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교 "17년만에 '재발견' 서운? 기분좋다"

인터뷰①

최보란 기자 / 입력 : 2013.04.0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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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송혜교 ⓒ구혜정 기자 photonine@


배우 송혜교(31)를 만나니 괜히 안도감이 들었다.

지난 3일 막을 내린 SBS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마지막 방송 직전 송혜교의 편안한 얼굴을 마주하니, 드라마 속에서 차디찬 외로움에 갇혔던 오영에 대한 안타까움이 조금이나마 녹는 느낌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던 오영과 달리 맑은 눈망울에 생기가 가득한 송혜교가 안도감마저 자아낸 심경을 드라마에 '그 겨울' 시청자라면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송혜교 조차도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내심 오영이 행복해지길 바라왔다며 캐릭터에 푹 빠져있었음을 드러냈다 .

"17년 만에 '재발견'이란 평가에 서운? 감사할 따름."

"처음부터 의도했던 엔딩이다. 노희경 작가님이 15회까지는 치열하게 가고 마지막 15회는 해피엔딩이라는 얘기를 해 주셨다. '멜로'하면 슬퍼야 기억에 오래남고 더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너무 힘드니까 오영과 오수도 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캐릭터에서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하는 송혜교지만, 오영을 떠나보내는 것은 유독 힘들 것 같다는 그녀. 송혜교는 이번 작품을 통해 연기 인생 17년 만에 새삼 '재발견'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그 섬세한 표현력과 연기력에 박수를 받았다.

"재발견이라는 평가가 서운하지는 않다. 연기를 잘하는 말을 이번에 정말 한꺼번에 많이 들어서. 갑자기 칭찬을 받아서 정신이 없다. 계속 감사한 마음만 든다. 마냥 칭찬받을 날이 오니까 기분이 좋더라."

드라마에 대한 반응이 워낙 좋아서 일부러 기사나 시청자들의 글을 찾아서 보기도 했다는 송혜교. 그녀는 이 같은 호평에 대해 작가와 PD, 동료 배우들에게 그 공을 돌렸다.

"철저하게 해석을 하고 들어간 작품이었다. 작가님과 배우들이 모여 철저히 대본 리딩을 했다. 장면마다 해석이 각자 다를 수 있으니까. 뭔가 안 맞으면 서로 많이 맞췄던 것 같다. '그 겨울' 전에도 제가 했던 역할들은 역동적인 캐릭터 보다 감정 위주의 캐릭터가 많았다. 그런데 클로즈업이 들어가니까 미세한 찡그림이나 눈빛이 더 잘 보이지 않았을까. 감독님이 연출을 그렇게 해주셔서 시청자들에게 더 잘 닿았던 것 같다. 시각장애라는 설정 때문에 표현에 한계가 있다. 얼굴로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유난히 클로즈업을 많이 해주셨고, 그런 점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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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송혜교 ⓒ구혜정 기자 photonine@


"시각장애 연기, 편견 깨고 싶었다."

송혜교가 이처럼 극찬을 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연기에 대한 목마름이 있던 시점에 운명처럼 오영을 만난 덕분이기도 하다. 왕가위 감독의 러브콜에 고민 끝에 향한 중국에서 예상보다 시간이 길어졌고, 한국에서의 다음 작품에 대한 열정도 덩달아 커진 참이었다.

"왕가위 감독님 작품을 하면서 맘고생을 많이 했다. 그 때 많이 성숙했다고 해야하나. 감독님이 '이번에 무술영화에서 엽문을 그릴 건데 부인이 아름답고 의지가 강하다. 비중은 작다. 하지만 그런 아내가 옆에 있었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싶다'고 출연을 제안하셨다. 그런데 그게 4년이 걸렸다. 시스템이 너무 다르더라. 비중은 문제가 안 됐다. 감독님이 이미 얘기를 했었고, 저는 감독님 특성상 2~3컷만 나오면 다행이라고 여겼는데 6~7분이나 나왔다고 오히려 만족했다. 근데 그때 한 장면 찍기 위해 한 달 씩 기다리는 시스템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길었고, 많은 고민을 했다. 그때 '연기를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때 만난 게 '그 겨울'이었다.

무엇보다 송혜교의 연기는 눈이 안 보이는 시각장애 여주인공을 통해 편견을 깼다는 점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작품 시작 전부터 시각장애를 지닌 여성들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듣고 오랫동안 준비한 덕분이었다.

"같은 시각장애라도 병의 진행상황에 따라 너무 다르다. 극중 오영의 설정과 가까운 분들을 소개받아서 얘기도 많이 듣고 보고 했다. '드라마이기 때문에 보여주는 부분을 버릴 수는 없다. 굽 높은 것도 신느냐'하니 '상관없다. 특히 옆에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면 더욱 그렇다', '화장 같은 것도 하느냐'했는데 '화장하는 대회도 있다'고 하더라. 또 '너무 심하게 더듬거리고 하는 것은 불편하다'고 요청하기도 했다. 낯선 곳이면 그럴 수 있지만 익숙한 공간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니 과장된 모습은 삼갔으면 좋겠다고. 제가 시각장애 연기를 통해 편견 같은 게 많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얘기 했었는데 '예전이랑 반응이 달라졌다, 손길이 따뜻해졌다', '오영 같아서 더 잘 해 주고 싶다'는 분들도 계시더라. 조금은 변화를 일으켰다는 생각이 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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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송혜교 ⓒ구혜정 기자 photonine@


"너 이제 시작이구나!"

그러나 오영의 눈꽃 같은 차가움은 단지 눈이 안 보이는 아픔 이상의 것이 있었다. 그런 슬픔은 내면에서 끌어내기 위해서는 송혜교 본연의 감정과 경험이 없이는 나오기 힘든 것.

"물론 내 안에도 힘든 감정들이 있다. 왕가위 감독님과 작품하면서 괴로웠다던가, 여배우로서 오해를 많이 사기도 한다. 다 해명할 수도 없고, 참는 것도 많고. 아무래도 데뷔한지 오래됐고 그런 게 쌓여있던 것들이 감정 연기하면서 나오는 것도 분명 있었을 것. 배우로서 또 여자로서 참는 게 당연히 있다. 그런데 그걸 표현을 잘 안한다. 갖고 있는 성격이다. 쌓이면 어느 날 한 번에 터질 때도 있다. 다양한 경험을 해 봐야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제 경우는 경험과 연기가 하나가 된 게 얼마 안 됐다."

송혜교의 이번 연기가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린 것은 그처럼 그녀 안에 쌓여있던 감정들을 오영을 통해 투영시키는 법을 알게 된 덕분. 그러나 그녀는 경험과 연기가 서로 하나가 되는 법을 너무 뒤늦게 알게 돼서 부끄럽다고 고백했다.

"'그들이 사는 세상' 때부터 그런 방법을 알게 된 것 같고. 영화 '오늘', 그리고 '그 겨울'을 하면서 스스로의 경험과 캐릭터의 감정이 많이 하나가 된 것 같다. 지금도 너무 힘들다. 멘탈에 문제가 약간 생긴 것 같을 정도로 혼란스럽다. 작가님한테 '연기한 지 16~17년 됐는데 이제야 이걸 알아서 부끄럽다'고 얘기한 적 있다. 작가님이 '너 이제 시작이구나. 그럼 조금 창피할 수도 있겠다'고 웃으시더라."

이제야 연기에 자신의 감정을 실을 수 있게 됐다고 말하는 송혜교의 그 솔직함이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노희경 작가의 말처럼 송혜교는 이제 시작이다. 그녀의 연기가 진짜 2막을 꽃 피울 때가 왔다는 직감이 들었다.

-인터뷰②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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