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올림픽]성별감정실 최초 설립, 인권침해 논란

역사적으로도 여장남자 걸러낸 적 없고 유전질환 보유 여성만 골라내

장웅조 기자 / 입력 : 2008.08.2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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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아시안게임에서 '남성'으로 밝혀져 은메달을 박탈당한 인도의 육상선수 산티 순다라얀. 그러나 나중에는 '안드로겐 불감 증후군'이라는 유전질환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24일 폐막한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세계최초로 성별감정실을 설립해 인권챔해 논란을 불렀다.

베이징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남성 선수가 좀 더 쉽게 메달을 따기 위해 여성으로 위장해 올림픽에 참가하는 경우를 적발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폐막일까지 성별검사에 탈락한 선수가 있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조직위는 개막전 베이징 씨에허 병원 지하1층에 '제29회 올림픽지정 성별검사 실험실'을 설치했다. 검사실의 주임인 허팡팡(河方方) 교수는 "예전 올림픽에서는 성별에 대한 평가만을 했지 실질적인 검사 실험실을 설치한 적은 없었다"며 해당 시설이 세계최초임을 강조했다.

성별검사는 모든 선수들에 대해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으로 의심되는 몇몇의 여성 '용의자'들에 대해서만 실시된다. 의심을 받은 선수에 대해서는 외모뿐만 아니라 성(性)호르몬, 유전자, 염색체 등을 검사한다.

비판자들은 해당 검사가 인권 침해적인 데다 과학적으로 엄밀하지도 못하다며 반발했다.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의 의료인문학 교수 앨리슨 드레거는 지난달 30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올림픽만 바라보고 평생을 기다렸던 현실의 선수들이 상처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검사가 너무 (인권) 침해적(intrusive)이라는 것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의무분과위원장인 안네 융가비스트도 "(성별감정은) 비윤리적이며, 비과학적이고, 차별적인 조치"라고 말했다.

1990년대부터 의학자ㆍ과학자ㆍ선수들이 이와 같은 의견을 본격적으로 제기해왔다. 96년 애틀랜타올림픽은 비판의 대표적인 대상이 됐다. 당시 총 8명의 선수가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이들 모두의 혐의가 벗겨진 것이다. 선천적인 유전적 결함이 있었을 뿐 불공정한 이득을 취한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 결과 IOC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부터 성별검사를 중단했다. 그런데 베이징올림픽 이를 8년 만에 부활시킨 것이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성별 검사는 60년대에 처음 생겼다. 소련 등 공산주의 국가들이 메달을 늘리기 위해 남자 선수를 여성으로 위장시켜 출전시킨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여성 선수들이 의사로 구성된 심사위원단 앞에 알몸으로 서는 방식으로 검사를 받았다. 68년 멕시코 올림픽에 와서야 염색체 검사로 바뀌었다.

성별감정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여장남자를 적발해낸 적이 없다. 선천적으로 유전적인 결함을 지닌 몇몇의 여성들을 남성이라 선언했을 뿐이다. 67년 폴란드의 육상선수 클로부코스카는 염색체 검사를 통과하지 못해 출전이 금지됐는데, 그녀는 바로 1년 전에 '알몸 테스트'를 통과했었다.

80년대에는 스페인 허들 선수 마리아 파티노가 테스트를 통과 못해 선수자격이 취소됐다. 그녀도 몰랐던 Y염색체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파티노의 출전 자격은 88년에 가서야 복권됐다.

영국 가디언의 보도에 따르면, 성별검사가 낳은 가장 비극적인 사례는 인도의 산티 순다라얀(27)이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 성별감정을 통과하지 못해 은메달을 박탈당했다. 평생을 여성으로 살았지만, 검사 결과 안드로겐 불감증후군(Androgen insensitivity syndrome)에 걸린 것이 확인됐다.

이 증후군은 남성의 염색체(XY)를 지니고 있지만 몸의 세포가 남성 호르몬에 반응하지 않아 평생 여성의 몸으로 사는 유전질환이다. 인도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순다라얀은 이후 엄청난 모욕과 망신에 시달린 데다 선수자격을 박탈당할 가능성까지 언급되면서 자살까지 기도했다.

성별검사를 비판하는 이들은 '사람의 성별은 확연히 나눌 수 있으며 고정된 것'이라는 검사의 전제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한다. 성전환수술 전문의 크리스틴 맥긴은 "무엇이 남성이고 무엇이 여성이냐를 정의한다는 것은 현재 시점에서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염색체가 XX이면 여성이고 XY이면 남성이라 간주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여성으로 보이는 사람이 유전적 조건에 따라 Y염색체를 지닐 수도 있고, 남성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Y염색체가 없을 수도 있다. 대략 1000명 중 1명 꼴로 염색체 이상을 지닌 간성(間性)이 출현하지만, 이들 중 일부는 외관상 그 사실이 드러나지 않기에 평생을 모르고 살기도 한다. 이들이 여성인지 남성인지를 딱 잘라 말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성별을 결정하는 데 있어 생물학적 성(sex) 뿐만 아니라 사회적 성(gender)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논의를 고려하기 시작하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가령 생물학적으로 남성이지만 스스로의 성 정체성을 여성으로 간주하는 선수가 있다면, 그의 성별을 정의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일 수 있다.

실제로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한 트랜스젠더의 경우, 수술 후 2년간의 유예기간만 거치면 올림픽 출전이 허용된다는 사실은 성 구분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다른 각도의 비판도 나왔다. 탁월한 성적을 보인 여성에게만 성별검사를 실시하는 것은 '남성이 여성보다 뛰어나다'는 고정관념을 반영하는 차별적 조치라는 것이다. 앨리슨 드레거는 미국의 권위있는 생명윤리 연구기관인 헤이스팅스 센터의 포럼에 기고한 칼럼에서 "다이빙이나 피겨 스케이팅에서 여성보다 더 우아한 동작을 보이는 남성이 종종 있는데, 왜 이들이 여성인지에 대해서는 검사하지 않느냐"고 비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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