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고도 못 친다'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NC 다이노스 외국인 우완 에이스 에릭 페디(30)가 완벽한 투구 내용으로 팀의 연패를 끊었다.
페디는 25일 광주광역시 북구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정규시즌 원정경기에서 7이닝 3피안타 무사사구 8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시즌 3승(1패)째를 기록했다. 시즌 평균자책점을 0.75에서 0.58로 더 낮추며 부문 리그 1위로 올라섰다. NC는 덕분에 KIA를 6-0으로 완파하고 5연패를 탈출했다.
이렇다 할 위기조차 없는 피칭이었다. 매 이닝 삼진을 솎아냈고 허용한 장타는 2회 최형우의 2루타뿐이었다. 직전 3경기에서 매 경기 5득점을 기록하던 KIA 타선도 속수무책이었다.
총 투구 수는 103구(커터 32구, 체인지업 26구, 커브 23구, 투심 패스트볼 22구)로 최고 구속은 투심 패스트볼이 시속 150㎞까지 나왔다. 이 중 커브로 분류된 공은 최근 메이저리그(ML)에서 주목받는 '스위퍼'다. 이는 좌우 무브먼트를 극대화한 슬라이더로 지난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전에서 오타니 쇼헤이(29)가 마이크 트라웃(32·이상 LA 에인절스)를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일본의 우승을 확정 지은 구종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현재 오타니의 주 구종이기도 하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분류된 만큼 KBO리그에는 아직 생소한 구종이다. 구종 습득에 뛰어난 안우진(24·키움 히어로즈)조차 4월 초 스타뉴스와 만나 "어떻게 그립을 잡는지조차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 페디는 그런 스위퍼를 KBO리그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수로 꼽힌다.
같은 손 타자에게는 차라리 제구가 안 될 것을 기대하고 포기하는 것이 나을 정도다. 이날 대표적인 장면이 2회 우타자 황대인의 타석으로 바깥쪽으로 흘러가는 스위퍼에 방망이는 따라가는 데 급급했다. 경기 후 만난 페디는 "이번 비시즌에 미국 애리조나 스코츠데일에서 유명한 푸시 퍼포먼스(Push performance) 센터에 가서 배웠다"면서 "요즘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배트를 내리치는 경향이 있는데 스위퍼는 좌우, 상하로 자유롭게 던질 수 있어 인기가 있다"고 장점을 설명했다.

페디의 매력은 스위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날 페디의 스트라이크 68개 중 스위퍼로 잡은 것은 17개에 불과했다. 커터로 23개, 체인지업으로 17개, 투심 패스트볼로 11개를 잡았다. 우타자에게 스위퍼가 '쥐약'이라면 커터와 체인지업은 좌타자에게 지옥과 같았다. 이날 KIA 좌타자들은 바깥쪽 낮게 떨어지는 체인지업에 속수무책이었고 6회 류지혁의 경우 몸쪽으로 들어오는 커터를 공략하다가 자신의 파울 타구에 맞아 교체되기도 했다.
이 모든 구종을 스트라이크존 경계선에 던질 줄 아는 제구를 갖춰 더 무섭다. 페디는 31이닝을 소화한 현재 삼진 37개를 잡아내면서 볼넷은 8개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가면 헛스윙 연발이니 '바깥쪽으로 빠지는 공을 공략하지 말아야겠다' 마음먹어도 스트라이크존에 걸쳐 들어와 루킹 삼진이 되기 일쑤다. 뛰어난 변화구 무브먼트와 제구력이 합쳐지면서 한국 야구 통계 사이트 기준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의 피안타율은 각각 0.065, 0.167로 0.333의 싱커(투심 패스트볼), 0.265의 스위퍼보다 낮다.
이런 기량 탓에 일부 KBO 구단 관계자들은 페디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점치기도 했다. 걱정거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페디는 최근 메이저리그 5시즌 연속 워싱턴 내셔널스의 5선발로서 풀타임을 소화하긴 했으나, 어깨 부상의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가장 큰 단점마저 NC를 만나 지워지면서 벌써 메이저리그 복귀가 가능한 선수로 언급되고 있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보스턴 레드삭스의 스카우트는 그러한 설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페디는 일단 NC에만 집중하고 싶어했다. 그는 "팀에 합류하기 전까지 어깨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백경덕 트레이너 포함 NC 트레이닝 스태프를 만나 이렇게 투구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NC에 온 것이 축복받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활짝 웃으면서 "당장은 NC에 최대한 집중하면서 포스트시즌 진출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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