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일 대전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는 연장전을 치르지 않았음에도 무려 4시간 9분이나 소요됐다.
볼넷 때문이다. 이날 경기에서 나온 볼넷의 숫자는 무려 23개. 한화는 16개의 볼넷을 내줬고 삼성은 여기에 7개를 보탰다. 한 경기 23개 볼넷은 KBO리그 신기록이다.
문제는 투수들의 볼넷 남발은 올 시즌 프로야구에서 심각한 수준으로 발전했다는 점이다. 14일 현재 KBO리그의 경기당 평균 볼넷은 9.04다. 산술적으로 이닝 당 1개 이상의 볼넷이 기록됐다는 의미다.
올 시즌 경기당 평균 볼넷(14일 기준)은 지난 2015년 10개 구단 체제가 만들어진 뒤 가장 높은 수치다. 경기당 평균 8.18개의 볼넷이 기록됐던 2021년 보다 더 높다.
볼넷 숫자가 늘어나면 자연스레 경기 시간도 늘어난다. 박진감 있는 경기를 팬들에게 서비스하기 위해 KBO는 지난 해 투수가 마운드에서 시간을 끌지 못하도록 하는 피치 클록을 정식으로 도입했다. 올해에는 피치 클록을 종전 20초에서 18초로, 주자가 있을 경우엔 25초에서 23초로 단축했다.
하지만 이 같은 KBO의 '경기시간과의 전쟁'은 볼넷 숫자의 증가로 올 시즌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난 시즌 정규 이닝 기준 평균 경기 시간(3시간 2분)에 비해 14일까지 집계된 올 시즌 평균 경기 시간은 오히려 6분이나 늘었다.
올 시즌 10개 구단 가운데 볼넷을 가장 많이 허용한 한화(86개)의 평균 경기 시간은 3시간 23분으로 가장 길었다. 프로야구 전체 평균 경기 시간에 비해 무려 15분이나 길었다. 역시 볼넷 때문이다.

KBO리그가 '볼넷 리그'로 전락한 이유는 투수들의 제구력 난조와 구위 저하가 핵심 원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10개 구단 마운드의 열쇠를 쥐고 있는 외국인 투수들이 올 시즌 초반에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또 다른 원인이다.
하지만 볼넷 숫자가 늘어난 근본적 원인은 학원 야구에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고교 야구에서 투수가 위기에 몰렸을 때 감독이 상대 중심 타자와 정면 승부 대신 고의4구를 지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고의 4구가 아니더라도 투수가 스트라이크 존에서 벗어나는 유인구로만 승부하며 타자의 실수를 노리는 풍조도 고교야구에서는 일상적인 풍경이다.
여기에 고등학교와 대학 야구 선수들이 기량 향상을 위해 찾는 야구 아카데미의 접근 방식도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다. 아카데미에서는 투수의 제구력보다는 구속을 높이는 데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일단 투수의 구속이 빨라야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 지명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투수들은 마치 기록 경기 선수들처럼 볼 스피드를 올리는 데에만 매몰될 수밖에 없다.
14일 기준으로 일본 프로야구의 경기당 평균 볼넷은 5.43개이며 MLB(미국 프로야구)는 7.55개다. 지난 해 MLB의 경기당 평균 볼넷 숫자는 6.32였지만 올 시즌에는 수치가 높아졌다.
여기에는 올 시즌부터 MLB에서 도입한 ABS(자동투구판정시스템) 챌린지 제도가 영향을 미쳤다. 이 제도는 투수, 타자, 포수만이 심판이 내린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에 대해 ABS에 판독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MLB 투수들은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좁아진 스트라이크 존에 던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졌다는 분석이 많다.
한편 일본 프로야구의 경기당 평균 볼넷 수치가 낮은 이유로는 전통적으로 일본 투수들이 구속이상으로 제구력을 향상시키는 데 집중해 왔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 프로야구에서 사용하는 공인구는 실밥이 낮고 촘촘하게 박혀 있으며 덜 미끄러운 편이라 투수들이 공을 쥐기가 편해 제구력을 잡는 데 도움이 된다는 평가가 있다.
과거 MLB 코치들은 정면 승부를 하지 못하는 투수에게 자주 이런 말을 했다. "베이브 루스는 죽었다. 스트라이크를 던져라". 타자가 두려워 도망가는 피칭을 하지 말고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던지라는 의미다. 올 시즌 역대급 볼넷 남발로 위기를 맞고 있는 KBO리그 투수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다.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