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크로, 뭘 해도 잘 하는 남자의 표상

[형석-성철의 에로&마초]

주성철 / 입력 : 2008.11.17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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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 오브 라이즈'의 러셀 크로를 마주할 때의 쾌감은 묘하다. 그야말로 당대 할리우드 최고의 마초라는 사실에는 변함없으나 그 마초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기 때문. '글래디에이터'(2000)나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2003)처럼 거친 야수처럼 날뛰는 남성미를 뽐낼 때도 있지만, '인사이더'(1999)나 '바디 오브 라이즈'에서는 뱃살은 나올 데로 나왔고(심지어 두 영화 모두 머리는 하얗다) 뭔가 활동적이기보다 음흉한 표정으로 거친 독설들을 내뱉는 인상파로 더 기억되기 때문이다.

'바디 오브 라이즈'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대립각을 세우는 그는 가정에서는 더없이 친절하고 자상한(심지어 자식 앞에 비굴하기까지 한) 아버지지만, 책상에 앉아 마우스를 놀리며 테러 진압을 지도할 때는 영락없이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진짜 마초다. 땀 흘리며 웃통을 '까고' 있건 뿔테 안경을 쓰고 책상에 앉았건 뭘 해도 짐승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영화 촬영장 밖에서도 종종 짐승처럼 행동하고 다녔다. 뉴욕 최고급 호텔에서 국제전화가 걸리지 않는단 이유로 호텔 직원에게 전화기를 내던진 일도 있었고, 술집이나 식당에서 자기 일행이나 보디가드를 때린 적도 많으며, 나이트클럽에서 싸우다 CCTV에 포착되는 일은 그저 일상에 가깝다. TV 애니메이션 '사우스 파크'는 그런 그를 희화화한 에피소드를 만들었는데 심지어 그 제목은 '러셀 크로: 세계 어디를 가나 싸우는 남자'였다.

1964년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러셀 크로는 거의 어려서부터 호주에서 자랐기에 '호주 출신' 배우라는 수식어가 딱히 틀리진 않다. 어려서부터 호주에서 아역스타로 이름을 날렸으며 '이유없는 반항'(1992)에 출연한 것이 계기가 돼 '퀵 앤 데드'(1994)로 할리우드 진출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그의 출세작은 정의감에 불타는 곰 같은 형사 '버드 화이트'로 출연한 'LA컨피덴셜'(1995)이었다. 원작자 제임스 엘로이의 동명 소설에서 버드 화이트는 'LA경찰국에서 가장 몸집이 큰 남자'였으며 그런 터프함을 이용해 종종 범죄자의 입을 열게 만드는 형사였다.

그래도 역시 러셀 크로 이미지의 집대성은 바로 '글래디에이터'(2000. 사진)일 것이다. 가족을 사랑하는 충직한 영웅 막시무스는 모두가 성공하지 못할 거란 로마 시대극을 성공시킴은 물론, 한 비평가에 따르면 '비실대는 남자들만 득실대는' 할리우드에 새로운 남성상을 제시했다.


이후 거칠고 정의로운 글래디에이터 캐릭터는 러셀 크로를 묘사하는 핵심 단어가 됐다. 어떤 난관도 두려워하지 않는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의 잭 오브리 선장, 부둣가 막노동자이자 세계 챔피언이기도 한 '신데렐마 맨'(2005)의 전설의 복서 제임스 브래독, 새로운 서부극 '3:10 투 유마'(2007)의 악명 높은 서부 악당 벤 웨이드, 그리고 오직 현장에서만 살아있음을 느끼는 '아메리칸 갱스터'(2007)의 뉴욕경찰국 마약전담반 형사 리치 로버츠 등 그는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실베스터 스탤론이 노쇠한 지금 지난 10년간 할리우드의 남성미를 대표하는 배우가 됐다.

하지만 그를 마초성으로만 설명하자면 어딘가 섭섭하다. 오직 칠판 앞에서만 얼굴이 밝아지는 '뷰티풀 마인드'(2001)의 천재 수학자 존 내쉬, 런던을 무대로 한 '어느 멋진 순간'(2006)에서 증권가의 잘 나가는 매력남 맥스 스키너 역시 러셀 크로가 아니고서는 빛을 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힘깨나 쓰는 러셀 크로는 거친 남자의 호흡은 물론 섬세하고 풍부한 감성까지 두루 갖춘 부족함 없는 남자다. 여기저기 둘러봐도 뭐 하나 제대로 못 하는 남자들 투성이인데, 뭘 해도 잘 하는 남자란 이런 남자가 아닐까.

<주성철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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