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아걸' 가인, 화장을 지우고 배우가 되다(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09.09.16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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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아이드걸스의 가인 ⓒ송희진 기자 songhj@


브라운아이드걸스의 가인. 색색의 조명 아래 도도하게 턱을 치켜든 채 '시건방춤'을 추는 그녀는 어디서나 시선을 잡아끄는 화려한 여성그룹의 보컬이다. V라인 턱선과 스모키 메이크업은 가인만의 트레이드 마크. 그녀는 늘 완벽한 화장과 의상으로 무대에 올라 관중을 휘어잡는다.

그런 가인이 화장을 지웠다. 화려한 옷도 벗었다. 렌즈까지 빼냈다. 그녀에게 주어진 건 2달만에 8kg을 찌워오라는 감독의 엄명과 허연 환자복, 그리고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전신불구의 몸이었다. 영화 '내 사랑 내 곁에'(감독 박진표·제작 영화사집)의 배우 손가인은 그렇게 탄생했다.


-원래 연기자를 꿈꾸던 것도 아니었는데, 출연 소식 자체가 뜻밖이었다. 어떻게 출연하게 된 건가.

▲박진표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쓰실 때부터 진희 역은 차갑고 쌍거풀 없고 얼굴 하얀 이미지를 두고 저를 생각하셨다더라. 보고싶어하셨다고 해서 감독님을 만났고, 후엔 오디션을 보고 역을 따냈다.

쌍거풀 없는 이미지가 50점은 먹고 들어갔으니, 행운이다. 나머지 연기력은 다섯만 보고 뽑아주셨다. 감독님이 나머지는 만들어 줄 테니 나만 믿으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더 용기를 냈다.


-무대에서 완벽한 모습만을 보여주는 가수로선 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번의 외도라기엔 감수해야할 게 컸다.

▲처음 오디션 볼 때 클렌징 로션이랑 머리핀, 렌즈 케이스를 주셨다. 그 앞에서 화장 지우고 머리 올리고 렌즈도 뺐다. 감독님이 실망하시나 했는데 오히려 마음에 들어하시더라. 가수 같지 않다고. 하지만 특히 제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손가인 하면 '스모키 메이크업'인데 그걸 버린다는 압박감이 컸다.

무대에서의 완벽했던 모습을 허무는 건데, 내 단점을 굳이 보여야 할 지 아리송했다. 나는 슈퍼 나갈 때도 그렇게는 안 가는 스타일이다. 굉장히 큰 용기였다는 걸 감독님도 아실 거다. 지금은 제가 포기한 만큼 얻는 게 있는 것 같다. 영화를 보면 가수 가인같지 않고 진희 같다. 제가 화장하고 예쁜 척 했으면 얼굴이고 영화고 다 망하는 거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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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아이드걸스의 가인 ⓒ송희진 기자 songhj@


-'가인 생얼'이 한동안 화제였다.

▲요새 제 '생얼' 기사 베스트 댓글이 '야 못생겼다'도 아니고 '기자님, 왜 가인 기사인데 사진은 딴사람인가요' 이런 거다. 가수들은 안티가 데뷔 때부터 따라온다. 그 정도는 대담하게 넘길 수 있다. 댓글 10개 중 하나가 '스모키 빼면 시체인 앤데 무슨 각오가 있었겠지' 이런 건데, 그걸로 위안을 삼는다. 재작년부터는 안티에 신경 안 썼다. 22살부터는 무플이 더 무섭더라.(웃음)

다른 걱정도 됐다. 가수하다 영화한다고 그게 이슈가 되면 주연배우들한테 실례가 될까봐. 명민 오빠는 '반응 좋더라'고 웃으셨다.

-몸무게도 많이 찌웠던데.

▲평생 제일 뚱뚱하게 찌운 거다. 2달 동안 8kg을 찌워야 했다. 가수로 복귀할 땐 3주만에 다시 빼야 했고. 당시 5kg이 쪘는데 마지막 3kg이 안 찌는 거다. 먹다 안 들어가면 구역질도 나고, 살이 갑자기 찌니 몸도 아팠다. 감독님이 같은 상으로 불러서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지켜보셨다. 기분 좋기도 했다. 촬영장 막내인데 너무 사랑받는다고 다들 질투하셨다.(웃음)

그런데 촬영해놓은 건 도저히 못 보겠더라. 만날 누워있고, 밥 먹고 바로 누우니 얼굴이 더 붓는다. 턱살도 보이고, 주근깨도 더 찍었다. 살찐 모습이 예전 학교 졸업사진이랑 비슷하다. 코를 세웠네, 눈 앞트임을 했네 말이 많았는데, 이번 살찌운 사진에 성형의혹이 불식됐다.(웃음)

-참 매력적인 얼굴이다.

▲시대를 잘 만났다. 데뷔 전엔 '얘는 왜 눈 수술 안해' 이런 소리 많이 들었다. 그 뒤에도 '특이하네요', '개성있어요' 다들 그랬다. 나름 그게 스트레스였다. 요즘엔 '매력있어요'로 바뀌었다. 다 화장으로 할 수 있다.(웃음)

-댄스가수가 전신마비 연기라니 그것도 아이러니하다.

▲가수도 몸짓이 반 표정이 반이다. 그 반이 사라진다니, 리딩 때만 해도 그 부분을 생각조차 못했다. 답이 안 나와서 감독님 말씀 따라 병원에 가서 전신마비 환자들을 직접 만나고 그랬다. 집에서 몸을 묶어놓고도 지내봤다. 별별 생각이 다 들더라. 감독님 지시 따라 20개의 장면으로 진희의 삶을 시나리오로 그렸는데 어느 순간 내가 진희가 된 것 같았다. 평소에도 몸을 안 움직이고, 의욕도 없고, 짜증만 났다. 예전엔 연기자들이 예민하네 하면 '괜히 그런 척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

-첫 영화인데 그것도 박진표 감독에 배우 김명민이 함께했다. 부담도 컸겠다.

▲말도 못한다. 제가 가수가 아니고, 또 처음 온 신인이었다면 부담이 아마 넘쳐흘렀을 거다. 어쨌든 3∼4년 활동을 해 왔고, 가수로서도 열심히 했다는 자부심이랄까? 오기가 있었으니까, 그걸로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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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아이드걸스의 가인 ⓒ송희진 기자 songhj@


-김명민과의 호흡은 어땠나?

▲제가 영화 들어가기 며칠 전날 명민 오빠가 대상을 받았다. 워낙 강마에 팬이었다. 내가 저 분이랑 호흡을 주고받으려면 어째야 되나 싶더라. 처음엔 무서운 분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뒤늦게 친해졌다. 처음엔 장난스러웠는데 역에 빠지니까 사람이 점점 센치해졌다. 난 곧 오빠가 죽을 것만 같았다.

김명민이란 배우를 만나서 저도 명민오빠화 된 것 같다. 강마에가 까칠하다고, 종우가 비쩍 말랐다고 사람들이 김명민을 싫어하지는 않으니까. 나도 영화에서는 진희가 되고 무대에서는 더 예쁜 모습이면 되지 그렇게 생각했다. 제가 만약 기본이라도 해 냈다면 그 80%는 모두 김명민 오빠가 하신 거다. 연기 할 때도 명민 오빠 대사의 느낌에 따라 내 대사까지 달라졌다. 처음부터 최고를 만났다. 더 최고는 없을 것 같다.

-연기는 계속할 계획인가?

▲또 하고싶다는 생각도 든다. 제의도 들어온다. 그런데 그렇게 호되게 하고 났더니 아직은 눈에 딱 들어오는 캐릭터가 없다. 사실 싸가지 없는 전신마비 환자는 꿈도 꿔보지 않은 캐릭터였다. 배우 하면 꿈꿨던 환상과는 너무 달랐으니까. 앞으로 남들이 안하는 캐릭터를 하고 싶다. 살인자도 괜찮고. 나는 조연이 더 좋다. 조연부터 천천히, 오래오래 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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