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에서 쓴 편지]칸영화제와 올림픽의 공통점은?

칸(프랑스)=전형화 기자 / 입력 : 2010.05.20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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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영화 홍보를 위해 얼굴에 피칠갑을 하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외국인.


칸은 여전히 춥습니다. 반팔을 입고 다녔던 예년과는 딴판입니다. 뤼미에르극장에서 열리는 기자시사회에 가보면 이곳저곳에서 콜록콜록 거립니다. 이상기온은 우리나라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걸 이곳에서도 느끼게 됩니다.

올해 칸은 썰렁합니다. 영화제가 마지막으로 달려가고 있는데도 별 이슈가 없습니다. 이슈가 없다는 게 이슈일 정도죠. 이맘때쯤이면 할리우드 스타가 레드카펫을 밟아 분위기를 반전시키곤 하는데 그마저도 없습니다.


우디 앨런 영화에 출연한 잭 니콜슨은 일찌감치 안 오겠다고 했구요, '페어게임' 숀 펜은 상원의원 청문회에 나간다고 안오겠다고 합니다. 매년 이곳에서 자선파티를 열던 샤론 스톤은 화산재가 무서워서 불참을 통보했다고 하네요.

올해는 화제작이나 문제작도 눈에 띄지 않는 터라 할리우드 스타들의 불참은 분위기를 더욱 썰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뭐, 재미있다면 재미있는 일도 있었습니다.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장 뤽 고다르, 누벨바그의 살아있는 전설이죠.

이 분이 이번 영화제에 '필름 '소셜리즘'이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돼 오시기로 했었죠. 음, 하지만 직전에 취소했답니다. 기자회견을 기다리던 기자들은 "안오십니다"란 말에 조용히 자리를 떠나야 했답니다. 인터뷰를 하기로 했던 언론사들에게는 팩스로 취소 통보를 하셨답니다. 이 어르신은 베를린에서도 그러신 적이 있더랍니다.


올해 여든 살이신 거장이시라, 다들 입맛만 다셨답니다.

칸영화제는 철저한 계급제 영화제입니다. 언론과 바이어들을 위한 축제이기도 하죠. 관객을 위한 축제인 부산영화제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죠. 기자들도 소속사의 위치와 몇 번 왔느냐에 따라 등급이 결정돼 다른 색깔의 프레스 카드를 받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파란색, 분홍색, 하얀색으로 갈리죠. 하얀색은 30년 가까이 와야 한다는 전설의 카드죠. 어디든 프리 패스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해외 기자들 사이에 칸영화제의 냉정함에 대한 한 가지 이야기가 떠돌았습니다.

데릭 엘리, 버라이어티의 수석 평론가죠. 한국 영화를 해외에 적극적로 알린 양반이기도 하구요. 이 분이 얼마 전에 버라이어티를 그만뒀는데 그만 올해 칸에서 하얀색 대신 분홍색 카드를 줬답니다. 원칙일 수도 있지만 지독한 짓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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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회 칸영화제에 초청된 영화 출연진과 감독이 고급차량을 타고 극장으로 향하고 있다. 칸영화제에는 경쟁과 비경쟁부문에 초청된 작품들에 한해 공식 레드카펫 의전을 제공한다.


아, 국내 영화제들에 전하고픈 이야기도 있습니다. 매번 영사사고로 골머리를 썩곤 하는데 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예 자막이 안 나오는 일도 있고, 5분 정도 화면이 안 나오는 일도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어쩔 수 없는 사고일 땐 '칸도 그러는데 뭘'이란 자위도 가능하다는 거죠.

칸영화제와 월드컵, 그리고 올림픽에 공통점이 있을까요? 일찍이 깐느박(박찬욱 감독)은 영화제는 올림픽이 아닙니다라고 갈파한 적이 있죠. 지난해 이곳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았을 때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축전을 받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것도 아닌데 기분이 묘하다고 했더랬죠. 예술에 등수를 매길 수 없다는 말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교과서적인 말이기도 하구요. 예술에 점수를 매길 수는 없지만 이곳에선 매일 버젓이 경쟁작들의 평점이 나온답니다. 각국의 기자들이 참여해서 평가하지요.

각 나라를 대표하는 감독들이 출전하고, 점수를 매기고, 취재를 하며, 환호합니다. 결과에 따라 돈이 오가고 미디어가 춤을 춥니다. 예술과 자본이 결탁한 영화축제, 그게 칸입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다를 바가 없죠. 황금종려상은 사실상 금메달을 의미하죠.

오죽하면 '시'로 이번 영화제를 찾은 이창동 감독이 남의 영화를 평가하는 게 힘들고 올해는 경쟁을 해야 하는 터라 마냥 즐겁지 만은 않다고 했을까요?

올해 개막작 '로빈후드' 기자회견에선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러셀 크로는 호주사람이죠. 이번에 월드컵에 호주팀이 본선에 올랐는데 영국이나 스페인이 상대가 안될 거라고 하더군요. 그랬더니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 영국기자가 벌떡 일어나 "비바, 잉글랜드"라고 외치더군요. 어느 나라나 똑같단 소리입니다.

'시'와 또 하나의 한국 경쟁작 '하녀'가 과연 영화 올림픽인 칸영화제에서 본상을 탈 수 있을까요? 굳이 상을 받지 않더라도 '시'가 인간의 죄의식과 도덕성에 문제를 제기한 걸작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도 이곳에서 상을 타서 국내 흥행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은 있습니다.

김연아가 금메달을 타서 더욱 조명 받고, 박태환이 저조한 성적을 거둬 질책받는 일이, 영화에선 이뤄지기 않길 바랍니다.

이창동 감독은 이런 말을 하더군요. 한국을 포함해 세계에서 점점 어떤 영화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예술은 어릴 적부터 교육과 환경이 중요합니다. 클래식 음악이나 미술을 자연스럽게 접해야 안목이 생기는 것처럼 말이죠.

어떤 메달을 따든 우리 영화들이 더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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