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야말로 내로남불이었다. 남의 도핑에는 누구보다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댔던 닉 키리오스(호주)가 정작 자신은 코카인 양성 반응으로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다.
로이터통신은 19일(현지시간) "전 윔블던 준우승자 키리오스가 코카인 양성 반응을 보여 테니스계에서 잠정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다"고 전했다.
국제테니스청렴기구(ITIA)는 지난 6월 스페인 마요르카에서 열린 ATP 250 대회 기간 채취된 키리오스의 샘플에서 코카인의 대사물질인 벤조일렉고닌이 검출된 것을 확인했다.
세계반도핑기구(WADA) 공인 연구소도 지난 달 금지된 흥분제 성분의 존재를 알아챘고, 결국 키리오스는 지난 8월 4일부터 잠정 출전 정지 상태에 놓였다.
코카인은 WADA 금지목록에서 흥분제이자 '남용 물질'로 분류돼 있다. 경기력 향상보다는 오락 또는 중독 목적으로 오남용되는 경우가 많은 물질을 별도로 분류한 것이다. 테니스 반도핑 규정상 경기 기간 중 사용이 금지된다.
로이터통신은 "출전 정지 기간 동안 키리오스는 국제 테니스 관련 단체와 WTA, ATP, 그랜드슬램, 각 국가협회가 주관하는 대회에 선수로 출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코치로 활동하거나 관련 대회에 참석하는 것도 금지된다"고 설명했다.
키리오스도 코카인 양성 반응 사실을 인정했다. 잠정 출전 정지 처분에 항소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최근 마요르카에서 받은 약물 검사에서 코카인 양성 반응이 나왔다"며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고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팬들과 가족, 스폰서, 그리고 내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며 "무엇보다 나를 따르는 어린이들에게 미안하다. 내가 어떤 본보기를 보여준 것인지 알고 있고, 나 자신에게도 깊이 실망했다"고 사과했다.
로이터통신도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유명한 호주 출신 키리오스는 공개 사과를 통해 이번 일을 자신의 '엄청난 실수'라고 인정했다"고 전했다.

키리오스는 변명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최근 몇 년간 이어진 부상으로 신체적,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선수 생활의 황혼기에 접어든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고 했다.
키리오스는 "어떤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내가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는 설명하고 싶다"며 "최근 몇 년간 계속된 부상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나에게 엄청난 타격을 줬다"고 말했다.
이어 "내 몸은 더 이상 내 머리가 기대하는 만큼 움직여주지 않았다. 선수 생활이 끝에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나는 항상 내가 테니스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테니스가 나를 선택했다고 말해왔다"며 "하지만 내 인생의 전부였던 것을 놓아주는 일은 지금까지 겪었던 것 가운데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다. 때로는 무력하고 혼자라고 느꼈다"고 밝혔다.
키리오스는 2022년 윔블던 남자단식에서 준우승하며 전성기를 누렸지만 이후 잇따른 부상으로 긴 부진에 빠졌다. 특히 2024시즌은 부상으로 통째로 뛰지 못했다.
로이터통신은 "손목 재건 수술과 무릎 수술을 받은 키리오스는 2023년 이후 지금까지 단 10경기만 소화했고, 그 여파로 세계랭킹도 크게 떨어졌다"고 짚었다.
키리오스는 올해 윔블던에서 알렉산더 부블리크와 함께 복식에 출전하며 재기를 노렸지만 1회전에서 탈락했다.

이번 사건이 더욱 큰 관심을 받는 이유는 키리오스의 과거 발언 때문이다.
키리오스는 그동안 테니스계 도핑 문제와 관련해 가장 강경한 목소리를 내온 선수 중 한 명이었다. 특히 야닉 시너와 이가 시비옹테크가 각각 도핑 문제에 연루됐을 당시 공개적으로 이들을 비판했다.
키리오스는 당시 "세계 1위 선수 두 명이 모두 도핑 문제에 걸렸다는 것은 우리 스포츠에 역겨운 일"이라며 "정말 끔찍하게 보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국의 징계 수위 역시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취지로 비판한 바 있다.
시너는 2024년 두 차례 약물 검사에서 극미량의 아나볼릭 안드로겐 스테로이드인 클로스테볼이 검출됐다. 이후 3개월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지만 고의적인 잘못은 없었던 것으로 인정됐다.
시비옹테크 역시 호르몬 및 대사 조절제인 트리메타지딘 양성 반응으로 한 달간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아들였다.
남들의 도핑 사건을 향해 '역겹다'는 표현까지 사용했던 키리오스가 이번에는 직접 금지약물 양성 반응의 당사자가 된 셈이다.
로이터통신도 "특히 이번 사건은 키리오스가 과거 도핑 문제에 대해 상당히 강경한 목소리를 냈던 선수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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