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야구 한 시즌 관중 233만명대에 머물던 2004년, KBO 리그는 짙은 '암흑기'를 지나고 있었다. 경기당 평균 4300명 정도의 텅 빈 관중석을 배경으로 프로야구 무대에 첫발을 내디뎠던 대형 유망주는 긴 방황과 인고의 세월을 거쳐 KBO 리그 역대 최고의 '국민 거포'로 우뚝 섰다. 4년 연속 홈런왕, 2년 연속 50홈런이라는 압도적인 족적을 남긴 박병호(40) 키움 히어로즈 잔류군 코치의 이야기다.
스타뉴스가 창간 22주년을 맞아 창간 연도인 2004년에 지명돼 그라운드를 빛낸 주역들을 만났다. 화려했던 현역 생활을 뒤로하고 지도자로서 후배 양성에 전념하고 있는 박병호 코치와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2004년 지명 당시와 1000만 관중을 돌파하며 흥행의 최전성기를 맞이한 현재 야구 열기를 모두 경험한 박 코치의 감회는 남달랐다. 박 코치는 "입단 당시에는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것 자체가 오랜 꿈이었기 때문에 관중석에 팬이 적다는 사실을 크게 의식하지는 못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지금은 주말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관중석이 가득 차고, 팬들의 연령층도 훨씬 다양해진 것 같다. 야구의 인기가 정말 높아졌음을 실감한다"고 전했다.
그는 현역 시절을 돌아보며 팬들의 소중함을 거듭 강조했다. "많은 팬이 야구장에 찾아와 주실수록 선수들의 집중력과 승리의 기쁨은 배가 됐다"며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모두 지금 프로야구가 받는 뜨거운 사랑을 절대 당연하게 여겨선 안 되며, 늘 감사한 마음을 품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1차 지명의 높은 기대 속에 입단했지만, 박 코치의 전성기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1군 무대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던 긴 암흑기를 버텨낸 결정적 원동력은 다름 아닌 '주변의 믿음'이었다. 박 코치는 "자리를 잡지 못하던 시절에도 남들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훈련하며 땀을 흘렸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아 실망이 컸다"며 "그럴 때마다 포기하지 않도록 나를 믿고 다독여준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넥센(현 키움) 히어로즈로의 이적은 야구 인생의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 박 코치는 "당시 김시진 감독님과 코치님들께서 부진할 때도 끝까지 믿고 경기에 나설 기회를 주셨다"며 "그 믿음에 반드시 보답해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었다"고 덧붙였다.
최근 세이버메트릭스와 트래킹 데이터가 지배하는 현대 야구에서도 박 코치가 강조하는 타격 철학은 확고했다. 바로 '힘의 전달'이다. 박 코치는 "선수 시절에는 데이터 도입 단계에서 미국과 일본의 선진 정보를 받아들이는 입장이었다"며 "최근 발사각을 높여야 홈런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많지만, 단순히 띄우기만 한다고 홈런이 되는 것은 아니다. 힘을 온전히 싣지 못하면 그저 높은 뜬공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데이터를 참고하되 얽매이지 않았다"며 "타격의 본질은 공에 힘을 완벽히 전달해 '강한 타구'를 만들어내는 것이며, 이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현재 잔류군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박 코치는 2004년의 자신처럼 기회를 기다리는 후배들을 보며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다. 지도자 생활 8개월 차를 맞은 그는 "스스로 의욕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동시에, 선수들이 나를 믿어주는 만큼 책임감을 갖고 때로는 따끔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박 코치가 선수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메시지는 '후회 없는 과정'이다.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당장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훗날 돌아봤을 때 '더 열심히 할걸'이라는 후회가 남는다면 너무나 아쉬운 일"이라며 "적어도 스스로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자신과 체격이나 포지션이 비슷한 선수들의 플레이를 유심히 관찰하며 장단점을 비교·분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끊임없이 보고 배우는 과정을 거쳐야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고 애정 어린 조언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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