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학번만 공감하는' 장동건 3수의 추억

[김태은 기자의 룩&워치]

김태은 이슈팀장 / 입력 : 2009.11.11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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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제일 잘생겼다고 해도 무방하다. 여기에 연기력, 부와 명성, 그리고 90년대 섹시아이콘인 고소영이라는 애인까지…. 이런 장동건에게도 부족한 구석이 있을까. 있다면, ‘학벌 공화국’인 우리나라 국민인 만큼 학력 콤플렉스 정도일 수 있겠다.

10일 어느 케이블채널이 홍보자료를 뿌렸다. ‘아이큐143에 연·고대를 갈 수 있는 실력이었지만 기흉(폐에 구멍이 생겨 공기가 새고 이로 인해 늑막강 내에 공기나 가스가 고이게 되는 질환) 때문에 재수를 하게 되면서 3수까지 하게됐다’는 내용이다.


장동건은 결국 대학에는 못갔지만, 탁월한 외모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과에 진학했다가 중퇴했다. 72년생인 장동건 또래의 연예인들에게서 종종 이런 식의 진학 실패기를 듣게 된다.

70년생인 탤런트 최철호는 학력위조 논란에 시달리자 “외고 다닐 정도면 어느 정도 공부를 했다는 것은 다 알 것이다. 나도 서울대나 연고대를 갈 수 있었던 실력이었다”며 집안형편상 진학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71년생인 개그맨 정준하에게도 “아이큐140에 한양대, 한국외국어대 등을 지원했지만 해를 거듭해 미끄러지고 4수생으로 접어든” 사연이 있다. “공부를 잘했는데 대학에 못갔다”는 해명들이다. 그와 동갑인 탤런트 송일국도 미대에 가려고 4수를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들의 청소년 시절과 요즘은 사정이 사뭇 다르다. 그 무렵의 대학 문턱은 상당히 높았다. 학력고사 전·후기에는 1년에 2차례 ‘일제’ 시험을 치러야 했다. 91년도 대입 평균경쟁률은 4.79대1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전기대 경쟁률만 5대1에 가까웠고 해마다 늘어나는 고득점 재수생과 ‘장수생’들에게도 치여야 했다.


선지원 후시험제로 내 점수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시험을 보다보니 ‘공부를 좀 해도’ 응시기회 딱 한 번에 불운이 붙으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편입제도 같은 것도 없었으니 목표 대학에 꼭 가겠다고 고집하다가는 ‘고졸’로 남기 십상이었다.

‘전교1등이 조용필이 누구냐고 했다더라’, ‘88년 올림픽이 서울에서 열리는줄도 몰랐다더라’는 ‘바보’들이 ‘공부의 신’으로 추앙받았다. 암기를 강요받은 시절이다. 91년도 대입 실패로 재수, ‘저주받은’ 92학번이 겪은 '입시지옥'이다.

12일은 2010학년도 대학 수학능력시험일이다. 전체 대입경쟁률이 확 떨어졌다고 해도 경쟁은 경쟁이다. 수험생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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