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해진이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소장중인 나이키 운동화와 건담 프라모델 일부를 공개했다. 박해진은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촬영 도중 짬을 내 마니아인터뷰에 응했다.
관점의 수는 세계의 수다. 관점이 많을수록 많은 세계를 알 수 있다. 마니아는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관점, 세계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스타뉴스는 연예인 마니아를 소개하려 한다. 부디 새로운 관점을 알게 돼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길 바란다.
지친 표정이었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선 박해진은 의자에 털썩 앉았다. SBS '별에서 온 그대' 이날 밤 방영분을 이날 새벽 6시까지 찍고 잠시 눈을 붙였다 오는 길이라고 했다.
다짜고짜 물었다. 왜 건담을 좋아하냐고. 박해진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의자를 앞당기며 눈을 마주쳤다. 박해진은 "어릴 적부터 건담을 좋아했는데 살 수 있는 형편이 안됐다. 데뷔 이후 여유가 생기니깐 조금씩 모으기 시작한 게 어느덧 집을 가득 메운다"고 했다. 연기를 정말 잘한다고 칭찬을 해도 이 만큼 싱글벙글 할 수 있을까, 장난감을 처음 산 어린아이 같은 표정이었다. 여유. 마니아 박해진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다. 여유와 결핍은 동전의 양면이다.
'마니아 넘버원'인터뷰는 지난 2월 진행됐음을 알려드립니다
건담. 정확히 기동전사 건담. 1979년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이 첫 TV시리즈를 선보인 이래 지금까지 수많은 골수팬을 거느리고 있는 세계다. 건담 마니아 월드는 79년 첫 선을 보인 퍼스트 건담과 Z건담까지만 진짜로 치기도 하고, 더블Z건담까지는 인정할 수 있다는 파와 그 뒤로 등장한 건담 중에서도 콧수염 건담이라 불리는 턴에이 건담까지는 괜찮다, 아니다, 턴에이는 토미노 요시유키의 외도다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의견들이 쌓이고 충돌하는 우주다. 건담에서는 새롭게 등장한 신인류를 뉴타입이라고 부른다. 90년대 한국에서 새로운 세대를 X세대라고 부른 것처럼 일본에선 신세대를 뉴타입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건담 마니아들은 자신을 뉴타입이라고 여기는 경향도 있다. 남과 다른, 그러면서도 소통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박해진도 그럴까?

박해진은 퍼스트 건담, 그러니깐 RX-78를 좋아한다고 했다. Z건담도 좋아하지만 퍼스트 건담이 제일 못생기고 고전적이라 좋다고 했다. 무엇보다 기본에 충실해서 좋다고 했다. 못생기고 고전적이고 기본에 충실한 게 좋다는 것이다. 마니아 박해진을 엿볼 수 있는 두 번째 키워드다.
재밌는 건 박해진은 건담 애니메이션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하다. 박해진 어린 시절은 일본 문화가 개방되기 전이었다. 지금처럼 건담이 애니메이션 채널에서 수시로 방송되는 때가 아니었다. 건담 애니메이션은 입는 집 자식들만 알음알음 그 귀하던 소니 베타맥스 비디오로 볼 수 있었다. 없는 집 자식들은 해적판으로 문방구에서 팔던 건담 소개집 다이나믹콩콩 코믹스를 통해 눈요기만 했더랬다. 그리고 건담 프라모델을 용돈을 모아 겨우 마련하곤 했다.
박해진에게 건담은 그랬다. 그래서 퍼스트 건담이었다. 박해진은 건담 피규어는 너무 거창한 것 같다며 퍼스트 건담 관련 각종 프라모델을 모으고 조립하고 색칠한다고 했다. 그는 일본에 팬미팅이라도 갈 일이 생기면 오타쿠의 성지라고 불리는 아키하바라에서 발품을 팔아가며 새로운 건담을 찾곤 했다. 몇 시간을 뒤진 끝에 발견한 건담은 어린 시절 잃어버린 친구를 만난 기분이었다.
건담 마니아들은 종종 건담 월드 속 캐릭터들과 자신을 비교하곤 한다. 콤플렉스가 강한 Z건담의 주인공 카뮤 비단, 재능은 넘치지만 반항하고 방황하는 퍼스트 건담의 아무로 레이, 자신을 숨기고 오랜 시절 절치부심하는 왕자님 샤아 아즈나브로,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아버지처럼 따르던 사람을 죽이고 자신마저 산화하는 파멸의 하사웨이 등등등. 박해진은 애니메이션을 본 적이 없어 어떤 캐릭터를 특별히 더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인상 깊은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한 여성팬이 자신의 남편이 건담 피규어를 만드는 일을 한다며 샤아 아즈나브로 흉상에 박해진 얼굴을 새겨서 선물했다는 것이다. 사랑하면 보게 되고, 보게 되면 이해하려는 법이다. 건담 마니아들은 박해진에게서 샤아 아즈나브로를 느꼈던 것 같다. 발톱을 숨겨야만 했던 외로운 왕자.
박해진은 친구 이름으로 일본 옥션에서 희귀한 건담을 사 모으기도 했다. 그는 촬영하는 종종 대기 시간에 건담 프라모델을 조립한다. 집중할 수 있는, 스트레스를 달랠 수 있는, 혼자만의 조용한 세계로 떠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렇게 만들고 모은 건담이 방을 차고 넘치자 박해진은 새로운 세계로 뛰어들었다.
다음 아닌 나이키 운동화. 박해진은 어릴 적 꼭 사고 싶었지만 못 샀었던 게 뭘까라고 생각하다가 나이키 운동화를 떠올렸다. 중학교 시절 눈으로만 지켜보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야 했던 나매인(나이키 매니아) 커뮤니티를 다시 찾아 들어갔다.

하나 둘 모으기 시작한 나이키 운동화는 어느덧 500~600쪽을 넘어섰다. 승리의 여신을 숭배하는 신자라 그런지 박해진이 나이키 운동화를 꺼내는 모습은 소믈리에가 고급 와인을 디캔딩 하듯 조심스럽고 아름다웠다. 그렇다. 아름다웠다.
박스를 열고 한쪽씩 밀봉한 운동화를 지문이라도 묻을까 조심스럽게 꺼낸 다음 다시 박스 위에 최적의 각도로 보이도록 신중하게 올렸다. 일절 다른 사람들이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박해진은 "얼마 전 '라디오스타'에서 김구라가 케이윌의 장난감을 떨어트렸을 때 케이윌 얼굴표정이 굳은 걸 봤는데 정말 공감한다"며 "열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자식은 없는 법"이라고 했다.
하나씩 나이키 여신들을 소개하기 시작한 박해진. 그는 이날 이른바 '슬램덩크' 서태웅 신발이라고 알려진 나이키 에어조던6를 신고 왔다. 박해진은 에어이지1은 정말 어렵게 미국의 지인을 통해서 구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르브론8 로우 같은 경우는 원하는 모델을 찾기 위해 6개월 동안 옥션을 뒤졌었단다.
그러던 어느 날, 하필이면 중국에서 드라마 촬영을 하는 도중 6개월을 찾아 헤매던 모델이 옥션에 올라왔다. 직구(직접구매)도 아니라 경매가 붙어야 했다. 박해진은 드라마 촬영 도중 혹시라도 경매 마지막에 누가 낙찰을 받지 않나 노심초사하다가 마지막 베팅을 붙어서 끝내 성공했다고 털어놨다. 촬영장에서 만세를 외쳤다가 스태프들이 무슨 일이냐고 달려와서 "신발을 샀어"라고 신나서 말했다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다.
박해진은 내친김에 중국에서 배우 진관희가 대표로 있는 스트릿브랜드 CLOT과 콜라보레이션한 에어맥스를 찾아다녔다. 현지에서 촬영하다가 쉬는 날 틈틈이 CLOT 매장을 계속 찾아가 매장 매니저와 안면을 텄다. 결국 매장 매니저는 박해진이 촬영을 마치고 중국을 떠나기 직전 진관희 친필 사인이 들어있는 콜라보레이션 에어맥스를 구해서 안겨줬다. '나매인'은 어디서나 통하는 법인지. 아니면 사랑하는 게 같은 사람들은 더 끌리는 법인지.

술이나 커피도 잘 안하고 교제도 서투른 박해진에게 나이키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해줬다. 박해진은 나이키 구매용 휴대전화를 별도로 구입해서 직접 옥션에서 구매하거나 중고를 주고받곤 했다. 그러다가 그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고수들이 점잖게 충고를 했단다. 신상을 털릴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연예인이 잘난 척한다고 하기보단 나매인 막내 같은 느낌으로 아껴줬단다. 박해진은 고수들에게 조언도 구하고 동네형처럼 인생의 선배처럼 많은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신발은 그에게 또 다른 세계와 사람들을 만나게 해줬다.
"사실 나이키를 신고 나가면 웬 정장에 운동화냐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고수분들은 오래 전부터 그런데도 사랑하는 신발을 애용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린 연예인들이 많이 신고 다니다 보니 나이 먹어서 연예인 따라한다는 소리를 듣곤 하신다."
다른 관점을 알아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신이 나서 이야기하던 박해진은 어느덧 '별에서 온 그대' 촬영시간이 다가왔다며 아쉬워했다. 짧은 겨울해는 저물어가고 있었고, 그는 다시 꺼내놨던 나이키들을 하나씩 하나씩 조심스럽게 박스에 되돌렸다.
"언젠가는 건담이나 나이키와도 이별을 해야겠죠. 신발은 특히 아무리 정성을 기울여도 가수분해되어서 사라져 버리게 돼요. 그전에 정말 의미 있게 이별하고 싶어요."
언젠가 모를 그 때가 생각났는지 박해진의 얼굴에 애잔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악수를 하다가 손목에 찬 시계가 지쇼크인 걸 보고 물었다. 콜라보레이션 같다고. 박해진은 지쇼크 콜라보레이션을 모은다고 했다. 지쇼크를 모은다는 건 어릴 적 지쇼크에 대한 결핍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지쇼크와 나이키, 그리고 건담이 박해진에게 어떤 의미인지 조금씩 느껴졌다.
박해진은 고향을 떠나 새로운 세계를 찾아서 마니아별을 떠돌고 있는 어린 왕자가 아닐까? 그가 여우를 만나고 다시 돌아와 장미를 만날 그날이 기다려진다. 그날이 오면 건담 마니아와 나이키 마니아들은 기뻐하리라. 희귀품이 시장에 잔뜩 풀릴 테니.
글 : 스타뉴스 전형화 기자 aoi@mtstarnews.com
사진 제공 : 스타뉴스 임성균 기자 tjdrbs2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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