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라는 세계 최고의 축구 클럽을 보유한 스페인 라 리가는 전통적으로 유럽 축구 이적 시장의 큰 손이었다. 하지만 2025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라 리가는 매우 적은 돈을 썼다. 유럽 5대 축구 리그 가운데 라 리가의 여름 이적료 지출 순위는 4위다.
1위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로 무려 약 5조 6440억 원의 이적료를 올해 여름에 썼고 이탈리아 세리에 A(1조 8817억 원)와 독일 분데스리가(1조 3906억 원)가 뒤를 이었다.
라 리가는 비교적 적은 1조 1139억 원을 썼다. EPL에 비해 약 5분의 1 수준이다.
이처럼 스페인 클럽들이 이적 시장에서 지출을 줄이게 된 근본적 이유는 리그 차원의 재정 건전성 확보 정책 때문이었다.
2000년대 초반 스페인 클럽들의 재정 상황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42개 스페인 프로축구 1, 2부 리그 클럽(1부 20개, 2부 22개)가운데 무려 20개 팀이 파산 위기에 몰렸고 미지급된 선수 연봉과 세금 미납 문제가 연일 스페인 미디어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3년 UEFA(유럽축구연맹)가 클럽의 매출 이상으로 선수 이적료와 연봉 등의 비용을 쓰는 것을 규제하는 재정적 페어 플레이(FFP·Financial Fair Play) 규정을 발표했다.
라 리가는 이후 UEFA의 재정적 페어 플레이 규정보다 한층 강화된 리그 차원의 샐러리 캡 제도를 정착시켰다.

라 리가의 샐러리 캡은 클럽의 축구 관련 매출액을 기준으로 선수 연봉, 이적료와 직원 월급 등 클럽 운영 비용의 상한선을 매년 정하는 것이었다.
이는 EPL을 비롯해 다른 유럽 프로축구 리그보다 훨씬 강도높은 클럽의 매출 대비 비용 지출 억제책이었다. 참고로 유럽 축구 이적 시장에서 가장 많은 돈을 쓰는 EPL 클럽들은 3년 동안 1971억 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하지 않으면 규제를 받지 않는다.
샐러리 캡 제도가 정착되면서 라 리가 클럽들은 과거에 비해 낮은 선수 이적료 지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라 리가 클럽들이 높은 이적료의 슈퍼 스타를 영입하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힘겨운 도전이 된 셈이다.
클럽의 무분별한 지출을 감소시키는 데 일조했던 샐러리 캡 제도는 스페인 클럽들의 경영 정상화에 도움이 된 건 사실이지만 스타 선수 영입이 줄어들어 글로벌 시장에서 라 리가의 매력도가 떨어지게 된 하나의 원인이 됐다.
지난 19일(현지시간) 영국의 인터넷 축구 매체 '골닷컴'에 따르면 레알 마드리드의 올 시즌 샐러리 캡은 약 1조 4305억 원이며 라이벌 클럽 FC 바르셀로나는 약 6600억 원이다. 이런 샐러리 캡 격차는 이번 여름 이적 시장에서 두 클럽의 지출을 결정짓는 바로미터가 됐다.
영국 공영방송 'BBC'가 지난 7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레알 마드리드는 올 여름 이적료로 약 2946억 원을 썼다. 하지만 샐러리 캡의 여유가 별로 없는 바르셀로나의 이적료 지출은 약 450억 원에 머물렀다.
라 리가 상위권의 몇몇 클럽들을 제외한 대다수 팀들이 해외의 특급 유망주나 스타 선수를 영입하려면 기존 소속 선수를 다른 구단에 팔아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재정 상황이 좋지 않은 클럽은 이마저도 쉽지 않다. 세비야가 좋은 예다. 세비야는 올 여름 이적 시장에서 주축 선수를 매각해 965억 원의 이적료 수입을 기록했다. 하지만 세비야가 올 여름 원 소속 클럽에 이적료를 지불하고 영입한 선수는 없었다. 현재 클럽의 샐러리 캡을 고려하면 세비야가 이적료 등 비용으로 쓸 수 있는 돈은 16억 원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TV 중계권료는 유럽 프로축구 클럽 매출에서 약 35%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다. EPL은 국내외 중계권료를 합쳐 1년에 약 5조 7787억 원의 수입을 기록하고 있다. 유럽 5대 리그 가운데 중계권료 수입 2위인 라 리가는 1년에 약 3조 806억 원을 벌어 들인다.
EPL의 중계권료 수입은 라 리가에 비해 약 1.9배 정도 많다. 하지만 두 리그의 클럽이 체감할 수 있는 중계권료 수입에는 차이가 있다. EPL은 20개 클럽이 중계권료 수입을 비교적 골고루 나눠 갖지만 라 리가의 중계권료 수입 분배는 상대적으로 팬이 많고 성적이 좋은 클럽들이 많이 가져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2023~2024시즌 라 리가에서 1년 중계권료 수입으로 1633억 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한 클럽은 단 3개(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불과했다. 반면 20개 EPL 클럽은 모두 같은 해 1633억 원 이상의 중계권료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단순히 두 리그의 중계권료 차이뿐만 아니라 배분 방식의 차이에서 나타난 결과다.
라 리가가 이적 시장에서 다시 큰 손이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중계권료 매출 증대가 필요하다. 이 가운데 향후 정체될 것으로 보이는 스페인 국내 중계권료보다 해외 중계권료의 증대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해외 중계권료 매출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샐러리 캡 제도 완화를 통한 스타 선수 영입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라 리가의 중계권료 배분을 현재보다 균등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재정 상황이 좋지 않지만 샐러리 캡 규정을 준수해야 하는 중하위권 클럽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리그 전체의 전력 균형을 통해 라 리가에 대한 팬들의 흥미를 상승시키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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