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세, 무대위 그를 미치게하는 것들(인터뷰)

[강태규 카페in가요]

강태규 / 입력 : 2009.11.06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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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문세 ⓒ사진=머니투데이 스타뉴스


무대 위의 그를 미치게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13년간 정상의 티켓파워를 자랑해온 뮤지션 이문세. 공연을 앞둔 그가 병적으로 '집요'해지고 공연과 관련된 티끌 하나 스쳐 지나는 법이 없을 정도로 '소심'해야만 하고, 또 한 번 뒤돌아가서 무대를 두들겨보는 '섬세'함은 공연에 관한 그의 장인정신을 엿보게 한다.

이문세 공연 철학을 듣고 있으면, 공연이 단순히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사람 간의 '일치'와 '호흡'을 엮어내는 숨 막히는 드라마다. 2시간의 무대를 위해 10개월의 고단한 장정은 용기내 찾아온 사람과의 뜨거운 '소통'의 몫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한다.


-강태규(이하 강)=살이 좀 빠지시고, 핼쑥해지신 것 같습니다?

▶이문세(이하 이)=아, 그런가요? 공연 준비하고 투어 공연 돌다보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어요.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하하.

-강=공연 준비를 6개월 동안 하신다고 들었어요? 그렇게 오래 동안 준비하는 사실을 알고 팬들이 많이 놀라합니다.


▶이=사실은 공연 기획사를 선정하는 과정까지 더하면 공연을 올리는데 10개월 정도 준비하는 셈이지요. 배짱 있고 공연 철학이 깃든 기획사를 파트너로 정하고 기획단계에서부터 연출, 구성, 무대 팀이 조화롭게 소통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또, 6개월 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거칩니다. 관객이 2시간여 동안 즐겁게 보는 공연이 탄생하는 과정은 결코 녹록하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칩니다. 각종 아이디어와 콘셉트 회의를 하고 마음에 안 들면 다시 허물고 반복하게 됩니다. 그러한 과정은 모두 관객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움직이지요.

-강=10년 넘게 티켓파워를 기록한 브랜드 공연을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이번 전국투어 공연을 '2009 이문세 - 붉은노을'이라는 타이틀을 내건 건 솔직히 의외였습니다.

▶이=사실 '독창회'라는 브랜드의 공연을 10년간 이어왔죠. 많은 관객들이 성원을 아끼지 않았고, 브랜드의 파워는 확실히 구축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매년 반복해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솔직히 힘은 실었지만 낡았다는 생각을 스스로 지울 수 없었습니다. '변화와 진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새로운 이문세 공연을 펼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들은 그렇게 힘들게 쌓아올린 브랜드 공연을 어떻게든 끌고 가야하는 것 아니냐고 했지요. 자신감보다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라는 스스로에 대한 각오가 더 컸지요. 그것은 팬들에 대한 일종의 배려였어요.

-강=이문세 공연 연보 중 가장 큰 스케일의 공연이 현재 매진을 이어가며 열리고 있습니다. 이번 투어공연의 규모도 남다르고요. 가장 역점을 두었다면 어떤 것들이 있나요?

▶이=그동안 중극장, 소극장 등 다양한 형태의 공연을 해왔어요. 그래서 2000석 내외의 공연장에 대한 많은 노하우가 많이 생겼지요. 5000명 이상의 대규모 공연을 기피했던 이유는 관객의 반은 나와 멀어진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관객만 많이 모았지 내실은 없을 것이란 생각을 지난 10년간 하고 있었지요. 이번에는 무대와 멀리 떨어진 관객도 결코 소외감을 느끼지 못하는 공연을 만들기 위해 무대 크기며 동선, 사운드에 모든 스태프들의 역량을 한곳으로 모았지요.

-강=서울공연이 공연 40일을 남기고 모두 매진돼 화제가 됐습니다. 물론, 지방투어도 매진 사례를 이었구요. 1만석의 표가 일찌감치 전량 판매되었을 때 느낌은 어땠습니까? 그리고 그런 결과에 대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솔직히 1차 판매된 5000석의 표가 동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순간 기뻤고 앞으로 10년은 더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5초 정도 들었습니다. 결국, 관객의 신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담이 밀려들었어요. 그동안 수많은 공연을 해오면서 관객에 대한 신뢰를 어떻게 보답할 것인가에 대한 부담으로 가슴을 졸였지만 이번 공연만큼은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부담을 많이 느꼈어요.

-강=평소, 대범하고 여유 있어 보이지만, 상당히 소심하기도 하고 섬세하신 것 같습니다?

▶이=아, 공연에 있어서는 굉장히 예민합니다. 평소 친구들은 느리고 급한 게 없다고 하는데 공연만큼은 용서의 대상이 되질 못해요. 그게 일종의 집착이죠. 공연에 있어서 자신이 맡은 분야의 일을 미루거나 제 때 해결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많은 스태프들이 피곤해 합니다. '야, 보기보다 정말 성격 까칠하네'하고 수근 댈지도 몰라요.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100명이 넘는 스태프들이 공연 하나를 만들기 위해 올인 합니다. 누구 하나에 의해서 그 공연이 잘못된다고 생각해봐요. 그건 관객에 대한 배려가 아니죠.

-강=이문세 공연은 국내 정상의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티켓 가격이 최고 가격에 비해 30% 정도 낮은 가격에 책정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사실 겁이 나서요. 티켓 가격이 너무 비싸면 돈 있는 사람만 오는 거잖아요. 여유 있는 사람은 3만원 정도가 별거 아니지만, 그 3만원 때문에 공연을 못 오시는 분들은 얼마 억울하고 원통하겠어요. 내 삶도 힘들어 죽겠는데 공연마저 그런 큰 벽이 있다고 보면 맥 빠지는 인생이 되지 않겠어요? 저는 제 음악을 좋아하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이 공연장에 왔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특정 계층을 위해 공연 전략을 펼칠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특히. 지방 투어는요, 논밭에서 일하다가 우리 오랜만에 이문세 공연 보러왔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 상황이라면 티켓 가격을 꾸준히 올릴 수 있을까요?

-강=그동안 모든 공연들이 매진이었습니다. 가득 찬 객석을 보고 있으면 어떤 생각들이 듭니까?

▶이=다, 내편이구나. 좀 엉뚱한 생각인데요, 훗날 내가 죽으면 다 애도해 주겠지. 이런 생각이 들어요. 참 고마운 관객들이죠.

-강=가족들이 공연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어떤가요?

▶이=사랑스러운 가족들이 가까운 자리에 앉아서 공연을 보고 있으면 저는 그게 참 부담스러워요. 그런데 아내는 항상 저의 첫 공연을 맨 뒤에서 보고 갑니다. 오지 말라고 그래도요. 첫 공연 끝나고 집에 가면 공연메모를 해두고 먼저 잠들어 있어요. 제가 항상 늦으니까요. 메모를 보면, 너무 수고했다. 정말 자랑스럽다고 적혀있어요. 그 다음 3페이지 정도는 지적사항이 빼꼼하게 적혀있어요. 의상 촌스러웠고요. 무용수의 동작이 어떠했고요... 거의 전문가 수준이에요. 혼자 보면서 반성해요. 지적한 모니터가 상당한 도움이 돼요. 공연의 완성도를 점차 높일 수 있는 큰 힘이 돼요. 고맙죠.

-강=모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각별하겠지만, 아버지와의 추억이 남달랐다고 하던데요. 작고하신 아버지가 공연을 보고 있다면 어떤 말씀을 하실 것 같습니까?

▶이=지금 공연을 하늘에서 지켜보실 거라 생각합니다. 나를 늘 대견해하셨지만, 표현을 하지 않으셨던 전형적인 이북 분이셨어요. 만약 공연장에 같이 계셨으면 '저 빈자리 너 다 채울 수 있겠냐. 너무 큰일을 저지른다'고 걱정하셨을 거예요. 제 기억에 데뷔 이후 처음 공연했을 때입니다. '난 아직 모르잖아요'가 히트하고, 첫 공연을 1986년에 했어요. 이태원에 있는 록월드라는 극장이었어요. 1000석 규모였어요. 당시 아버지가 공연 시간보다 좀 늦게 도착하셨나 봐요. 그러니 당연히 공연장 로비에 사람이 안보였겠죠. '아, 우리 아들 지금 얼마나 슬퍼할까' 아들 위로나 해야겠다며 삶은 계란을 사 오셔서 대기실로 들어왔답니다. 저는 무대에 나갔으니 당연히 안보였겠죠. 관객이 없는데도 공연을 시작하는구나 하셨답니다. '그래 첫 공연부터 사람이 그렇게 많이 오지는 않아' 위로의 말을 준비하고 공연장으로 들어오셨답니다. 문을 열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꽉 찬 관객들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셨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아버지는 그 정도로 저를 인정하지 않으셨어요. 아마, 위에서 공연을 내려 보고 계신다면, 저 많은 관객들은 다 돈 주고 데려왔다고 생각하실 거예요. 하하

-강=이문세라는 이름 뒤에는 티켓파워, 흥행보증수표 라는 꼬리표가 붙습니다. 공연을 통해서 도대체 얼마나 벌까 많이 궁금해 합니다?

▶이=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인데 저는 제가 직접 공연을 제작하지 않아요. 공연 제작은 제작자가 해야 합니다. 저는 아티스트입니다. 사람들은 이문세 공연이 대박 났다고 하면 이문세가 돈을 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돈은 제작자가 벌죠. 물론 저도 개런티를 받지만요. 제작자는 공연이 흥할 수도 있고 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티스트는 한번 망하면 공연을 할 수 없어요. 지난 서울 공연의 경우 조기매진은 됐지만, 공연 매출이 공연장에 거의 투입되었을 겁니다. 공연은 행사와 다릅니다. 돈을 벌겠다고 생각하면 '감행할 수 없는 전진'인 셈이지요.

-강=정말 많은 히트곡들이 존재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노래가 '난 아직 모르잖아요'라고 들었습니다. 그 곡의 탄생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이=작고한 이영훈씨를 만나 처음 의기투합해서 만든 음반이에요. 이영훈 작사. 작곡으로요. 작고한 유재하씨의 '그대와 영원히'라는 곡과 이정선씨의 곡도 수록됐지만요. 이영훈씨가 프로듀싱을 맡았고요. 저는 이영훈씨의 곡이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그 당시의 분위기에는 곡이 좀 어려웠어요. 클래식한 요소가 많았지요. 녹음이 다 끝난 상태에서 조금 쉬운 곡 한곡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본인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동의했어요. 그럼 쉬운 곡을 하나 더 만들어 보자고 해서 연습실에서 30분 만에 멜로디가 쫙 나온 거예요. 마치 누군가가 악보를 준 것 같았다는 느낌 있잖아요. 그리고 가사가 그 자리에서 막 나왔어요. 그리고 노래도 다음날 녹음실에서 한 번에 부른 겁니다. 그 짧은 시간에 만들어진 노래가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게 됐어요. 그러니까 그 노래는 마치 저에게 은혜를 준, 축복 같은 곡이었죠.

-그에게 만약 그런 노래를 만나지 못했다면 오늘의 이문세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겠냐고 물었다. 이문세는 '나는 행복한 사람' '파랑새'로 20년을 끌고 오기에는 힘들지 않을까요? 나도 예전에 음악을 해봤어 할 정도? DJ나 MC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요? 재차 어렵게 답을 해오는 그의 눈빛 속에서 숨겨진 말이 들려왔다. 무대에서 빛을 발하는 오늘의 이문세는 운명적인데, 왜 그런 질문하느냐고 매섭게 꾸짖는 것 같았다.

(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문화전문계간지 '쿨투라' 편집위원. www.writerkang.com)

*문화전문계간지 '쿨투라' 겨울호에 게재될 글을 미리' 머니투데이 스타뉴스'를 통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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