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한번 스크린이 뜨거워진다. 영화 '암살자(들)'은 2023년 연말을 달궜던 영화 '서울의 봄' 이후 우리나라 역사의 한 이야기를 다시 끌고 와 관객 앞에 던진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잘 몰랐던 이야기. 그 시대를 살아본 사람도, 책의 한 페이지나 다큐멘터리의 장면으로 봤던 사람도 모두 뜨겁게 끌어들인다.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영부인 저격 사건의 의혹과 배후를 추적하는 이야기다. 유신독재가 정점이던 1974년,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거행된 8.15기념행사에서 있었던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을 스크린으로 가져와 픽션을 섞어 재구성했다. '서울의 봄'의 배경인 1979년 12월 12일 군사 반란 이전의 이야기다.
재일 조총련계 문세광이 식장에 참석했다가 박정희 대통령이 연설하고 있는 연단을 향해 권총을 발사했으나 박 대통령은 무사하고 육영수 여사가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한 사건이다. 당시 이 사건으로 국내의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됐다. 유신독재를 반대하던 시위는 반공 시위로 변했고, 반일 감정이 커지며 일본에 대해 진상규명과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도 이어졌다. 이 사건의 배후 등에 대해 많은 의혹이 있었지만 일단은 문세광이 사형을 당하며 사건이 일단락됐지만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사건이다.
'암살자(들)'은 이 역사적 사건을 아주 영리하게 스크린에 끌고왔다. 당시 저격 사건을 현상에서 본 경찰 철구(유해진 분), 그 현장에서 직접 취재하며 눈으로 사건을 목격한 영일(이민호 분) 그리고 유신독재 시절 언론사 정치부 부장으로 취재하고 글을 쓰는 재환(박해일 분)의 이야기를 얽으며 사건의 진실에 다가간다. 암살자의 5발의 총 중에 한 발은 오발, 한 발은 불발인 가운데 사건 현장에 있던 6발의 총알 자국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추척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육영수 여사뿐 아니라, 그날 현장에서 사망했던 여고생의 죽음까지 함께 이야기를 더한다.
'암살자(들)'은 유신독재 시절의 이야기로 관객의 감정을 건드린다. 사건에 기대 너무 건조하게 가지도 않고 감정에 호소하며 신파로 가지도 않으며 담백하며 130분이 넘는 시간을 달린다. 허진호 감독의 연출력이 이 영화의 중심을 잡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을 끌고 달린다. 역시 '허진호 감독'이라는 이야기가 절로 나온다.

영화의 백미는 배우들의 연기다. 특히 이 영화는 박해일의 얼굴과 담백한 연기가 돋보인다. 유신독재 시절 기자의 모습, 기자로서의 신의와 정론직필을 위해 맞서는 모습을 그려내며 영화의 중심을 잡는다. 너무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게 재환을 그려내며 그 시절을 살아가던 한 사람으로서, 직업인으로서 영화를 누비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묵직한 힘을 드러낸다. 출연진도, 특별출연도 많은 이 영화의 무게를 잡아주며 다른 배우에게 판을 깔아주면서도 클로즈업될 때마다 빛나는 연기를 펼친다. 영화 '덕혜옹주' 이후 10년 만에 허진호 감독을 다시 만난 박해일은 완벽한 시너지를 발휘했다.
유해진은 역시 유해진이다. 올해 영화 '왕과 사는 남자'로 이미 1600만 명의 관객과 만난 그는 '암살자(들)'로 다시 한번 국민 배우 타이틀을 확고히 할 듯하다. 유해진은 특유의 목소리와 연기로 진실을 추척하며 관객과 함께 달린다.
이민호는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반짝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민호는 자신감 가득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쟁쟁한 선배 배우들 사이에서도 제 몫을 톡톡히 해낸다. 영화 초반, 영일 캐릭터처럼 '낙하산'으로 보이던 이민호는 점점 영화가 진행되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특유의 능글맞은 모습과 진심 가득한 모습 두가지를 모두 담고 영화에 매력을 더한다.
영화 속에는 정말 많은 배우들이 등장한다. 조연과 특별 출연 우정 출연까지 오가며 낯익고 반가운 얼굴들이 등장해 눈길을 끈다. 영화의 힘을 더하는 배우들도 있지만 일부 배우들은 의외의 반응을 얻을것 같기도 하다.
영화 제목인 '암살자(들)'이 왜 그냥 '암살자'나 '암살자들'이 아닌지도 영화를 보고나면 의문이 풀린다.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방향성을 제대로 담아낸 제목이다.
'암살자(들)'을 보고나면 절로 '서울의 봄'이 떠오른다. '서울의 봄' 제작사인 하이브미디어코프는 서울에 봄이 오기전의 이야기로 다시 한번 우리가 지금 공기처럼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 후반부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위해 몸을 내던지는 기자들의 모습 속에서 오늘의 모습을 비춰 반성하게 되기도 한다. 마치 표어 속, 역사책 속 남아있는 장면들이 살아서 우리에게 다가오고 그 이야기들이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131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지루함 없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좋은 연출과 배우들이 만난 웰메이드 영화 '암살자(들)'이 올 추석 얼마나 많은 관객의 마음에 닿을지 주목된다.
9월 23일 개봉.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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