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의 우완 송승준(35)은 미국 야구에 진출했다가 귀국해 2007시즌 한국프로야구에 데뷔했다. 2007시즌은 5승5패로 평범한 성적에 그쳤다.
그런데 특히 2009시즌 13승8패를 기록하며 가장 위력적인 투구를 선보였다. 필자가 ‘미국 야구’라고 규정한 것은 송승준은 메이저리그 출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9시즌 당시 KIA의 서재응, 두산의 김선우(현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LG의 봉중근이 모두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는데 송승준은 1999년 보스턴 입단 이후 몬트리올, 샌프란시스코, 캔자스시티 등의 마이너리그 팀들만 전전하다가 막판 오른 손목 골절상으로 더 이상 버틸 도리가 없어 쓸쓸하게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2007년3월 롯데에 입단할 당시 받은 계약금도 2억원으로 모두 10억원 대로 알려진 서재응 김선우 봉중근과는 달리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랬던 송승준이 2009시즌에는 7월10일 히어로즈전까지 3경기 연속 완봉승을 기록했다. 1986년 선동열, 1995년 김상진에 이어 한국 프로야구 통산 5번째 대기록이다.
과연 당시 무엇이 느닷없이 송승준을 ‘언터처블(untouchable)’ 급으로 만들었을까? 그 때 나이는 29세였다.
송승준은 올시즌 7일 SK전 패배까지 7경기에 등판해 2승3패, 평균 자책점 5.75로 부진하다. 나이를 먹으면서 구위가 떨어지는 것인지 그 원인을 확실히 알 수는 없다.
글쓴이는 송승준의 마이너리그 시절을 옆에서 지켜봐 사생활 하나하나까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를 지원하던 매니지먼트사 직원의 이름이 타미였다. 그런데 송승준의 미국 명도 ‘타미’로 알려져 있다.
송승준이 메이저리그에 가장 가깝게 갔던 2003 시즌 후 글쓴이가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취재한 당시 그의 스카우팅 리포트를 다시 한번 소개한다.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뛰던 송승준과는 개인적으로 가깝고 또 박찬호의 에이전트였던 스티브 김이 대표로 있던 KSI에서 관리하던 선수여서 평가 자체에 편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스티브 김은 당시 미국야구에 진출한 많은 한국 선수들 가운데 박찬호만큼 성공할 수 있는 투수로 주저 없이 송승준을 꼽았다. 송승준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보여준 여러 모습들에 근거한 것이다.
첫째 송승준은 성공할 수 있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어느 곳에서도, 누구와도 잘 어울리고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다. 미국 진출 초기에 영어를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도 혼자 외톨이로 지내지 않고 손짓 발짓으로 선수 코치들과 대화를 시도하며 친하게 지내는 모습이었다. 원정 경기에 나서 어떤 도시를 가더라도 그 곳의 우리 동포들에게 가깝게 다가가 어려움이 생길 경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메이저리거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의사를 표현하고 상대로부터 배울 것을 꼭 배우는 적극적인 성격을 가졌다.
마이너리그에서는 원정 경기를 가면 10시간 이상 버스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장거리 이동 때 송승준은 좁은 의자에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에 무리가 올까 봐 다른 선수들에게 조금 불편을 주더라도 통로에 수건을 깔고 누워 있기도 한다. 목표를 위해 다른 사람들의 눈도 무시할 수 있는 배짱도 갖추고 있다.
둘째, 송승준은 승부를 할 줄 안다.
부산이 고향인 그는 누구와 싸워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 유난히 지는 것을 싫어한다. 보스턴 레드삭스 싱글 A 시절 팀에 일본 프로야구 출신 일본 선수가 있었다. 그 선수는 한국 선수들에게 유난히 심하게 장난을 치고 무시하거나 놀리는 행동을 했다. 그래서 송승준은 그를 불러 더 이상 하지 말라고 충고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선수가 계속 그런 행동을 하자 송승준은 그를 조용한 곳으로 불러 두들겨 패줬고 그 후 그 선수는 한국 선수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싸움을 잘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피하지 않고 항상 정면으로 승부하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이는 마운드에서도 잘 나타나 타자와의 승부에서도 도망가지 않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맞붙는다. 투수들의 척도인 볼넷과 삼진의 수치를 보면 2003년까지 4년간 마이너리그 성적에서 스트라이크 494개와 볼넷 170개를 기록했다. 대비해보면 스트라이크 3:1 포볼의 비율이다. 여기서 그의 성격이 드러난다. 타자들과 정면 승부를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수치이다.
마지막으로 송승준은 마이너리그 모든 단계를 경험하며 시련 하나 하나를 극복해가면서 단계적으로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다는 점이다. 송승준은 박찬호와 같은 강속구 투수도 아니고, 김병현처럼 변화가 심하고 까다로운 구질의 공을 구사하지도 않는다. 시속 145km에서 153km를 오가는 수준급의 직구와 낙차 큰 커브, 그리고 직구의 궤도로 날아오다가 떨어지는 체인지업 등 3개의 구질을 어떤 상황에서도 던질 수 있는 제구력을 갖춘 투수이다. 그의 스트라이크:포볼 비율이 3:1이라는 것에서도 제구력을 짐작할 수 있다.
송승준은 처음부터 제구력이 뛰어난 투수는 아니었다. 경남고를 졸업하고 18세의 나이에 보스턴 구단과 계약해 미국으로 건너온 그는 첫해 루키리그에서부터 미국 야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2년째에는 로 싱글A(Low Single A)에서 직구 스피드 향상과 제구력을 위해 1년 동안 변화구를 거의 던지지 않고 직구 위주의 투구로 한 시즌을 보냈다. 3년 째 하이 싱글 A(High Single A)에 이르러서야 직구를 시속 145km 이상의 속도로 원하는 곳에 던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송승준이 변화구를 던지기 시작한 것은 2002년 더블 A에서부터이다. 이때부터 메이저리그로 올라가기 위한 수업에 들어갔다. 전반기에는 커브를, 후반기 들어서 체인지업을 주로 던지며 2개의 구질을 익혔다. 볼카운트 3볼 1스트라이크의 불리한 상황에서도 변화구를 던져 스트라이크를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
2003년에는 트리플 A로 올라가 메이저리그 진입 직전 단계를 밟았다. 볼배합도 메이저리그 스타일로 직구 70%, 커브 15%, 체인지업 15%로 구성해 시즌을 마무리했다.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오를 준비를 일단 마친 것이다.
송승준은 이에 앞서 3년 연속 미래의 메이저리그 올스타 후보들의 무대인 퓨처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2003년 더블 A 해리스버그에서는 팀 사상 처음이자, 미국 진출 한국 선수 최초로 노히트 게임(No-Hitter)을 펼쳤다.
당시 그는 메이저리그 행을 가장 완벽하게 준비한 선수였다. 그런 송승준이 끝내 1경기도 메이저리그에 오르지 못한 것을 보면 메이저리그는 정말 보장된 것이 하나도 없는 정글임이 분명하다.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