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많은 스포츠가 야구인데, 최근 국제 대회에서 실망을 드린 것이 사실이다. 이번에는 반드시 마이애미까지 가서 팬들께 기쁨을 선사하겠다."
지난 4일 2026 WBC(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본선 1라운드 개막전을 하루 앞두고 도쿄돔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장에 나선 류지현(55) 한국 야구 대표팀 감독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없었다. 누군가는 '호언장담'이라 했고, 누군가는 '희망 사항'이라 여겼던 그 약속을 지켜냈다.
한국 야구 대표팀이 3연속 대회 본선 라운드 탈락이라는 잔혹사를 끊어내고, 마침내 결선 토너먼트가 열리는 미국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준우승을 차지한 2009년 대회 이후 무려 17년 만에 맛보는 쾌거다.
과정도 그야말로 극적이었다. 2013년 대회부터 이어오던 지긋지긋한 첫 경기 징크스를 털어내며 눈물을 흘렸지만 이번 만큼은 체코를 잡아내며 산뜻하게 출발했다. 일본전 패배는 예상됐던 시나리오였지만 8일 대만을 상대로 덜미를 잡히며 흔들렸다. 자력 진출이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맞이한 9일 호주전에서 류지현 감독은 흔들리는 선수단을 다잡으며 "어려운 상황이지만 어찌 보면 우리에게 다시 기회를 준 경기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스코어에 너무 얽매여 쫓기고 급해지면 오히려 안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기 시간 3시간 안에 자기 역할만 다해준다면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독려했다.
사령탑의 믿음에 선수들은 실력으로 응답했다. 대만전에서 부진했던 중심 타선이 결정적인 순간 적시타를 터뜨렸고, 마운드에서는 전력투구를 불사한 투수진의 필사적인 계투가 호주 타선을 2실점으로 잠재웠다. 승자승 다음으로 실점률을 따지는 대회 규정에 의거해 5점 차 이상 승리와 함께 2실점 이하를 달성해야 했던 한국은 호주를 7-2로 꺾고 조 2위를 확정하며 마침내 마이애미행 비행기에 오를 자격을 증명했다.
이번 쾌거는 단순히 운이 따른 결과가 아니었다. 류지현 감독이 공언했던 '진정성'과 '데이터 야구'의 승리였다. 대회 기간 내내 류지현 감독은 '조정 득점 창출력(wRC+)', 유형별 하드 히트 생산 비율 등 세이버 메트릭스 용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준비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저마이 존스(디트로이트 타이거즈)가 메이저리그에서 뛰어난 wRC+ 수치를 찍는다고도 했고, 일본 선발 투수 기쿠치 유세이(LA 에인절스) 상대 좌우 타자 강한 타구 생산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류 감독의 이러한 '수치' 기반의 확신은 승부처에서 보란 듯이 적중했다. 기쿠치 유세이를 상대한 일본전에서 비록 팀은 6-8로 졌으나, 타자들이 기쿠치를 상대로 정타를 만들어내며 3이닝 동안 3실점을 안기기도 했다.
이 같은 정밀한 전략의 뒤에는 류지현 감독을 필두로 한 이른바 '사령탑급 코칭스태프'의 집단지성이 있었다. 이번 대표팀은 류 감독 외에도 KBO 리그에서 1군 팀을 진두지휘했던 최원호(53·전 한화 이글스), 이동욱(52), 강인권(54·이상 전 NC 다이노스) 등 전직 감독 출신들이 대거 코치진에 포진해 초호화 진용을 꾸렸다.
현장에서 지켜본 류지현호는 과거의 권위적인 대표팀과는 사뭇 달랐다. 류 감독은 저마이 존스의 도루 성공에 '하트'를 그려 보이며 선수들과 격의 없이 호흡했다. "유니폼에 코리아를 달고 있는 모든 사람의 마음은 하나"라며 흐뭇해하던 부드러운 리더십은 자칫 대만전 패배로 무너질 수 있었던 선수단을 결과적으로 '원팀'으로 묶어낸 원동력이 됐다.
'야구 대표팀에 대한 실망을 기쁨으로 바꾸겠다'던 약속은 이제 현실이 되어 '결전의 땅' 마이애미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팬들을 기다리고 있다. 2006년 WBC와 2013년 WBC에서 모두 코치로 대회에 나섰던 류지현은 이제 2026년 한국 야구의 자존심을 다시 세운 사령탑으로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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