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일단 32강 진출이 1차 목표였다면, 애당초 홍명보 감독은 '3위 시나리오'까지 치밀하게 계산에 두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전에 임했을 가능성이 크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FIFA 랭킹 25위)은 25일(한국 시각) 멕시코 몬테레이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3차전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FIFA 랭킹 60위)에 0-1로 패했다.
이로써 한국 축구 대표팀은 조 3위로 밀리며 자력 32강 진출에 실패했다. 한국은 남아공과 무승부만 거둬도 승점 1점을 추가하며 자력으로 조 2위를 확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비기기만 해도'라는 위험한 가정은, 결국 선수단의 발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사실 한국은 지난 체코와 1차전, 그리고 멕시코와 2차전에서 분명 좋은 모습을 보였다. 체코전에서 태극전사들은 마치 마지막 경기라도 하듯이 적극적인 몸싸움을 펼치며 전투적으로 임했다. 결과는 짜릿한 2-1 역전승. 홍명보 감독과 선수들을 향해 찬사가 쏟아졌다.
멕시코와 2차전은 매우 어려운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잘 싸웠다. 사실 축구에서 팀 자체로 실력 면에서 압도하지 않는 이상, 원정에서 승리하는 건 쉽지 않다. 공 잡을 때마다 원정팀에 야유가 쏟아지는 게 TV 중계로도 들리는데, 현장에서 체감하는 건 상상 이상이다. 거기다 축구 열기가 엄청난, 그것도 개최국인 멕시코였다. 그런데도 한국은 김승규-이기혁의 실수만 없었다면 0-0으로 비길 수 있었다. 축구에서 단순 비교는 정확하다고 볼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멕시코는 체코를 3-0, 남아공을 2-0으로 각각 격파한 강팀이었다.
당초 한국은 남아공을 1승 제물로 삼고 대회에 임했다. 그러나 월드컵 무대에서 한국은 1승 제물로 점찍은 나라를 상대로 고전한 적이 많았다. 최근만 봐도 2014 브라질 월드컵 알제리, 2018 러시아 월드컵 스웨덴, 2022 카타르 월드컵 가나가 그랬다. 이번 대회 남아공은 아프리카 예선에서 '강호' 나이지리아(FIFA 랭킹 24위)를 제치고 1위로 본선에 진출한 저력을 보여준 팀이다.


한국은 남아공전에서 후반 18분 타펠로 마세코에게 선제골을 헌납했다. 0-1로 지고 있는 상황. 만약 뒤가 없는 토너먼트였다면, 한국은 수비수를 빼는 대신 공격수를 모두 투입하는 총공세를 펼쳤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후반 20분 김민재를 빼고 같은 수비수인 박진섭을 교체로 넣었다. 누가 봐도 공격적인 교체라 보기 어려웠다. 또 후반 29분에는 조규성을 투입하긴 했지만, 수비수를 뺀 게 아닌 체코전에서 역전골을 터트린 공격수 오현규를 뺐다.
여기에 첫 실점 후 전술 역시 이른바 '공격 올인'이 아닌, 수비도 중시하는 모양새를 보여줬다. 심지어 현장에서 경기를 중계한 박지성 해설위원도 "볼이 측면으로 갔을 때 문전에 침투하는 선수가 2명밖에 없다. 지금은 지고 있어서, 저렇게 크로스가 올라올 때는 3~4명 정도 있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일 정도였다. 그러나 홍명보 감독은 자칫 공격 쪽 숫자를 늘리다가 역습당할 경우, 실점으로 이어지는 것만큼은 막고자 했다. 사실상 1골을 더 내주는 등의 대참사가 나지 않은 이상, 일단 패하더라도 32강에 진출할 가능성은 여전히 높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설영우를 향해 비판이 집중되는 것도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이번 홍명보호에는 없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다. 과거 한국 대표팀에서 김남일, 김정우, 기성용, 정우영 등이 맡았던 포지션이다. 로드리(맨체스터 시티)와 은퇴한 세르히오 부스케츠가 세계적인 수비형 미드필더로 잘 알려져 있다. 스페인 대표팀에서 로드리와 부스케츠가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로 동시에 기용될 때는 좌우 윙백이 수비 걱정 없이 거의 윙어와 마찬가지로 과감한 공격을 시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한국 대표팀에는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가 사라졌다. 물론 황인범과 백승호가 있긴 하다. 그러나 둘은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라기보다는, 공격형 미드필더에 더욱 강점을 보이는 자원들이다. 황인범은 심지어 체코를 상대로 페널티 박스까지 침투해 동점골까지 넣었다. 백승호 역시 소속 팀인 버밍엄 시티 FC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실 설영우는 이미 수비 쪽에서 더 검증된 자원이라 할 수 있다. 소속 팀 FK 츠르베나 즈베즈다(세르비아)에서 맹활약하며 세르비아 리그 최고의 풀백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자신의 몫을 해냈다. 하지만 설영우는 홍명보호에서 4백이 아닌 3백의 윙백으로 나서고 있다. 그러다 보니 윙어처럼 상대 진영 깊숙이 침투하는데, 때로는 킥이 다소 약한 설영우가 공격에서 고전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대표팀에서는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는 셈이다. 다만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가 부재한 상황에서 설영우가 어느 정도 그 부분을 채워주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나아가 윙백의 깊숙한 공격 가담에 이은 빌드업의 실종. 이강인이 간혹 하프라인 너머 수비 라인까지 직접 내려오는 이유다.
남아공전을 마친 뒤 홍명보 감독은 남아공의 전술에 대한 분석 여부에 관해 "당연히 준비했다. 다만 우리가 준비한 것에 비해 중앙에서 실수가 잦았다. 그러다 보니 선수들이 자신감을 잃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좀 더 측면 플레이에 치중했다면 상대의 가장 위협적인 역습을 제어할 수 있었을 거라 본다. 그런 부분이 지난 경기보다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과연 한국이 32강에 진출할 경우, 더 이상 뒤가 없는 토너먼트에서 한국 축구의 저력을 다시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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