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한복 입은 남자' 작가 이상훈 인터뷰

#. 장영실. 세종의 총애를 받아 노비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종3품까지 올라갔다 세종이 가마를 잘못 설계했다는 이유로 역사에서 사라진다. 그는 측우기, 신기전, 간의대 등을 만들어 조선의 과학 발전에 큰 공을 세우지만 1442년 가마사건 이후로 기록에서 사라진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 기중기, 다연발 로켓, 물시계, 비차(飛車)로 서양 르네상스를 여는데 기여한다. 유럽에 풍경화라는 개념이 없던 1473년 '산타 마리아 델라 네베의 풍경'라는 서양미술사 최초의 풍경화를 남긴다. 이 그림은 놀랍도록 동양의 산수화를 닮았다.
장영실과 레오나르도 다빈치, 동양과 서양 그리고 40여년의 시간 간격 등 도저히 인연을 닿을 것 같지 않은 이들이 사제지간이었다면? 장영실이 자신의 사상과 아이디어를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전수했다면? 그래서 서양의 르네상스가 시작됐다면? 이는 물론 가정이다. 하지만 장영실과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만나지 못했을 이유는 없다.
장편소설 '한복 입은 남자'(박하)의 작가 이상훈은 이 '장영실과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만나지 못했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이 소설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애초 이상훈은 장영실 소설을 쓸 계획이 아니었다. 당초 그의 관심은 세종이었다. KBS PD 출신인 그는 10년 전 세종에 대한 영화를 준비하다 장영실을 만났고, 이후 10년을 준비해 '한복 입은 남자'를 완성했다.
"세종대왕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인간 세종에 대한 콘텐츠가 좋다고 해서요. 세종이 인간적인 약점도 많았거든요. 이걸 살리면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장영실이 보이는 겁니다. 세종과 관련된 기록에는 장영실이 빠짐없이 등장했거든요. 그런데 1442년 가마사건 이후에 장영실과 관련된 기록이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진 거예요. 조선은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유네스코세계유산이 증명하듯 기록의 국가인데,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장영실'이라는 이름 석 자가 사라진 거예요.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죠."
역사에서 사라진 장영실만 계속 생각하던 그 앞에 어느 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나타났다. 우연히 레오나르도 다빈치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장영실과 그가 동시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
"다빈치가 장영실과 동시기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는 장영실을 알고 싶어 다빈치를 더 캤어요. 자료를 조사하다보니 다빈치가 동양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거예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죠. 다빈치의 스승은 장영실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장영실이 다빈치의 스승이 되려면 둘이 만났다는 전제가 필요했다. 조선과 이탈리아, 이역만리 멀리 떨어진 둘을 어떻게 만나게 할까. 연결고리가 필요했다. 그러다 명나라 영락제 때부터 선덕제까지 대선단을 이끌고 동아프리아까지 갔던 정화(鄭和)가 그 앞에 또 나타나게 된다.
"장영실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연결고리를 계속해 찾았어요. 실크로드도 생각해봤죠. 그런데 막연했어요. 그러나 정화를 만난 겁니다. 그도 어느 순간 역사에서 사라졌거든요."
이상훈은 "정화를 발견한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흐르면서, 감사했다"며 "정화에 대한 마지막 기록이 장영실과 다빈치를 연결시키고자 했던 나에게 빛을 줬다"고 했다.
"정화는 자신을 지원하던 영락제가 죽고 신하들의 반대로 원정이 중단되자 배 2척만 남기고 부하들은 귀국시키고 사라졌어요. 여기까지가 역사적 사실이죠. 정화에게는 조선 환관 출신 부하가 있었다고 해요. 장영실이 정화를 만났다는 기록은 없지만 만났을 가능성도 있죠. 장영실이 12번이나 명나라에 갔다는 기록은 있으니까요."
이상훈은 천자의 나라에서만 가능한 천체관측을, 조선이 장영실이 만든 간의대로 하려하자 명나라가 세종을 압박했고, 이에 장영실을 잃을 수 없었던 세종이 가마사건으로 장영실을 관직에서 물러나게 하고 피신시켰다고 가정했다. 소설은 정화가 또 다른 모험을 떠나기 위해 산둥 반도에서 후일을 도모했고 그 시기를 가마사건이 있었던 1442년으로 해 장영실과 정화를 만나게 한다. 장영실이 다빈치를 만나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그리고 장영실은 정화의 힘을 빌려 천만 길 떨어진 바다를 건너 유럽으로 가 어린 다빈치를 만나게 된다.
이상훈은 루벤스의 '한복 입은 남자'를 자신의 소설이 허구가 아닌 있을 법한 사실로 만드는 데 활용한다. 얘기를 들어보면 정말 장영실이 다빈치를 만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종전까지 루벤스의 '한복 입은 남자'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인 소년을 이탈리아 상인 안토니오 카를레티에게 일본 측 기록에 따라 조선인 소년에게 안토니오 꼬레아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 소년이 그림 속 주인공이라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한복 입은 남자' 속 남성이 입은 옷은 성인 남자의 의복이다. "옷 자체가 성인의 복장이에요. 소년이 성인의 의복을 입고 있을 리 없잖아요. 따로 챙겨갔을 리는 더욱 없고요." 그는 "그림 속 옷의 하단을 보면 속치마를 입은 것처럼 겉옷 밖으로 안에 입은 옷이 나와 있어요. 이건 조선 전기 사대부가 즐겨 입던 양식입니다. 중기에는 속에 입은 옷이 겉옷 밖으로 나오지 않게 되죠. 결국 '한복 입은 남자' 속 남성의 복장은 조선 초기, 최소한 임진왜란 이전의 복장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림 속 인물도 조선 전기의 인물이거나 그 후손이라는 얘기가 되는 거죠."

이상훈은 "그림의 왼쪽에 보면 희미하게 배가 보이는데 배가 바닥이 평평해요. 당시 서양배는 유선형이었요.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당시 서양 초상화에서는 인물에 대한 정보를 그림 속에 그려 넣었는데 이걸 보면 그림 속 인물이 이탈리아 배를 타고 갔던 조선인 소년 안토니오 꼬레아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가 장영실이거나 그 후손일 수 있다는 얘기다. 가정이지만 제법 설득력이 있다.
"유럽에서는 다빈치가 그의 알려진 스승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 밑으로 가기 전, 15살 무렵에 동양에서 배웠다는 가정이 꽤 많이 나오고 있어요. 미드 '다빈치 디 몬스(Da Vinci's Demons)'도 그 가정을 바탕으로 했는데, 다빈치의 어릴 때 스승을 동양에서 왔다고 그리고 있어요. 드라마 속에서는 터키인으로 묘사되죠."
이상훈은 자신의 이 사실 같은 가정에 살을 덧붙여 1년에 걸쳐 책을 썼다. 집필실 벽에 조선 역사, 동양 역사, 서양 역사를 붙여 놓고 들여다보며 썼다. 원래는 2권 800쪽 정도 분량이었지만 계속 줄이고 줄여 500쪽 분량 1권으로 완성했다. 하지만 책에는 거의 모든 페이지에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각주가 붙어있을 정도로 정성을 기울였다.
이상훈은 이 소설을 왜 썼을까. '한복 입은 남자'는 곧 영화화될 계획이다. 한중합작영화로 만들어진다. 이상훈은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이상훈은 왜 장영실에 집중할까.
"국수주의나 애국주의의 발로는 아닙니다. 왜 우리는 우리 조상 중에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가 있는데, 다빈치에는 열광하면서 장영실에는 그리 인색하냐는 거예요. 저는 우리 역사의 영웅을 이순신 장군과 장영실, 두 사람을 꼽고 싶어요. 이순신 장군은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성웅'이 반열에 올랐죠. 장영실은 어머니가 기생이었어요. 본인은 노비 출신이었고요. 그런 상황을 이겨내고 위대한 과학자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희망을 잃은 세대라고 하는데 장영실을 보면서 희망을 키웠으면 합니다."
◇작가 이상훈
성균관대 행정학과 졸업. 1987년 KBS 공채 14기 PD로 입사. SBS 개국 멤버로 다수의 예능프로그램과 시트콤을 기획, 연출했다. 동아일보 채널A 제작본부장으로 채널A 전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트렌드를 포착하는 앞선 기획과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따뜻한 연출력을 인정받아 한국방송대상과 한국방송 프로듀서상, 방송 기자가 뽑은 최고의 프로그램상, 문화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영화 '돈텔파파', '마파도2', 뮤지컬 '문나이트'의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았으며, '고향생각', '더 늦기 전에 부모님의 손을 잡아드리세요', '유머로 시작하라' 등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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