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심 "난 고두심을 가리려 노력한다"(인터뷰)

김겨울 기자 / 입력 : 2008.08.07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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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미 춘자다. 춘자가 소주 잔을 비울 때 나는 이미 외롭고 춘자가 헤프게 웃을 때 나는 이미 화장을 마쳤다. 그런데도 대중들은 신기하게도 그 속에 고두심을 발견해내더라. 그래서 난 고두심을 가리려 노력한다."

'드라마는 있고 인물은 없으면 안 된다. 배우는 있고 드라마가 없으면 안되기에 배우는 매번 본인을 가려야 한다.'


연기 경력 40년째에 접어든 고두심의 철학이다. 지난 5일 일산 MBC 드림센터에서 고두심을 만났다.

‘사랑의 굴레’의 "잘났어 정말"을 외치던 잘난 여자, ‘전원일기’의 20여년 한결같았던 수수한 맏며느리,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가슴에 빨간약을 문지르던 치매 걸린 엄마, '한강수타령'에서 방수 앞치마를 두른 억척스런 생선장수. 고두심의 드라마를 볼 때면 매번 변하는 그의 모습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동안 인물 변화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MBC '춘자네 경사났네'의 춘자는 파격적이다. '춘자네~'가 첫방송하던 날 고두심은 번진 마스카라, 시퍼런 눈에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곤 몸에 착 달라붙는 야시시한 원피스를 입고 등장했다. '빨간' 고두심에 놀란 지인들과 팬들은 처음에 강하게 부담을 보였다.


"사람들이 얘기 많이 했지. '전원일기'를 오래해서 그런가. 나는 좀 참한 모범 엄마 아니면 억세고 희생적인 엄마상이잖어. 근데 춘자는 살랑살랑 대고 좀.. 그래도 배우는 갈증이 있지. 여러 역을 해봐야 하는.."

'그래도 춘자는 너무 심한 이미지 변신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고두심은 쑥스러워하며 답했다. "촌스럽긴 하지.(웃음) 근데 춘자잖어."

고두심은 춘자 역을 맡아 촬영에 들어가기 앞서 화류계 퇴기를 표현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했다. 일부러 촌스런 70년대 화장과 스카프를 준비하고 오버스런 춘자의 리액션을 표현하기 위해 손동작도 연습했다. 살랑 살랑.

'뻑이 간다. 뻑이가'라며 요염한 윙크를 날리고 입을 쌜룩 꺼리며 손으로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디테일은 고두심이 아니면 그려지지도 않는다.

"저번 촬영을 하는데 대팔(강남길)이랑 헤어지기로 결심한 날, 달삼(김병세)이는 미덥지 않고 결국 혼자 소주를 마시는 장면인데 참.. 딱해. 춘자가 남자들하고 막 어울리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외로워."

고두심은 춘자를 50여회 해오면서 이젠 "딱" 소리가 난다고 말했다. 그만큼 배역에 몰입했다는 뜻. "딱 붙었어. 딱. 나랑..근데 시청률이 안 나와."

고두심은 배우로서 시청률에 자유롭지 못하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정혜선, 윤여정, 윤미라, 양희경, 임현식, 노주현, 강남길, 김병세 중견 연기자부터 왕빛나, 주상욱, 차기범, 서지혜, 한다민까지 이런 라인업은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다.

"다들 열심히 하는데 시청률 좀 나와야지. 내가 이렇게 변신까지 했는데 말야." 그리곤 "라인업이 너무 좋아서 오히려 작가가 쓰기가 힘들 수도."

그래도 고두심은 '아줌마 로망'을 자신을 통해 시청자들이 대리만족하고 있다는 사실에 신이 난다. "아무래도 극 중 사랑을 받는 역이면 행복하지. 근데 난 춘자랑 달삼이가 더 어울리는 것 같어. 대팔이는 안정적이긴 하지만 모랄까. 멋이 없잖어. 멋!"

고두심은 춘자가 달삼이랑 결혼해야 고교 때부터 원수였던 분희(윤여정)와 형님, 아우로 한 집에 살면서 티격태격하게 돼 재밌지 않겠냐며 웃는다.

고두심에게 다른 인기 드라마는 보는지 물었다. "그럼. 시간만 나면 보지. 특히 '엄마는 뿔났다'는 자주 봐."

"혜자 언니 그 찡얼대는 엄마 역 하는 거나, 거기다 부자 언니 그 능글능글하니 능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는 연기. 할아버지 역은 또 어때? 그렇게 역에 어울리는 배우들 모아놓기도 힘든 건데.."

고두심은 자신도 선배들의 연기를 볼 때면 탄성이 나온다고 말했다.

"72년 MBC 공채로 시작하고 한참동안 나는 주연급은 아니었지. 오히려 젊어서는 튀는 것도 아니고. 연기 못한다고 많이 울고 선배들한테 배우고 그랬지. 근데 요즘 후배들은 나한테 잘 묻질 않아. 내가 무서운가?"

고두심은 먼저 말을 걸지 못하는 성격이다. "사실 사람들은 내가 꽤나 강한 역할 많이 해서 카리스마 있을 거라고 오해하는데 의외로 소심한 구석이 있어 낯을 가리는 편이야. 그래도 의리파라 한 번 사귀면 깊이 챙기는 편인데." 그래서 그런가. 대한민국 섭외 1순위의 고두심이 시나리오 고를 때는 의외로 정에 의해 판단한다고.

"난 정에 약해. 같이 작업했던 스태프들이 부탁하면 잘 거절을 못해. 사실 춘자도 예전에 작업했던 구현숙 작가가 부탁한 거였으니까 했지. 아니었음 도전하기 쉬운 역은 아니지."

브라운관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고두심이 아직도 맡고 싶은 역이 있을까. "나는 가슴에 불덩이가 있거든. 그걸 태울 수 있는 로맨스 있잖아. 어려서 뜨거운 멜로를 안해봐서 그런지 그런 게 하고 싶어. 할 수 있을까?"

인터뷰 도중에도 춘자처럼 손을 흔들어대며 말하던 고두심은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거울을 보며 짙은 화장으로 얼굴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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