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에는 그저 돌풍인 줄 알았다. 하지만 한 번도 지지 않고 무려 9번이나 연속해서 이겼다. 한국 프로농구 역사상 그 어떤 팀도 이루지 못했던 대기록이다. 이쯤 되면 더 이상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5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던 서울 삼성이 당당한 우승후보로 떠올랐다.
김상식 감독이 이끄는 삼성은 지난 30일 고양 소노아레나에서 열린 고양 소노와 2026~2027 KCC 프로농구 정규리그 원정 경기에서 95-87로 승리했다.
이로써 삼성은 개막 9연승을 질주하며 단독 선두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무엇보다 KBL에 새로운 역사를 썼다.
종전 KBL 개막 최다 연승 기록은 8연승이었다. 2011~2012시즌 원주 동부(현 DB), 2014~2015시즌 고양 오리온이 달성한 바 있다. 하지만 삼성은 두 팀을 뛰어넘어 KBL 역사상 최초로 개막 9연승을 달성한 팀이 됐다.
여기에 KBL 최초의 1라운드 전승이라는 또 하나의 대기록까지 세웠다. 1997년 프로농구 출범 이후 개막 첫 라운드에서 9전 전승을 거둔 팀은 삼성이 처음이다.
삼성 구단 역사에도 의미 있는 기록이다. 삼성은 2008~2009시즌 이후 17년 만에 구단 최다인 9연승과 타이를 이뤘다.
삼성의 지난 몇 년간 성적과 비교하면 더욱 놀라운 일이다. 삼성은 2021~2022시즌부터 지난 2025~2026시즌까지 무려 5시즌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다. 이 기간 270경기에서 69승 201패, 승률 25.6%에 그쳤다. 지난 시즌에도 16승 38패로 최하위에 머물렀다.
삼성은 한국 농구를 대표하는 명문 구단 중 하나다. 하지만 그동안 오랜 침체기에 빠졌다. 최근 5년 동안에는 최하위가 익숙할 정도였다.
올 시즌을 앞두고도 삼성의 전망은 밝지 않았다. 지난 7월 김상식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았지만 뚜렷한 전력 보강은 없었다. 오히려 이원석과 박승재가 군에 입대했고, 이대성도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시즌 개막 미디어데이에서도 삼성은 우승후보로 주목받지 못했다. 당시 DB는 다른 9개 구단 감독 중 무려 7명으로부터 우승후보로 지목받았다. 반면 삼성을 선택한 감독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모두의 예상을 뒤집었다. 삼성은 지난 4일 수원 KT와 개막전에서 승리한 것을 시작으로 안양 정관장, 소노, 창원 LG, 원주 DB를 차례로 제압했다. 이후 부산 KCC와 울산 현대모비스, 대구 한국가스공사까지 꺾었다. 그리고 다시 만난 소노를 상대로 KBL 최초의 개막 9연승을 완성했다.
승리의 내용도 달라졌다. 이전처럼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삼성은 지난 11일 소노전에서 4쿼터에만 11점 차 열세를 뒤집었고, 경기 종료 6초 전 케렘 칸터의 극적인 역전 3점포에 힘입어 82-81로 승리했다.
지난 17일에는 우승후보 1순위 DB를 상대로 원정에서 95-92 승리를 거뒀다. 박빙의 승부에서도 집중력을 발휘하며 승리를 가져왔다. 과거 승부처에서 쉽게 무너지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KBL 새 역사를 쓴 30일 소노전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삼성은 1쿼터부터 32-26으로 앞서며 기분 좋게 출발했다. 2쿼터에도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고, 전반을 56-46으로 마쳤다.
하지만 3쿼터 들어 위기가 찾아왔다. 삼성은 3쿼터에만 무려 9개의 실책을 범하며 흔들렸다. 3쿼터 득점은 단 14점에 그쳤다. 설상가상 크리스 맥컬러까지 언스포츠맨라이크 파울 누적으로 퇴장당했다.
삼성은 3쿼터를 70-69, 단 1점 차로 앞선 채 마쳤고, 4쿼터에는 76-78로 역전까지 허용했다. 개막 후 첫 패배의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삼성은 칸터의 골밑 득점으로 동점을 만들었고, 저스틴 구탕과 이규태의 연속 3점포로 다시 리드를 가져왔다. 여기에 이관희의 득점까지 더해지며 순식간에 86-78로 달아났다.
종료 31.5초를 남기고는 이규태가 쐐기 3점포를 터뜨렸다. 삼성은 마지막 4쿼터에서 소노를 25-18로 압도하며 승리를 확정했다.
칸터가 32점 12리바운드로 골밑을 지배했고, 이관희는 3점슛 3개를 모두 성공시키며 18점을 올렸다. 맥컬러도 퇴장 전까지 15점 10리바운드로 힘을 보탰다. 구탕은 11점 7어시스트, 한호빈은 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외곽포에서도 차이가 뚜렷했다. 삼성은 3점슛 성공률 50%(11/22)를 기록한 반면, 소노는 38개를 던져 단 10개만 성공시켰다. 성공률은 26%에 그쳤다. 리바운드에서도 삼성이 37-26으로 크게 앞섰다.
이날 삼성은 무려 19개의 실책을 범했지만, 이를 극복하고 승리를 가져왔다. 경기력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끝내 승리할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삼성의 상승세에는 김상식 감독의 지도력을 빼놓을 수 없다. 김 감독은 2022~2023시즌 안양 KGC인삼공사(현 정관장)의 통합우승을 이끈 지도자다.
올 시즌 삼성에서도 빠르게 자신의 농구를 입혔다. 칸터와 맥컬러의 골밑 장악력에 국내 선수들의 적극적인 움직임과 외곽 공격이 더해지면서 전력이 한층 탄탄해졌다.
한호빈과 구탕이 경기 조율을 맡고, 칸터가 골밑에서 중심을 잡는다. 여기에 베테랑 이관희의 득점력과 이규태 등 젊은 선수들의 성장세까지 더해졌다.
특정 선수 한 명에게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도 삼성의 강점이다. 매 경기 다른 선수가 해결사로 등장한다. 무엇보다 승부처에서 쉽게 무너지지 않는 팀으로 달라졌다.
김상식 감독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김 감독은 소노전 승리 후 방송 인터뷰에서 개막 9연승 소감을 묻자 "시즌 초반이고 1라운드이긴 하지만 꿈만 같다. 선수들을 칭찬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삼성의 연승 행진에 오랜 팬들도 뜨거운 응원을 보내고 있다. 삼성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올드팬들에게는 더욱 특별한 시즌이 되고 있다.
김 감독은 "팬 여러분께 너무 감사드린다. 이기는 것은 팬들에게 보여드리기 위해 연습한 것이다"라며 "앞으로 지는 경기가 나올 수 있겠지만 그때도 우리가 하는 플레이를 잊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물론 아직 시즌 초반이다.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순위 경쟁과 긴 시즌을 거치면서 삼성의 진정한 경쟁력도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성과를 단순한 행운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9경기 연속 승리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달라진 공격력과 끈끈한 팀워크, 그리고 위기에서도 끝까지 승리를 만들어내는 집중력이 이를 뒷받침한다.
처음에는 이변이었고, 그다음에는 돌풍이었다. 하지만 KBL 최초의 개막 9연승까지 달성한 지금, 삼성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제 삼성도 우승후보로 평가받을 자격을 충분히 증명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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