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부 관리도, 운동도 멈추고 머릿결까지 일부러 상하게 했다. 하지만 하지원이 '비광'을 위해 내려놓은 것은 외적인 모습만이 아니었다. 데뷔 30년 차에 '나는 왜 배우를 하는가'를 다시 묻고, 처음 연기하던 때의 떨림으로 남미를 만났다.
'비광'은 톱스타 부부 중구(류승룡 분)와 남미(하지원 분)가 갑자기 나타난 중구의 딸 동주(김시아 분)로 인해 파경을 맞은 뒤 8년 후 충격적인 사건에 휘말린 동주를 구하기 위해 마지막 남은 모든 것을 걸고 진실을 파헤치는 '미쓰백' 이지원 감독의 찐한 가족 연대기.
하지원은 톱스타였지만 갑자기 나타난 동주로 인해 한순간 추락해 생계형 연예인으로 살아가는 남미 역을 맡았다.
그동안 판타지와 액션 장르에서 강한 캐릭터를 주로 선보였던 하지원은 보다 현실적인 삶에 발을 딛고 있는 남미에게 매력을 느꼈다고 밝혔다.
그는 "판타지나 액션 장르에서 강한 캐릭터를 많이 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더 리얼한 삶에 놓인 캐릭터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며 "남미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그렇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굉장히 생생하게 느껴졌다. 류승룡 선배님과도 꼭 한번 호흡을 맞춰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특히 남미가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캐릭터 분석을 넘어 자신의 삶까지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하지원은 "보통 캐릭터는 분석하면서 하나씩 채워갈 수 있는데, 남미는 저와 마찬가지로 배우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보니 인물만 들여다본다기보다 저 자신을 회고하는 시간을 갖게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당시 'What am I', '나는 누구인가'라는 고민을 많이 하던 시기였다. '너는 누구고, 왜 배우를 하고 있니'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 남미를 만나게 됐다"며 "나라는 존재와 내가 살아가는 세상, 또 남미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서까지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비광'은 코로나19 여파로 촬영이 약 1년 미뤄지면서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오랫동안 고민할 시간도 생겼다. 하지원은 "촬영이 미뤄지면서 남미라는 캐릭터를 놓아버린 게 아니라 오히려 오래 붙잡고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며 "그래서 저에게 남미라는 인물이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감독님과 살아가는 이야기도 많이 했고, 제 이야기도 하고 감독님의 이야기도 들었다. 남미라는 사람이 우리가 놓인 사회 안에서 어떻게 버티고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도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캐릭터를 만들어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열심히 캐릭터를 준비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며 "충분히 숙성된 상태로 현장에 들어가니까 오히려 설레면서 마음껏 놀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지원은 "남미가 먹방을 찍으면서 '오랜만에 카메라 받으니까 살 것 같다'는 대사를 하는데, 저도 '비광' 촬영장이 오랜만의 영화 촬영이어서 살아 있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며 "신인보다 신인 같은 설렘으로 촬영했던 거라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되게 많았다"고 밝혔다.

하지원은 완성된 자신의 연기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그는 "제가 연기한 거라서 연기에 대한 만족감은 잘 모르겠다"며 "달라 보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연기한 것은 아니다. 남미의 삶에 놓여서 연기와 대사 톤, 의상, 헤어, 메이크업까지 남미라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공을 많이 들였다"고 설명했다.
특히 남미가 톱스타에서 생계형 연예인으로 추락한 세월을 외형적으로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데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원은 "립스틱 채도 하나도 같은 레드가 아니었다. 눈썹 모양도 바꾸고 남미가 힘든 삶에 놓여 있다는 무드를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의상 역시 캐릭터를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였다고. 그는 "옷 패턴을 보고 '밀림에 온 줄 알았다'고 할 정도였다"며 "그 옷을 입으면서 '남미가 이런 사람이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완성된 모습을 본 자신조차 낯설었다고 했다. 하지원은 "제가 촬영한 건데도 화면을 보면서 다가오는 낯섦이 있었다"며 "엄마에게도 보여드렸는데 충격을 받으신 것 같더라"고 웃었다.

남미의 지친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평소 하던 관리도 과감히 내려놨다. 하지원은 "머릿결을 일부러 상하게 만들었는데 촬영이 끝나고도 계속 상해 있더라. 남미의 흔적이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며 "일부러 탈색도 계속했다"고 밝혔다.
이어 "피부 관리도 받지 않고 운동도 하지 않았다. 남미 캐릭터에 맞게 삶에 지친 몸과 무드를 만들고 싶었다"며 캐릭터를 위해 외적인 부분까지 세심하게 설계했음을 전했다.
극 중 거친 욕설 연기에 대한 비하인드도 전했다. 앞서 이지원 감독이 하지원의 욕설 연기에 '20점'을 준 데 대해 하지원은 "그 점수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웃었다.
그는 "감독님이 후시녹음 때 직접 욕을 해서 넣으셨다는 것도 정말 몰랐다. 저는 제가 잘했다고 생각했다"며 "제가 욕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욕에도 숙성이 필요하다는 걸 몰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욕이라도 맛이 다른 것 같다. 단순히 욕을 뱉는 게 아니라 그 인물의 삶 안에서 한이 서린 욕을 하려고 열심히 했는데, 오랫동안 숙성된 욕과 단기간에 연습해서 하는 욕에는 분명 차이가 있더라"며 "감독님은 그 차이를 느끼셨던 것 같다. 그래도 20점은 너무 실망스럽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원은 후시녹음 과정에서도 욕설 한마디를 위해 수십 차례 녹음을 반복했다고 밝혔다. 그는 "후시 때도 수십 번을 뱉은 것 중 가장 잘된 걸 골랐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며 "남미에게 욕은 단순히 거친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인생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서 대본에 욕이 적혀 있지 않은 순간에도 남미라면 자연스럽게 욕이 나올 것 같은 부분에서는 계속 욕을 해봤다"며 캐릭터의 삶에 녹아든 표현을 만들기 위해 고민했다고 전했다.

또한 하지원은 데뷔 30년 차 만난 '비광'을 통해 배우라는 직업과 자신의 존재를 다시 돌아보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나는 누구이고, 왜 배우를 하고 있지?'라는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씀드렸는데, 마침 그 시기에 남미라는 캐릭터를 만났다"며 "'비광'은 제게 연기를 처음 시작하는 것 같은 마음을 다시 느끼게 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신나고 흥분되는 감정이라기보다, 더 깊이 들어가서 나라는 존재를 되돌아보는 과정이었다"며 "고민이 많던 시기에 촬영한 작품이라 정말 연기를 처음 할 때만큼 떨리는 마음으로 임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오랜 시간 배우로 활동해왔지만, '비광' 이후 배우라는 직업을 대하는 태도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하지원은 "많은 작품을 해왔지만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그만큼 책임감도 더 따라야 한다고 느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예전처럼 가볍게 '이런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만 하기보다, 이제는 한 작품 한 작품을 선택할 때 그 작품과 캐릭터, 그리고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까지 더 많이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배우로서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작품에 임하고 싶다"고 말했다.
향후 작품에 대한 기대도 전했다. 하지원은 "좋은 작품을 늘 기다리고 있다"며 "감독님들이 좋은 작품을 많이 주셨으면 좋겠다"고 웃으며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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