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명보(56)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불 붙인 '대표팀 주장 교체 가능성'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홍 감독이 손흥민(33·로스앤젤레스FC)이 아닌 다른 선수에게 대표팀 주장 완장을 맡길 수도 있음을 두 차례나 직접 시사하면서다. 논란이 거세지자 홍 감독은 "가능성에 대해 언급한 것"이라면서도 "계속 논의할 것"이라며 주장 교체 여지를 여전히 남겨둔 상황이다.
'뜬금없는' 대표팀 주장 교체 논란은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린 9월 미국·멕시코 A매치 원정 평가전 대표팀 명단 발표 기자회견에서 처음 불거졌다. 당시 홍 감독은 대표팀 주장과 관련된 취재진 질문에 "계속 생각하고 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개인을 위해서도, 팀을 위해서도 굉장히 중요한 시점"이라며 "지금 '주장을 바꾼다, 안 바꾼다'는 결정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팀을 위해 어떤 선택이 가장 좋을지는 꾸준하게 고민해야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아직 주장 교체 여부를 결정하진 않았으나, 주장 교체를 두고 고민하고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논란이 거세졌다. 역대 최장수 캡틴이라는 기록이 말해주듯 손흥민이 오랫동안 선수단을 잘 이끌어온 데다, 굳이 대표팀 주장을 교체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손흥민은 지난 2018년 9월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전 감독 체제에서 정식 주장으로 선임된 뒤 7년째 선수단을 이끌고 있다. 심지어 홍명보 감독조차 지난해 거센 논란 속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직후 "손흥민을 앞으로도 팀의 주장으로 신뢰하고, 지금까지 해온 역할을 다시 제시할 것"이라며 신임을 보낸 바 있다. 다만 불과 1년 만에 '주장 손흥민'을 바라보는 홍 감독의 시선이 확 달라진 셈이다.

대표팀 주장 교체는 언젠가는 이뤄져야 할 일이지만, 굳이 그 시점이 지금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잇따랐다. 특히 그동안 손흥민이 대표팀과 주장직에 대한 책임감을 잘 보여줬는데도 주장을 교체하는 모양새라 팬들의 비판도 거셌다. 지난 1일 미국·멕시코와의 9월 A매치 평가전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는 길에 취재진 앞에 선 홍명보 감독의 관련 입장에 관심이 쏠렸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그러나 홍명보 감독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홍 감독은 우선 "(기자회견 당시) 주장건에 대해 언급한 건 앞으로 팀과 선수들에 있어서 변화가 있을 거라는 가능성에 대해 언급을 한 거다. 앞으로 남은 10개월 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도 "제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최종적으로 마지막 결정은 제가 하지만, 그전에 모든 구성원의 생각이나 의견을 듣고 또 본인(손흥민)의 의견도 듣고 결정을 하는 게 제 스타일"이라며 "시간은 충분히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저도 2002 월드컵 두 달 전에 주장을 맡았다. 주장을 맡는다는 게 굉장히 어렵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가장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계속 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흥민 주장 체제'에 신뢰를 보냈던 1년 전과는 달리, 이제는 대표팀 주장 교체를 열어두고 당사자인 손흥민을 포함해 대표팀 구성원 모두의 의견을 들어보고 최종 결정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여전히 주장 교체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홍 감독은 선수 시절이던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자신의 주장 부임을 예로 들며 대표팀 주장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그것이 대회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이뤄지더라도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설명하기도 했다.


다만 당시 '선수 홍명보'가 한·일 월드컵 두 달 전 주장 역할을 맡은 데는 사연이 있었다. 선수 시절 홍명보는 2001년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감독 데뷔전부터 이미 주장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부상 등을 이유로 8개월 간 대표팀에서 제외됐고, 그사이 김태영 등이 임시 주장직을 맡았던 시기가 있었다.
선수 홍명보가 대표팀에 복귀한 뒤에도 당분간 김태영 등이 임시 주장 역할을 맡았다. 대표팀에 돌아온 홍명보에게 큰 부담을 안기지 않겠다는 게 히딩크 감독 계획이었다. 다만 당시 홍명보는 주장은 아니었어도 대표팀 맏형으로서 사실상 리더 역할을 맡았다. 이후 월드컵 개막을 앞둔 시점, 다시 대표팀 주장으로 복귀했다.
월드컵 직전 축구 대표팀 주장으로 선임된 건 맞지만 사실상 '주장 복귀'에 더 가까웠다. 원래 주장이었던 선수가 잠시 대표팀에서 이탈했고, 대표팀 복귀 직후 곧바로 주장직을 맡지는 않다 대회 직전 다시 주장을 맡은 셈이다. 홍 감독은 이번 손흥민 주장 교체 논란과 관련해 "나도 월드컵 두 달 전 주장으로 선임됐다"며 예로 들었지만, 사실 이번 손흥민 주장 교체 논란과는 완전히 다른 케이스였던 셈이다.

당시 히딩크 감독이 그랬듯, 홍명보 감독 역시 손흥민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배려를 고민하고 있을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설명 없이 대표팀 주장 교체 가능성부터 공개적으로 밝힌 건 너무 섣불렀다는 게 평가가 지배적이다. 설령 주장 교체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공개적으로는 현 주장에 대한 신임을 보내되 내부적인 소통 절차를 거쳐 최종 결론을 내린 뒤에야 밝히는 게 옳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제는 상황이 너무 꼬여버렸다는 점이다. 홍명보 감독이 공개적으로 주장 교체 가능성을 먼저 열어둔 상황이라, 이제는 손흥민이 대표팀 주장직에 대한 의지를 계속 드러내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손흥민 스스로의 의지로 대표팀 주장직을 후배에게 물려주고 싶어도, 홍 감독에 의해 사실상 주장직을 억지로 반납하는 듯한 모양새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 홍명보 감독이 모든 선수의 의견을 듣고 주장 교체를 결정하겠다고 언급한 대목은, 바꿔 말하면 주장이 교체될 경우 자칫 대표팀 내부에서도 주장 교체를 원하는 목소리가 있었다는 불필요한 오해로도 이어질 수 있다. 논란이 워낙 거세진 탓에 새로 주장 완장을 차게 되는 선수의 부담감 역시 더 커지게 된 건 물론이다. 이제는 월드컵 본선 준비에만 전념해야 할 시기, 예기치 못한 이슈가 홍명보호 스스로를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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