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권이형 구희형 진태도..' 들국화 2집, 쓰다

[김관명칼럼]

김관명 기자 / 입력 : 2013.10.22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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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주찬권 발인식 /이동훈 기자
쓰다.

그러니까 1985년 늦가을 쯤이었다. 기자는 당시 대학교 1학년생이었는데 교내 나무나 건물벽에는 고교 동문 송년회를 알리는 포스터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송년회 참가를 독려하는 선동적인 격문이 앞다퉈 실린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해당 고교 졸업생이 아니더라도 가장 눈길을 끌고 부러웠던 것은 모 고교 포스터였다. '동문 선배 들국화 찬조 출연!'


당시 들국화 인기는 대-단-했-다. 청소년 시절, 지금과는 다르게 영미 팝송의 세례를 듬뿍 받고 자란 당시 대학생들은 이 한국 그룹에 열광했다. 전인권 최성원 허성욱 조덕환 그리고 주찬권. 이들은 80년대 초 꽤 인기를 끌던 캠퍼스 밴드 출신 그룹들과는 확실히 뭔가 달랐다. 연주와 목소리에서 풍기는 냄새부터가 달랐다. 그리고 '행진' '그것만이 내세상' '세계로 가는 기차' '매일 그대와'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등이 실린 이들의 1집은 그야말로 당시 피끓는 청춘들의 '필청 음반'이었다.

그리고 86년 이들의 2집이 나왔다. 멤버 변화도 있었다. 조덕환이 나가고 기타에 최구희, 기타와 신디사이저에 손진태가 가세했다. 어쨌든 2집은 더더욱 버릴 트랙이 없었다. '제발' '하나는 외로워' '너는' '너랑 나랑' '1960년 겨울' '또다시 크리스마스' '내가 찾는 아이' '님을 찾으면' '여기가'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 '쉽게' '조용한 마음'. 때는 마침 겨울이었고 청춘들은 전년도에 이어 또 한번 들국화의 이 카세트테이프를 듣고 또 들었다.

이중 멤버 이름을 서로 친숙하게 불러 마치 콘서트장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 곡이 바로 '내가 찾는 아이'였다.


'내가 찾는 아이 흔히 볼 수 없지/ 넓은 세상 볼 줄 알고 작은 풀잎 사랑하는/ 워~ 흔히 없지 예~볼 수 없지/ 내가 찾는 아이 흔히 볼 수 없지/ 내일 일은 잘 모르고 오늘만을 사랑하는/ 워 흔히 없지 예~볼 수 없지..' 이렇게 '내가 찾는 아이'가 '없음'을 누차 강조하던 이 노래는 극적으로 이렇게 털어놓는다. '..내가 찾는 아이 매일 볼 수 있지/ 인권이형 성원이형 찬권이형 구희형 진태도/ 워~볼 수 있지 예~볼 수 있지/ 워~모두 다지 예~모두 다지'

그러다 성탄 시즌이 되면 이 노래를 또 들었다. 주찬권 작사작곡의 '또다시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 또 돌아왔네 설레는 마음과 함께/ 언제나 크리스마스 돌아오면 지난 추억을 생각해/../ 거리에는 캐럴송이 울리고 괜스레 바빠지는 발걸음/ 이름 모를 골목에선 슬픔도 많지만/ 어디에나 소리없이 사랑은 내리네/ 크리스마스 또 돌아왔네 설레는 마음과 함께/ 언제나 크리스마스 돌아오면 지난 추억을 생각해'

쓰다.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 또 돌아'올텐데 '내가 찾는 아이 매일 볼 수 있지'라던 '찬권이형'이 더이상 세상에 없다. '인권이형' '성원이형'이 밤새 빈소를 지키고 22일 오전 발인식까지 참석해야 했던 망자가 다름아닌 '찬권이형'이다. 올해 말 들국화 원년 멤버들과 발표할 새 앨범 준비를 앞두고 '괜스레 바빠지는 발걸음'이 이제 멈췄다. 과연 이 세상은, 이 염치없고 분내 나는 세상은 '어디에나 소리없이 사랑은 내'릴까.

쓰다. 영정을 둘러싼 국화 향이 쓰다. 이날 아침 다시 듣는 들국화 2집이 쓰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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