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전 그날을 떠올리게 했다. 안세영(23·삼성생명)은 통증으로 고통을 받았지만 결국 중국 항저우 땅에서 최고 호적수인 중국 선수를 따돌리고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여자 단식 세계 1위 안세영은 21일 중국 항저우의 올림픽스포츠센터에서 열린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파이널스 2025 여자 단식 결승에서 세계 2위 왕즈이(중국)를 2-1(21-13, 18-21, 21-10)로 꺾었다.
이로써 안세영은 올 시즌 11번째 우승으로 여자 단식에선 처음이자 남녀를 통틀어 역대 단일시즌 최다승 타이 기록을 세웠다.
더불어 역대 최초로 단일시즌 상금 100만 달러(약 14억 8100만원)를 돌파했고 올 시즌 77경기에 중 73승을 거둬 승률 94.8%라는 배드민턴 역사상 없었던 최고 승률까지 작성했다. 23세 나이에 벌써 G.O.A.T(Greatest Of All Time)에 등극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놀라웠다. 1게임 초반 앞선 상황에서 매섭게 맞선 왕즈이에게 6연속 실점하며 4-8로 끌려가던 안세영은 이내 정신을 차렸고 완벽한 거리 조절과 영리한 경기 운영, 무엇보다 상대를 질리게 만드는 '질식 수비'로 7연속 득점해 흐름을 뒤집었다. 이후 왕즈이를 완벽히 압도해 21-13으로 손쉽게 기선제압했다.

2게임 들어 왕즈이가 강하게 맞섰다. 안세영은 1게임에 비해 어딘가 몸이 무거운 보였다. 그러면서도 왕즈이를 괴롭히며 끝까지 추격했으나 결국 승부는 3게임으로 향했다.
코트 구석구석을 찌르는 안세영의 공격에 왕즈이는 수차례 쓰러져서는 쉽게 일어서지 못했다. 세계 2위라고는 하지만 최강자 안세영과 실력 차가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안세영은 7연속 득점했고 사실상 왕즈이는 추격 의지를 잃은 듯 했다.
그러나 마지막 변수가 있었다. 갑자기 안세영이 고통을 호소하며 허벅지를 부여잡았다. 파스를 뿌리며 통증을 줄이는 데 집중했다.
2년 전 그날이 떠올리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숙적' 천위페이(중국)를 만난 안세영은 앞서가던 1게임 막판 무릎을 부여잡았다. 테이핑을 잔뜩 두르고 나섰으나 결국 가장 중요한 길목에서 안세영의 발목을 잡았다.
1게임은 가까스로 승리로 마무리했으나 2게임 들어 점프도 뛰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고 결국 3게임으로 향했다. 그러나 정작 천위페이는 안세영의 강철 체력과 영리한 경기 운영에 완전히 말렸고 안세영보다 훨씬 더 지쳤고 안세영은 젖먹던 힘까지 끌어내 천위페이를 몰아붙여 감격의 우승을 차지했다. 훗날 안세영도 이 장면을 떠올리며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지 걱정했을 정도였다고 털어놓았을 정도로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20-8 매치 포인트. 점수 차가 컸지만 불안함을 자아낸 장면이 나왔다. 안세영은 네트 플레이 끝에 왕즈이가 힘겹게 걷어낸 셔틀콕을 밀어넣으며 경기를 끝내는 듯했으나 심판은 셔틀콕이 넘어오기 전에 안세영이 공격을 했다며 실점을 선언했다.
이후 안세영은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안세영은 허벅지에 파스를 뿌리고자 했으나 이마저 제지당했다. 공식적으로 치료를 할 수 없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안세영은 허벅지를 내려치면서 답답한 마음을 달랬다. 조금만 버텨보자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아직 점수 차는 컸지만 왕즈이에게 2연속 실점한 안세영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왕즈이의 공격을 받아냈고 결국 혼신의 힘을 짜내 때려낸 전매특허 대각 스매시로 다시 한 번 항저우에서 중국을 울렸다.
중국 언론은 경기 후 남자 단식 선수들을 바라보며 "그와 비슷한 플레이를 펼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자신하는 안세영에게 감탄했다. 이어 시나스포츠는 "결정적인 경기에서 왼쪽 허벅지 통증으로 절뚝거렸음에도 불구하고 홈팀의 왕즈이를 강력하고 아름다운 스매시로 꺾었다. 그의 압도적인 아우라는 이미 남자 단식 톱 선수 못지않다"며 "안세영에게 중국의 천위페이, 왕즈이, 한웨는 더 이상 진정한 라이벌이라고 보기 어렵다. 심지어 여자 단식 역사 속 전설들조차도 비교하면 평범해 보일 정도"라고 여제에 대한 존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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