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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호의 MLB산책] 다저스, 브랜던 비치의 잠재력에 베팅

[장윤호의 MLB산책] 다저스, 브랜던 비치의 잠재력에 베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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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다저스와 1+1 계약을 체결한 브랜던 비치. /AFPBBNews=뉴스1


지금으로부터 21년 전 이야기다. 1994년 LA 다저스는 스프링 트레이닝캠프가 끝난 뒤 젊은 ‘파이어볼’ 투수 두 명을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로 직행시켰다. 그중 한 명이 ‘코리안특급’ 박찬호였고 또 한 명은 그 전해 드래프트에서 알렉스 로드리게스에 이어 전체 2번으로 지명된 우완투수 대런 드라이포트였다. 시속 96마일의 불같은 강속구를 뿌리는 이들 두 영건의 메이저 직행은 당시 큰 뉴스 중 하나였다.


하지만 당시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 그때 당시 아직 빅리그 마운드에 오를 준비가 덜 됐던 박찬호는 구원투수로 단 두 경기에 나선 후 약 보름 뒤 더블A 샌안토니오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해를 샌안토니오에선 보낸 박찬호는 1995년에는 트리플A 앨버커키에서 시즌을 마치는 등 2년간의 혹독한 담금질을 거쳐야 했다. 그리고 그러한 인고의 시간들은 결국 1996년부터 2001년까지 6년간 다저스에서 80승(54패)을 거두는 달콤한 열매를 안겨줬다.


반면 아직도 대학야구 역사상 가장 뛰어났던 투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드라이포트는 계속 빅리그에 남았고 루키시즌을 27게임에서 승리 없이 5패6세이브, 평균자책점 6.21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는 부상으로 인해 그 이듬해 시즌 전체를 뛰지 못했고 1996년 복귀한 뒤엔 1997년까지 다저스의 셋업맨으로 활약했다. 그리고 1998년 선발로 전환, 2000년까지 3년간 선발투수로 33승34패를 기록한 뒤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었고 그해 오프시즌 다저스와 5년간 5,500만 달러에 재계약했다.


하지만 드라이포트의 커리어는 ‘부상’이라는 악몽의 연속이었다. 두 차례나 팔꿈치 인대재건수술(토미 존 수술)을 받은 것을 포함, 기억하기도 어려울 만큼 수없이 수술대 위에 올라야 했다. 결국 메이저리그에서 9년 커리어(부상으로 뛰지 못한 2년은 제외) 동안 113차례 선발 등판을 포함, 274게임에 나선 드라이포트는 48승60패 11세이브, 평균자책점 4.36의 성적을 남기고 만 32세의 젊은 나이로 은퇴해야 했다. 드라이포트는 은퇴 후에도 선수 시절 투구의 후유증으로 인해 수시로 수술대 위에 올라야 했는데 평생 야구 관련 부상으로 인해 수술을 받은 횟수가 무려 22회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장황하게 드라이포트의 스토리를 되새긴 것은 다저스가 지난 주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출신의 FA 오른손 투수 브랜던 비치(28)와 계약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한때 브레이브스에서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던 비치는 드라이포트와 마찬가지로 두 번이나 토미 존 수술을 받은 뒤 브레이브스에서 재계약을 받지 못해 FA로 풀렸는데 이번에 다저스와 개런티 275만 달러에 1년 계약을 맺었다. 다저스는 2년차인 2016년도 클럽 옵션도 갖고 있는데 옵션이 행사될 경우 올해 몇 경기에 선발로 나서느냐에 따라 내년 연봉을 300만~600만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프링 캠프엔 입소했지만 비치는 당분간 경기에는 나설 수 없다. 이미 한 차례 토미 존 수술에서 돌아왔다가 다시 토미 존 수술을 받아야 했던 그는 아직도 재활 중에 있기 때문이다. 파한 자이디 다저스 단장은 “구단은 그가 어쩌면 올스타 휴식기를 전후해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예상일뿐”이라고 밝혔다.


비치는 아예 자신의 복귀시기를 예상하기도 거부했다. 그는 “이번이 내겐 마지막 도전”이라면서 “다시는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컴백을 시도할 것”이라고만 밝혔다. 그는 현재 평지에서만 공을 던지고 있고 아직 마운드에서 피칭은 시작하지 않은 상태다.


그렇다면 토미 존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고, 당장 경기에 나설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언제 마운드에 오를 지도 알 수 없는 투수를 다저스는 왜 적지 않은 돈을 주고 데려왔을까. 더구나 다저스가 이미 오프시즌에 상당한 거액을 투자해 4, 5선발인 브랜던 맥카시와 브렛 앤더슨을 FA시장에서 영입해 선발진 구성을 완료했음을 감안하면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자이디 단장은 “지난 1월 비치가 평지에서 3차례 공을 던지는 것을 지켜보며 재기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의 잠재력은 매우 뛰어나다”고 밝혔다. 그는 “그가 다치기 전의 퍼포먼스를 보면 그는 3선발급 이상의 선수였다”면서 “우리뿐 아니라 여러 구단이 그를 영입하길 원했다. 그만큼 그의 잠재력은 매우 매력적이었다”고 덧붙였다. 비치는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46게임에 선발로 나서 14승11패, 평균자책점 3.23의 성적을 남겼고 WHIP 1.13, 9이닝당 탈삼진 9.2개를 기록했다. 그는 아직 28세로 충분히 재기를 기대할 수 있는 나이이기는 하다.


사실 다저스가 오프시즌 4. 5선발로 영입한 맥카시와 앤더슨은 모두 부상위험도가 높은 선수들로 분류된다. 4년간 4,800만달러에 계약한 맥카시는 9년간의 빅리그 커리어 동안 시즌 200이닝을 넘긴 해가 딱 지난해 한 번 뿐이었고 100이닝을 넘긴 시즌도 지난해 포함, 5번에 불과하다. 1년간 1,000만달러에 계약한 앤더슨은 지난 3년간은 50이닝도 넘기지 못한 것을 포함, 6년 커리어에서 494이닝을 던지는데 그쳤고 현재도 허리수술에서 회복 중에 있다. 앤더슨은 지난 2011년 토미 존 수술을 받은 경력도 있다.


다저스는 맥카시와 앤더슨이 부상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다면 잠재력에선 3선발급 이상의 구위를 지난 선수들이라는 점에서 매력을 느껴 모험적인 베팅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부상 역사를 살펴볼 때 만약의 경우에 대비한 대책이 있어야 했다. 그런 대비책으로 다저스는 또 한 명의 뛰어난 잠재력과 높은 부상 위험성을 지닌 투수를 선택한 것이다.


자이디 단장은 “모두 평균적으로 한 시즌동안 팀은 10명에서 12명의 선발투수가 필요하다. 5명 가지고는 안된다”면서 “비치가 경기에 나설 때쯤이면 우리의 선발진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를 수 있다. 그는 정말 우리에게 중요한 목표였다”고 밝혔다. 현재로선 선발진이 완성된 상태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기만 한다면 2, 3선발급 역할을 해낼 잠재력이 있는 선수를 미리 붙잡아 차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비치와의 계약에서 2년차 클럽 옵션을 포함시킨 이유도 그 때문이다. 다저스는 올 시즌이 끝나면 2선발 잭 그레인키가 옵트아웃해 FA로 나설 수 있다. 또 5선발 앤더슨은 1년 계약으로 시즌 후 FA로 풀린다. 비치가 올해 거의 뛰지 못하더라도 몸만 완전히 회복될 수 있다면 내년 시즌 선발진에 생길 공백을 메우는데 활용이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다저스는 그동안 토미 존 수술을 받은 선수들을 데려온 적이 몇 번 있다. 대만선수 궈홍즈의 경우는 2010년 올스타로 뽑힐만큼 재미를 봤지만 1년 뒤엔 떠나가고 말았다. 최근 브라이언 윌슨은 2013년 말 다저스와 계약한 뒤 전성기의 피칭을 보였으나 2014년엔 완전히 베팅볼 투수로 전락했고 다저스는 결국 950만달러나 남아있는 그의 연봉에도 불구, 그를 방출하고 말았다.


부상 경력이 있는 선수와의 계약은 언제나 위험성이 따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갈수록 의학기술이 발전되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에는 생각하기 힘들었던 모험적인 계약도 갈수록 가능해지는 시대가 온 것 같다. 아직 마운드에 오를 수도 없는 선수에게 수백만달러의 계약을 선뜻 안겨주는 것은 돈이 많아서라기보다는 충분히 회복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맥카시와 앤더슨, 비치로 이어지는 다저스 수뇌부의 잇단 선발 로테이션 도박이 과연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비치는 지난 21일 다저스 스프링캠프에 도착, 등번호 37번을 부여받았다. 바로 드라이포트의 번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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