삐로 안부를 묻던 시절, 비디오 테이프로 영화를 보던 시절, 비디오 카메라로 영상을 찍던 시절, 그 시절의 첫 사랑과 그 시절의 추억이란 원래 뻔하고 따뜻하고 달달한 법이다. '20세기 소녀'를 연출한 방우리 감독은 20세기에서 21세기로 보내는, 비디오테이프에 담긴 영상편지를 달콤하게 가슴 아리게 잘 전달했다.


나보라를 연기한 김유정과 풍운호를 연기한 변우석, 연두 역의 노윤서, 백현진 역의 박정우. 네 주인공은 모두 사랑스럽다. 악의가 없는 세상 속, 만화 속 주인공들처럼 사랑스럽다. 아다치 미츠루 'H2'가 인생만화인 사람이라면 이들이 몹시 반갑고, 몹시 사랑스러울 것 같다. 김유정이 이 만화 같은 세계로 관객을 초대한다면, 변우석이 설레게 이끌고, 박정우가 힘차게 달리고, 노윤서가 건강히 안녕을 전한다. 성인 나보라를 연기한 한효주는, 마지막 주름 잡힌 민낯이 무척 좋다. 20세기에 본 영화 '정사'와 21세기에 본 '정사'가 다른 영화라는 걸 알기 충분할 만큼 표정이 깊다.


'20세기 소녀' 음악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달파란의 음악은 그 시절을 추억하고, 그 시절을 설레게 만든다.


운명의 분기점은 언제나 이쪽의 사정과는 상관없이 느닷없이 찾아온다. 뻔한 것 같지만, 그런 법이다. '20세기 소녀' 결말도 그렇다. 그렇기에 사랑스럽다.


10월21일 넷플릭스 공개. 12세 이상 관람가.


전형화 기자 aoi@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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