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노바' 류승룡 "나에 대한 고정관념 깨고팠다"(인터뷰)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의 허당 진지 카사노바 류승룡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2.05.15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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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균 기자 tjdrbs23@


배우 류승룡(42). 이 남자의 변신은 대체 어디까지일까.

매력남 게이, 인간미 넘치는 국정원 직원, 왕년의 보스, 냉정하지만 든든한 남편, 실종된 아이들을 찾는 교수로는 부족했던 거다. 그는 지난해 '최종병기 활'에서는 청나라 장수 쥬신타로 서늘한 카리스마를 뽐냈고, '고지전'에서는 북한군 장교로 몇 마디 대사 없이도 묵직한 무게감을 선사했다.


17일 개봉을 앞둔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는 희대의 카사노바, 그 이름도 오묘한 장성기로 분했다. 전에 없던 캐릭터요, 전에 없던 류승룡의 모습이다. 폭소 면에서도 가히 으뜸이다.

한껏 멋을 부린 류승룡은 기름진 얼굴에 다채로운 잡기와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국적도 가리지 않고 여인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한다. '잡기'는 어떻게 배웠냐 했더니 당장에 "저는 잡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예술이라고 생각하지"라는 대답이 나왔다.

천연덕스럽게 지그시 앞을 응시하는 류승룡의 모습에 카사노바 장성기의 여운이 서렸다. 몇몇이 자지러지자 그제야 피식 웃음을 짓는 그. 장난기가 넘실댄다. 실은 그것이 카리스마 뒤에 감춰놨던 류승룡의 본모습이란다.


-영화를 보고 났더니 인터뷰에서 만나는 기분이 또한 오묘하다.

▶'활'에서 쥬신타 역 했을 땐 기자들이 다들 무서워했다.(웃음) 이번엔 다 웃는다.

-전에 없던 캐릭터다. 도전 욕구가 훅 생겼을 것 같다.

▶저에 대한 전형화된, 고정관념이 있지 않나. 그걸 깨고 제 안에 있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예측 불허의 진지함이 있지 않나. 웃지 않고 웃기는 거, 제가 선호하는 바다. 진지하게 웃기기. 처음부터 많이 고민 안하고 시작했다.

-'활'이나 '고지전'을 보고 났더니 류승룡이 그런 걸 언제 했나 싶다.

▶연극 때는 그런 걸 많이 했다. 그러기에 충분한 시나리오였다. 현장에서도 저를 앵글 안에 가두지 않고 저를 놀게 헤 주셨고, (이)선균과도 이야기를 했지만 배우와의 삼박자도 맞아떨어졌다. (임)수정이는 또 어떻고. 시사회 끝난 뒤에는 (임)수정이를 꽉 안아줬다. 기특하고, 또 수고했다고. 잘했다고. 막 자랑스러웠다. 저희가 수정씨한테 그랬다. 좌승룡 우선균 우리가 완전히 밀어줄게. 어찌됐건 그 긴 대사를, 긴 여정을 가녀린 몸으로 잘 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깨알같은 디테일이 돋보인다. 젖소들이 흥분하는 장면도 그렇고, 물에 빠지는 장면도 그렇고.

▶원래는 젖소가 아니라 양이었다. 그런데 느낌이 안 나와서 젖소로 바뀌었다. 내 손놀림에 동물까지도! 그 부분은 내 아이디어였다. 걸어가는데 암소들만 나를 무리지어 쫓아오고 숫소들이 '워우~'하는 장면도 있었는데 그건 제작 여건이 안됐다. 만화 같고 웃기지 않나. '난 수영 못해' 이 부분도 제 아이디어였다.

-처음 시나리오가 나왔을 때랑은 장성기 캐릭터가 많이 달라졌나보다.

▶그 전에는 허당 카사노바라는 설정이 없었다. 첫 촬영이 대관람차에서 선균이와 싸우는 장면었는데, 대관람차가 좁지 않나, 감독도 없이 막 찍은 거다. 내 맘대로 했다. 거기서 앞뒤를 짜 맞춰서 캐릭터가 확장됐다. '고지전'도 그렇고 '활'도 그렇고 캐릭터 구축을 위한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다른 걸 할 수 없이 가둬놓는 부분이 있지 않나. 이 캐릭터는 놀 수 있는 여백이 굉장히 많았다. 그래서 신나게 촬영했다.

-이선균과의 호흡도 척척 맞는다.

▶선균이랑도 어마어마하다. 이렇게 할 게 하고 저렇게 할 게 하고 하는 박제화된 연기 호흡들과는 다르다. 격투기에도 아마 복싱이 있다면 우리는 UFC라고 할까. 놀이터 장면에서 자동차에 올라타고 하는 게 다 현장에서 나온 거였다. 콘티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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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균 기자 tjdrbs23@


-영화를 보면 그간 류승룡이 어째 참았나 싶다.

▶이런 작품을 기다린 거다. 개구리도 멀리 뛰려면 더 웅크리지 않나. 이건 제 안에 있는 것 중 하나니까. 사실 '7급 공무원', '퀴즈왕'도 있었지만 배우보다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였던 것 같다. 오래간만에 신나게 놀았다.

-비교하자면 '고지전'이나 '활'보다는 본래 류승룡과 더 가까운 캐릭터라는 느낌이다.

▶800만 넘게 본 '활' 같은 작품 속에서 강한 모습이 각인됐으니까. 매체나 작품에서 만들어진 집단 오해가 있다. 무서울 것이다, 마초적일 것이다 식의. 그걸 깨고 싶었다. 제 친구들이나 함께 연기한 동료들은 아마 막 웃을 거다. '원래 하던 짓 똑같이 하네' 하면서. 보물상자에 고이 숨겨놨던 저를 기다렸다가 적절하게 꺼냈던 것 같다.

-카사노바의 대표 캐릭터랄까.

▶그건 잘못된 편견이다. 우리나라 음지에 카사노바가 많지 않나. 이대근의 힘 같은 걸 떠올리면서. 그런데 외국 바람둥이를 보면 조지 클루니처럼 지적이고 멋지고 쿨하고 자기 인생 잘 사는 캐릭터들이 있지 않나. 그런 걸 지향하려고 했다. 여린 구석도 있고, 섬세하고 연민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 않나. 수영도 못하고.(웃음) 저의 약간 부족한 외피를 분장팀, 의상팀, 소품팀이 아이디어로 메워줬다. 다들 엄청 고생했다.

-그런데 너무 자연스럽다. 집에서는 카사노바 역할이라니 반응이 어땠나?

▶연기는 연기일 뿐 오해하지 말자! 연기는 내가 사랑하는 가정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내는 카사노바 역할이라 했더니 '진짜? 오빠가?' 이러면서 되게 좋아했다. 시나리오를 아내에게 꼭 보여준다. 작품 하면서 '이렇게 해서 우리 와이프 깜짝 놀래켜야지' 하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도 한다. 집사람은 보통 나한테 아이를 맡기고 혼자 들어가서 영화를 보는데 VIP시사보다 그 때가 제일 긴장된다. 반응이 냉정하다.(웃음) 일부러 기대감을 안 준다. 그게 영화를 재미있게 보는 법이다.

-이제 류승룡이라는 배우는 기대감을 낮추고 영화를 기다리긴 어려운 배우가 됐다.

▶인지도나 개런티가 늘수록 그건 당연히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다. 말이든, 관계든 당연히 따라오는 덕목이라고 생각이 든다. 기대감을 주고 또 만족감을 주고 신뢰를 주고 그게 또 기대하게 만들고, 이게 톱니처럼 돌아갔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더 신중하고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끊임없는 변화도 그런 노력 중 하나일까.

▶변신에 대한 강박은 없다. 스펙트럼을 넓혀야 한다는 강박은 없다. 물론 저의 강한 모습을 선호하고 사랑하는 분도 계시니까. 다만 감사한 것은 좋은 시나리오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 것이다.

-다음에도 또 드라마틱한 변신을 앞뒀다. '조선의 왕' 이후 '12월 23일'에선 지적장애를 앓는 아버지로 등장한다.

▶25,26년 동안 연기를 하면서 제일 정신적으로 힘든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그거 생각하니까 갑자기 숙연해졌다. 아니야 아니야, 힘들지 않다.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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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균 기자 tjdrbs23@


-다작하는 배우로도 잘 알려졌다.

▶'활' 이후 '내 아내의 모든 것'을 할 때까지 5개월이나 놀았다. 올해는 다시 좀 연달아서 촬영을 하고 있는데 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거랑 하고 싶은 것과 다르다. 저의 20대나 30대 모습을 스크린에 담지 못한 게 있지 않나. 그래서 나는 아직 고프다. 더군다나 좋은 시나리오들이 들어오는데! 재충전이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휴대전화 배터리가 남았을 때 충전하지 다 방전돼서 꺼진 뒤에 충전하지 않는다. 작품을 하면서 충전하는 거지 완전히 손을 놓고 3개월을 쉰다 이런 건 안될 것 같다. 끊이지 않고 하는 게 효과적인 충전법이라고 생각한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말장난이기는 한데,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내 안의 모든 것을 보여준 것 같다. 저 말고 임수정, 이선균도 다들 처음 보는 모습이고 너무 잘했다. 이선균도 그 젠틀하고 다정다감하던 사람이 완전 찌질 비겁하다가 끝내 공감을 얻어낸다. 임수정도 이혼하고 싶을 만큼 지겹다가 결국 사랑스러워야 하지 않나. 영화를 보고 나서는 '다들 참 잘 맞는 옷이구나', '저거 저 사람 아니면 누가 했을까' 하는 생각이 공히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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