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이저리그에서 30승 투수를 '멸종(滅種)'시킨 구단주들의 ‘비법(秘法)’을 소개한다.
지난 2006년 월드시리즈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가 격돌했다. 결과는 세인트루이스가 4승1패로 우승하며 통산 10번째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됐다. MVP는 단신의 유격수 데이비드 엑스타인(174cm, 80kg)이 차지해 ‘인간 승리’의 주역으로 눈길을 끌었다. 데이비드 엑스타인의 경우를 보면 넥센 출신으로 한국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하는 피츠버그 강정호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게 된다.
2006시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는 지난 1968년 이후 38년 만에 처음으로 월드시리즈에서 맞붙었다. 디트로이트의 홈 구장인 코메리카 파크에서 열린 2차전에서 느닷없이 디트로이트의 좌완 케니 로저스가 '파인 타르(Pine Tar, 송진)'를 이용한 부정 투구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뉴욕 양키스, 메츠, LA 다저스 등 빅 마켓(Big Market) 팀들의 탈락으로 팬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가던 2006 월드시리즈가 화제의 대상으로 떠오르게 됐다.
케니 로저스는 적어도 경기 시청률에 있어서만큼은 혁혁한 공을 세웠는데 디트로이트가 승리한 1승이 케니 로저스가 따낸 승리였다. 케니 로저스는 42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규시즌에 17승을 거두었고 당시 그의 승리는 월드시리즈 역사상 최고령 승리 투수로 기록됐다. 그러나 경기 후 그가 투구하는 왼손 엄지손가락 옆에 ‘파인 타르’로 보이는 물질이 발라져 있는 것이 사진에 잡혀 공개되면서 문제가 됐다. 박찬호의 텍사스 시절 동료이기도 했던 케니 로저스는 후일 금지약물인 스테로이드 사용설에 휩싸이기도 했다.

2006월드시리즈의 38년 전인 1968년 월드시리즈에서 펼쳐진 세인트루이스와 디트로이트의 정상 격돌에서는 디트로이트가 7차전 접전 끝에 세인트루이스를 4승3패로 제압하고 정상에 올랐다.
그런데 메이저리그 역사에 있어서 디트로이트가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된 1968 시즌은 세계 야구의 흐름을 바꿔놓은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해 아메리칸리그 디트로이트의 우완 데니 맥레인(Denny McLain)은 페넌트레이스에서 31승6패를 기록했다. 41경기에 선발 등판해 28완투에 6완봉이었다. 평균 자책점도 1.96이었는데 현대 야구의 관점에서 볼 때 놀라운 것은 무려 336이닝을 던졌다는 것이다. 데니 맥레인은 다음 시즌인 1969년에도 325이닝을 던져 24승9패 평균 자책점 2.80을 기록했다. 2년 연속 300이닝 이상을 투구한 것이다.
데니 맥레인은 1968시즌 24세의 나이에 메이저리그 역사상 ‘마지막 30승 투수’가 됐다. 이후 단 한 명의 투수도 30승 근처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그 해 내셔널리그의 월드시리즈 상대 세인트루이스에도 방어율 1.12라는 엄청난 위력을 보인 밥 깁슨이 버티고 있었다. 밥 깁슨은 22승9패를 기록했는데 무려 28경기를 완투했고 완봉이 13게임이나 됐다. 물론 투구 이닝 수도 304 2/3이닝으로 300이닝을 넘겼다. 밥 깁슨의 평균 자책점 1.12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한 시즌 300이닝 이상 던진 투수들 중 가장 낮은 기록이다. 밥 깁슨도 다음 해인 1969시즌 연속으로 300이닝 이상을 투구했다. 35경기에서 314이닝을 던지며 20승13패, 평균 자책점 2.18을 기록했다.
당연히 1968 월드시리즈의 최대 관심사는 과연 '어떤 투수가 팀을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 것인가'였다. 1차전부터 두 ‘철완(鐵腕)’이 맞붙었는데 나이 차이가 났다. 데니 맥레인이 1944년생으로 24세, 밥 깁슨은 1935년생으로 33세였다. 그러나 1차전 승리는 세인트루이스의 30대 베테랑, 밥 깁슨이 차지했고 데니 맥레인은 패전 투수가 됐다. 마지막 7차전에서 밥 깁슨이 패전 투수가 되며 세인트루이스의 패배로 끝났고 7차전 승리 투수인 믹키 로리치가 월드시리즈 3승을 기록하며 MVP가 됐다.

그런데 왜 1968시즌 후 왜 메이저리그에서 30승 투수가 사라졌을까? 투수들의 어깨를 지나치게 보호하려는 관계자들과 오래 선수 생활을 하기 위해 알아서 몸을 사리는 선수들의 자세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무엇보다도 1968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마운드의 높이가 15인치(약 38.1㎝)에서 10인치(25.4㎝)로 낮아진 것이 결정적인 이유이다.
메이저리그 구단주들은 30승 투수의 출현에 300이닝 이상을 던지고도 평균 자책점이 1.12에 불과한 투수까지 나오는 등 투수력이 타력을 절대적으로 압도하자 야구에 대한 팬들의 흥미가 사라져 가는 것을 심각하게 우려했다. 메이저리그와 프로 풋볼(NFL)의 인기 경쟁도 문제였다. 연구와 고민 끝에 나온 방안이 마운드를 낮춰서 타자들에게 유리하게 만들면서 공격력을 증진시키는 것이었다.
당시 LA의 다저스타디움 등 몇몇 구장은 마운드 높이가 무려 20인치(50.8㎝)에 달했다고 한다. 현재 10인치의 두 배이다. 상상을 해보라. 타자가 서 있는 평지를 기준으로 50.8cm의 높이에서 투수가 아래로 강속구를 꽂아 넣는다고 가정하면 그 각도에서 번트를 대기도 힘들다. 샌디 쿠팩스, 돈 드라이스데일 등 위대한 투수가 나온 배경에는 이런 여건도 있었던 것이다.

구단주들의 작전은 마운드 높이를 낮추는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비공식적으로 심판들에게 스트라이크존을 규정집에 나온 것 보다 더 좁게 적용하라고 주문했다. 일방적으로 타자들에게 유리하고 투수들에게 불리한 조건이 만들어지게 됐다.
1968년 시즌이 끝난 겨울 양 리그에 각각 10개였던 팀 수가 12개로 늘어났다. 아메리칸리그에 캔자스시티와 시애틀, 내셔널리그는 샌디에이고와 몬트리올(현 워싱턴)이 합류했다. 그래서 마운드가 낮아진 1969시즌부터 양 리그가 각각 2개의 디비전으로 처음 나뉘고 디비전 1위 팀 간 5전3선승의 플레이오프를 거쳐 월드시리즈가 펼쳐지게 된 것이다. 플레이오프를 거친 첫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1969년 뉴욕 메츠이다.
마운드가 낮아진 첫 해인 1969년 양 리그의 평균 자책점이 20% 이상 나빠졌다. 그리고 1973년에 아메리칸리그가 지명타자(DH) 제도를 채택하고 타자에게 유리한 구장들이 늘어나면서 야구는 팬들을 구장으로 이끄는 타력 우선의 게임으로 변모하고 있다. 케니 로저스의 부정 투구 의혹을 다른 각도에서 보면 타자들이 합법적으로 사용하는 '파인 타르'를 왜 투수들에게는 금지시켰는가 항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구단주들의 작전은 1968년의 팀 당 평균 관중 110만명에서 38년 후인 2006시즌 250 만명으로 두 배 이상 늘이는 흥행 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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