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인터뷰]

'어쩔수가없다'부터 '보스'까지. 추석 연휴 극장가엔 배우 이성민이 있다.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의 한 카페에서 영화 '어쩔수가없다'(감독 박찬욱)의 배우 이성민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어쩔수가없다'는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이병헌 분)가 덜컥 해고된 후, 아내와 두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이성민은 재취업이 절실한 제지 업계 베테랑 '범모'로 분했다.
이성민은 '어쩔수가없다'를 보고 "역시 나의 상상력은 부족하구나"라고 느꼈다고. 그는 "사실 일반적인 서사 구조일 거라고 생각했다. 직업을 잃은 실직자가 경쟁자를 죽이는 일반적인 스토리를 전개 될 줄 알았는데 감독님의 이야기 방식은 좀 다른 것 같더라"라고 말했다.
'어쩔수가없다'로 박찬욱 감독과 첫 호흡을 맞추게 된 "이 작품을 선택한 첫 번째 계기는 박찬욱이었다. 그는 "시나리오에 박찬욱이라고 적혀 있어서 깜짝 놀랐고, 처음엔 '내가 만수인가' 싶었다"고 웃으며 "언젠가는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 '드디어'라는 생각과 함께 '어쩌지'라는 걱정이 몰려왔다. 그의 상상력을 내가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지점에서 걱정이 되더라. 감독님이 구상하고 있는 캐릭터가 있을 텐데 그의 상상만큼 나도 그런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고민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이성민은 촬영 도중 다른 감독들과 특별한 차이점은 못 느꼈다면서도 "디렉팅이 면도날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면도날을 어떻게 피하지?' 하는 걱정도 들었다. 내가 놓치고 있던 것을 파고들 때 감탄했다"며 "저는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에 대한 디렉팅을 받을 때 반갑고 고맙다. 그때부터 감독님을 신뢰하고, 혹시 실수하더라도 감독님이 보완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근데 박찬욱 감독님 앞에서 내 약점이 드러나는 것이 겁나더라. '나의 연기에 실망하면 어쩌지'라는 생각도 들고, 다른 배우들도 그랬을 것"이라며 "저도 동네에서 주먹깨나 썼는데 어느 날 산속에 가니까 도사 한 분이 계시더라. 다리도 후달리고, 박 감독님 처음 만날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성민은 '범모' 역할과 닮은 구석이 없다면서 "아날로그를 선호하는 캐릭터긴 하지만, 저는 평소에 취미가 없다. 범모는 '덕후' 기질이 있다면 저는 그런 지점이 별로 없다"며 "늘 연기하다 보면 평범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힘들다. 드라마틱한 상황에 부닥치면 편한데 평범한 일반인을 연기하는 게 힘들다. 범모도 그런 범주에 속하는 인물이다. 무기력하고, 무능력하고, 지쳐있는 그런 캐릭터를 내 안에서 찾는 게 좀 힘들었다. 분장팀에서도 애를 써줬고, 어떻게 하면 평범한 사람의 무기력함을 보여줄까 고민했다"고 전했다.
이어 닮은 점은 직업에 대한 애착이라고 강조했다. 이성민은 "극 중 아라(염혜란 분)가 실직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문제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그 말이 설득이 안 된다. 저를 비춰봤을 때 범모만큼 오랫동안 이 일을 해왔고, 이 일밖에 할 줄 모른다. 그 부분은 비슷한 것 같다"며 "어느 날 '배우를 못 하게 되면 어쩌지', '무슨 직업으로 먹고 살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위험한 생각이긴 한데 그때 이 일은 단순히 내가 한 달에 얼마를 벌기 위해 하는 노동이 아니라 실존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 지점에서 범모를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성민과 염혜란과 부부 호흡을 맞춘 데 대해 "대세 배우들과 작업할 기회가 많다. 염혜란 씨는 연극을 할 때 20년 전에도 알고 있었고, 공연을 본 적도 있었다. 그때도 감탄했고, 제 머릿속에 각인됐던 배우라서 여전히 놀라운 지점을 보여주더라. 현장에서도 굉장히 적극적이고, 준비도 많이 해왔다"며 "(염혜란이) 대세가 된 걸 보고 '역시. 어디 숨어있어도 다 찾아내는구나' 싶었다"고 칭찬했다.
앞서 이성민은 염혜란의 전화를 받았고, "영화를 봤는데 죽겠다고 하더라"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그는 "잘하는 배우들이 엄살 부리는 경우가 많다. 자기가 찍은 작품을 보고 만족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이병헌도 두말할 나위 없고, 영화 보면서도 '저런 표정은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근데 (손) 예진 씨가 굉장히 신선하고 좋았던 것 같다. 오랜만에 영화를 하신다고 하는데 예진 씨 피폐해진 얼굴을 보고 '저런 얼굴도 있구나', '저게 가능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다른 배우의 칭찬을 이어가던 이성민은 자기 연기에 대해서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며 "흉터처럼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기가 찍은 작품을 보고 만족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다. 제가 지나간 작품을 안 보는 게 흉터를 들춰보는 느낌이기 때문"이라며 "매번 흉터를 남게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데 지나고 나면 아쉽고, '왜 좀 더 치열하지 못했을까'라고 후회한다. 그래서 지나간 작품은 잘 안 본다"고 말했다.

또한 이성민은 추석 대목에 개봉한 '보스'에서도 짧고 굵은 활약을 펼친다. 그는 "'보스'는 촬영한 지 꽤 됐다. 제 의지는 아닌데 이렇게 여러 편 개봉하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고 말했다.
'보스'의 주연인 조우진은 인터뷰에서 이성민과 영화 '보안관'에서 만났던 인연을 언급하며 "'보안관' 때도 많은 배우가 고민 많이 하면서 많은 장면을 회의하며 작업했었는데 그 선두에 선배님이 계셨다. 선배님과 오랜만에 작업을 같이하다 보니, '보안관' 생각이 많이 났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보스'에서 너무 정성스럽게 열심히 하셨고, (이) 성민 선배님이 출연해 주신다는 말을 듣고 전화를 드려서 감사하다고 했더니 '내가 하는 작품에 누가 도와준다고 하니까 그렇게 고맙더라. 그래서 나도 이번에 결심했다', '너 한다니까 내가 한다'고 하시더라"라며 "'보스'의 오프닝이 빛날 수 있었던 것은 이성민 선배의 열연 덕이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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