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쿠바를 꺾고 '2015 WBSC(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 프리미어12' 4강에 진출했다. 공교롭게도 준결승전 상대는 개막전에서 0-5 완패를 안겨준 '숙적' 일본이다. 오는 1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리는 한일전에서 한국은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이어 또 한 번의 도쿄대첩에 성공할 수 있을까.
일단 일본은 4강전 선발로 개막전에서 한국을 완벽 봉쇄한 오타니 쇼헤이(21, 니혼햄 파이터스)를 선발로 예고했다. 오타니는 지난 8일 일본 홋카이도에 위치한 삿포로돔에서 열린 한국과의 '프리미어12' 개막전에 선발 등판해 6이닝 2피안타 2볼넷 10탈삼진 무실점을 기록, 한국을 상대로 승리를 따냈다. 당시 오타니는 160km/h를 넘나드는 강속구를 비롯해 140km/h 후반대에서 형성되는 포크볼까지 구사하며 한국 타선을 농락했다.
반면 한국은 아직 일본전에 나설 선발 투수를 확정짓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지일파' 우완투수 이대은(26, 지바 롯데 마린스)의 선발 등판이 유력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대은이 일본 타자들을 잘 알듯이, 일본 타자들도 올 시즌 맞대결을 통해 이대은의 장단점을 면밀히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봤을 때 '변칙카드'로 볼 수 있는 우완 사이드암 우규민(30, LG 트윈스)과 좌완 차우찬(28, 삼성 라이온즈)의 선발 등판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을 전망이다.
먼저 우규민은 올 시즌 KBO리그에서 25경기에 등판해 11승 9패 평균자책점 3.42의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무엇보다 눈여겨볼 점은 152⅔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볼넷을 불과 17개밖에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만큼 제구력이 뛰어나다는 측면에서, 좋은 컨택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일본 타자들과의 승부도 충분히 펼쳐볼 만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흔히 오른손 옆구리 투수에 강하다는 좌타자의 수도 적다는 점을 호재로 볼 수 있다. 그동안 일본은 한국과 대결을 벌였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야수 14명-좌타자 6명)을 시작으로 2006년 제1회 WBC(야수 17명-좌타자 7명, 스위치 타자 2명), 2008년 베이징 올림픽(야수 14명-좌타자 5명, 스위치 타자 1명), 2009년 제2회 WBC(야수 16명-좌타자 10명)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항상 야수 엔트리의 절반 정도를 좌타자로 채웠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일본 대표팀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야수 15명 중 좌타자는 아키야마 쇼고, 쓰쓰고 요시토모, 가와바타 신고, 나카시마 타쿠야, 나카무라 아키라 등 5명밖에 되지 않는다. 좌타자 수가 많지 않은 만큼, 우완 사이드암 우규민이 선발로 나서더라도 부담이 덜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일본 타자들은 올 시즌 정상급 사이드암 투수들과 경기를 치른 경험이 부족하다. 실제 올해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에서 다승, 평균자책점 10위권 내의 선수들 중 우완 사이드암 투수는 토가메 켄(28, 세이부 라이온스)밖에 없었다. 물론 리그 레벨에 차이가 있겠지만, 정확한 제구력을 앞세운 우규민의 피칭이라면 승산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전망이다.
또 하나의 '변칙카드'로는 차우찬을 꼽을 수 있다. 차우찬은 올 시즌 삼성 선발진의 한 축을 맡아 13승 7패 평균자책점 4.79의 성적을 거뒀다. 평균자책점이 다소 높긴 했지만 그는 위력적인 구위를 뽐내며 173이닝 동안 194탈삼진을 기록, 개인 통산 첫 번째 KBO리그 탈삼진왕에 등극했다.
'프리미어12'에서의 활약도 돋보였다. 차우찬은 대회 개막전이었던 일본전에서 중간 계투로 등판해 2이닝 1실점을 기록한 뒤 조별예선 4번째 경기였던 멕시코전에서 다시 한 번 구원투수로 나서 3이닝 8탈삼진 무실점을 기록, 한국의 8강행을 확정짓는데 앞장섰다. 이어 쿠바와의 8강전에서는 1⅓이닝 동안 18구를 던지며 1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한국의 4강 진출에 디딤돌 역할을 담당했다.
물론 등판 간격과 휴식 일자를 생각한다면 차우찬의 일본전 선발 등판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그러나 그는 앞서 열린 일본전을 시작으로 멕시코전, 쿠바전에서 자신이 가진 능력이 국제대회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확인하며 자신감까지 수확했다. 뿐만 아니라 뛰어난 구위를 갖고 있는 만큼, 힘 대 힘으로 승부를 펼친다면 차우찬으로서는 파워가 다소 떨어진다고 평가 받는 일본 타자들을 상대로도 충분히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일본과의 '프리미어12' 개막전에서 선발 투수로 김광현(27, SK 와이번스)을 투입했다. 하지만 김광현의 일본전 선발 등판은 너무나도 정직했던 정공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베이징 올림픽을 시작으로 제2회 WBC까지 여러 차례 김광현을 상대했던 일본 대표팀은 정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김광현을 조기에 마운드에서 끌어내리는데 성공했다. 일본과의 4강전에서 가장 유력한 선발 후보로 손꼽히고 있는 이대은 역시 지난 1시즌 동안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었고, 또 일본 타자들에게도 익숙한 만큼 이미 그에 대한 분석은 끝났을 수도 있다. 이대은을 투입하는 것 역시 또 하나의 정공법이라고 볼 수 있다.
김인식 감독은 다시 한 번 일본을 상대로 익숙한 카드를 꺼내드는 정공법을 택할까, 아니면 우규민, 또는 차우찬 등 상대의 허를 찌르는 '변칙카드'를 내세울까.
단기전에서는 상대의 허를 찌르는 '변칙카드'가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실제 한국은 2009년 제2회 WBC에서 김광현을 일본전에 주로 투입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김광현이 첫 경기에서 무너지자, '변칙카드'였던 봉중근을 일본전에 잇달아 투입하며 큰 재미를 본 경험이 있다. 김인식 감독의 선택은 무엇일까. 2009년 3월 9일 열린 제2회 WBC 1라운드 1, 2위 결정전(한국 1-0 승리) 이후, 또 한 번의 도쿄대첩을 노리는 한국이 일본과의 '프리미어12' 4강전에서 누구를 선발 투수로 내세울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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