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자격' '오빠밴드', 아저씨들의 로망을 불태우다

[이수연의 클릭!방송계]

이수연 / 입력 : 2009.07.29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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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와 오빠의 차이점은?’ 덥다고 바지 걷으면 아저씨, 윗 단추 풀면 오빠. 블루스 출 때 왼손 올리면 아저씨, 허리 감으면 오빠. 벨트라고 부르면 오빠, 혁대라고 부르면 아저씨.

호호호. 아저씨가 아니어도 왠지 공감가는 유머 아닌가. ‘오빠’란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리면 훤칠하고 날렵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한방 날려줄 것 같은 느낌이지만, ‘아저씨’란 단어를 조용히 읖조려보시라. 어떤가? 약간 배 나오고, 진한 농담도 스스럼 없이 던질 것 같은 주책스러움에, 약간은 느끼하기도 한... 뭐, 이런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가?


참 희한한 일이다. 세상의 모든 오빠가 다 멋진 것도 아니요, 세상의 모든 아저씨들이 다 주책스러운 것도 아닌데, 왜 이런 편견이 생기냐 이 말이다. 곰곰이 생각한 결과 ‘나이’ 때문이란 결론을 나름대로 내렸다. ‘나이란 숫자에 불과하다’는 멋진 명언은 있지만, 요 나이란 녀석은 속마음과는 다르게 한살한살 먹으면 먹을수록 겉모습이 흐트러지게 만드는 뭔가가 있나보다.

하지만, 이쯤에서 과감하게 얘기하고 싶다. 겉모습이야 어떻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아저씨도 아닌데, 왜 그리 흥분하냐구? 아줌마니까! 아저씨와 항상 동급으로 매겨지는 아줌마라 이 말이다. 성별은 달라도 아저씨나 아저씨, 그 속마음은 같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 마음속엔 아직도 뜨거운 젊음의 피가 끓어오르고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일까? 대한민국 아줌마로서 아저씨들의 마음에 충분히 공감하는 프로그램이 생겼다. 바로 KBS의 ‘남자의 자격’과 MBC ‘오빠 밴드’다. ‘남자의 자격’은 ‘남자로서 죽기 전에 꼭 해봐야할 일’이란 목표로 매회 뭔가를 체험하는 컨셉트이고, ‘오빠밴드’는 과거 밴드부였던 탁재훈, 신동엽에 자칭 팝칼럼니스트라는 김구라와 아저씨 작곡가 유영석을 주축으로 슈쥬의 성민과 밴드신동 정모가 매회 아마추어 공연에 도전하는 컨셉트다. 이 두 프로그램의 컨셉트는 다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아저씨들의 로망’을 분출시킨다는 점이다.


‘남자의 자격’에서 해병대니 육아니, 아르바이트니... 뭐 이런 일들은 죽자사자 고생만 하던데, 무슨 로망이냐? 혹시 따지실지도 모르겠다. 그래, 맞다. 어설퍼서, 안 해봐서, 죽자사자 고생하며 체험 삶의 현장같았던 거 다 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것들을 보면서 ‘아저씨 인생’이란 단어가 떠오르는 걸 어쩌란 말이냐!

아저씨들의 인생은 어떤가? 과거 ‘오빠’였다가 결혼 후 ‘남편’에, ‘아빠’에 결국 가장이라는 위치가 되면 마치 돈버는 기계처럼, 일개미처럼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지 않는가. 세상의 모든 아저씨들은 다 이렇다. 여러분들의 아빠도 그랬고, 여성 여러분들의 남편도 그러며, 아저씨인 남성 여러분들도 그럴 것이다. 아저씨들이라고 해보고 싶은 일들이 왜 없겠는가. 센스쟁이 오빠들처럼 최신 유행가도 잘 불러보고 싶고, 미니홈피도 꾸며보고 싶고, 뭐 그런 꿈들이 왜 없겠는가 이 말이다. ‘가장’으로 살다보면 해보고 싶은 일들도 할 수 없는 게 바로 현실 아닌가. 그런데, ‘남자의 자격’에선 죽기 전에 꼭 해봐야한다고 주장하며 매주 뭔가를 하고 있다. 그것이 멋있든 일이든, 아니든 간에 말이다.

‘오빠밴드’는 또 어떤가. 그 주축을 이루는 사람들은 ‘아저씨’면서 밴드에 ‘오빠’라는 이름를 붙였다. 오빠라고 불리고 싶은 마음 또한 아저씨들의 로망 아닌가? 어찌되었든 ‘오빠’ 그 자체로 살짝 민망했던 걸까? 굳이굳이 ‘오래 볼수록 빠져드는 밴드’라며 귀여운 변명(?)을 붙였으니까. 그런데, 시청자 입장에서 진짜 ‘오래 볼수록 빠져들고’ 말았다. 머리 스타일 때문에 아저씨라기보단 살짝 아줌마(?)같은 유마에에게 연주가 어설프다고 매번 지적받는 신동엽 탁재훈이지만, 그들 마음속의 열정이 보여서 빠져들고 말았다.

어설퍼도 ‘젊은 오빠’ 못지않은 뜨거운 피를 가진 ‘아저씨 밴드’의 공연을 보면 아줌마인 나도 함께 뜨거워진다. 비록 공연장이 아닌 텔레비전 앞이지만, 함께 노래를 따라부르고 소리지를 수 있어서 즐겁다. 아직은 시청률이 좀 부진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뭐, 방송을 만드는 제작진들이야 상관하지 않을 수가 없겠지만, 분명히 그들도 알 것이다. 그들에게 ‘시청률은 숫자에 불과하다’고! ‘아저씨’들의 불타오르는 정열이 충분히 담겨있으니 일단은 신나게 고고씽이라고!

삶에 찌든 세상의 모든 아저씨들이여! 지치고 힘든 것 이해한다. 최소한 며칠이라도 회사, 가정 다 제껴두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서 휴식을 취하고 싶은 것도 다 안다. 하지만, 불가능하니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대신 그 로망을 이 두 프로그램을 보며 함께 즐겨보시라!

<이수연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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