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르윈', 코엔의 순결한 포크사운드트랙

[김관명칼럼]

김관명 기자 / 입력 : 2014.01.20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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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르윈' 스틸


영화 프리뷰가 제 몫을 못하는 이 시대, 결론부터 말하면 이렇다. 코엔 형제의 '인사이드 르윈', 음악 팬들이라면 꼭 보시라. 두번 보시라. 한 번은 줄거리 파악용으로, 또 한 번은 극장 사운드트랙 감상용으로.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콕 짚어 스크린에 내뿌리는 코엔 형제, 그 능력은 타고 났다. 그것도 처음 도전한 음악영화에서.

'인사이드 르윈'(Inside Llewyn Davis)은 1950년대말~1960년대초 미국 포크 이야기다. 그 시대를 살아간 여러 포크 아티스트의 이야기이고, 그들이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미국 사회의 조금은 구체적인 이야기다. 르윈 데이비스라는, 이 허구의 포크 싱어송라이터는 극중 많은 이들에게 그리고 21세기 대한민국 관객에 묻는다. '돈벌이에 영합하려는 예술이 진정한 예술인가? 음악을 직업으로 택해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잘한 일인가? 포크는 과연 세상, 아니 나 자신이라도 구원할 수 있는가?..'


영화가 무대로 삼은 1961년 미국(과 미국 음악계)이 어떤 상태였는지, 그래서 르윈 데이비스가 왜 그리 살았는지는 이 해 나온 유명 음반들을 살펴보면 된다.

이전 10년 풍족한 시대를 보낸 재즈신에서는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의 'Waltz For Debby', 여성보컬리스트 빌리 할리데이의 라이브 앨범 'At Carnegie Hall', 색소포니스트 에릭 돌피의 난해한 프리재즈앨범 'At The Five Spot', 선구자 마일스 데이비스가 콜럼비아 레코드로 옮겨 내놓은 'Someday My Prince Will Come' 등이 나왔다. 한마디로 대중성에 관한 한 이미 정점을 찍은 상태. 클래식도 힘을 못쓰긴 마찬가지였다. 샤를 뮌쉬가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 피에르 몽퇴가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프랑크의 '심포니'를 모두 RCA-리빙 스테레오' 타이틀로 내놓은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세상은 '신나는 트위스트'와 '달콤한 팝' 음악에 열광하고 있었다. 이미 영국에서는 비틀스가 토니 셰리단과 함께 초기앨범 'In The Beginning'을 내놓으며 다가올 영광의 10년을 준비하고 있었고, 미국에서는 처비 체커의 광란에 가까운 'Let's Twist Again'과 'The Twist' 두 곡이 싱글로, 더 벤처스의 익숙한 트위스트 'Shanghied / Bumble Bee'가 나왔다. (하긴 국내에서 한명숙의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가 10인치 LP에 담겨 나온 것도 이 해 1961년이었다). 팝 쪽에서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연간 싱글차트 2위곡 'Can't Help Falling In Love'가 가장 유명했고, 레이 찰스의 'Hit The Road Jack', 팻 분의 'The Exodus Song', 수 톰슨의 'Sad Movie Makes Me Cry' 등이 1961년을 빛냈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시대에, 한낱 무명 포크가수였던 르윈 데이비스(오스카 아이삭)의 우중충한 포크송은 먹힐 리가 없었다. 한때 비트족의 자유분방한 선전구호로서 시대를 호령했던 포크가 점점 그 영향력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에서 오스카 아이삭은 이런다. "너도나도 포크를 부른다." 그래서 영화 시작하자마자 '가스등' 카페라는 곳에서 '덜렁' 통키타 한 대 갖고 부른 'Hang Me, Oh Hang Me', 이 노래야말로 르윈과 이 영화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Hang me oh hang me/ So I'll be dead and gone/ I wouldn't mind your hang boys/ I've been waiting 'round here too long/ Waiting 'round here too long..' 실제 줄리어드음대를 졸업한 오스카 아이삭은 끝까지 전곡을 부르는데 노래 내용은 (아뿔싸) 죽기 직전 사형수의 회고록이다.

사실 'Hang Me, Oh Hang Me'는 '인사이드 르윈'이 크게 참고한 실존 포크가수 데이브 반 롱크(1936~2002)의 1963년 발표곡이다. '인사이드 르윈'이라는 영화제목 역시 그의 1963년 앨범 'Inside Dave Van Ronk'에서 따왔다(영화에서는 르윈 데이비스가 시카고의 유명 프로듀서 그로스맨에게 보여준 자작앨범 제목이 'Inside Llewyn Davis'인 것으로 처리했다). 어쨌든, 이 감동적이고 가슴 뭉클하지만 태생이 '칙칙'할 수 밖에 없는 슬로우 포크 'Hang Me, Oh Hang Me'가 가스등 카페 손님들을 열광케 할 수는 없었다. 영화 곳곳에서 이어지는 르윈 데이비스의 'Fare Thee Well' 'Green Green Rocky Road'도 마찬가지. 그것은 이제는 새로운 시대를 위해 길을 비켜야 할 포크의 운명에 대한 우울한 사망진단서였던 셈이다.

결국 영화는 '포크=밥 딜런'으로 단순화하기 이전의 포크를 다뤘다.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1963. The Freewheelin' Bob Dylan)와 'Like A Rolling Stone'(1965. Highway 61 Revisited)이라는 희대의 포크 명곡이 세상을 달뜨게 하기 바로 몇 해 전으로서 1961년. 맞다. '인사이드 르윈'은 밥 딜런이라는 스타가 오히려 포크의 어두운 면을 가려버린, 그 암울하고 비참한 시대와 뮤지션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것도 이리 채이고 저리 비틀대다 음악을 접고 다른 일(선원)을 택하려한 한 뮤지션의 이야기!

그래서 코엔 형제가 주인공 르윈 데이비스의 음악과는 조금 결이 다른, 적당히 흥겹고 적당히 대중취향적인 포크를 영화 곳곳에 배치한 것은 옳다. 르윈 데이비스의 동료인 진(캐리 멀리건)과 짐(저스틴 팀버레이크) 부부가 앳된 미군 트로이 병사와 함께 부른 경쾌한 리듬의 포크 '500 Miles'(원곡은 피터, 폴 & 메리), 짐이 대중취향을 겨냥해 만들어 취입한 코믹 풍자포크 'Please Mr.Kenndey'(우리를 저 먼 우주로 보내지 말라) 등등. 이 노래에 손님들과 제작자가 열광할수록, 진지한 자신만의 포크 세계를 걷는 주인공 르윈의 삶은 영화적으로 더 쪼그라들게 비쳐진다. (더욱이 영화 막판에는 몇 년 후 톱스타가 될 밥 딜런이 가스등 카페에서 조심스레 노래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면 오스카 아이삭이 두 번이나 부른 'Hang Me, Oh Hang Me', 프로듀서 그로스만 앞에서 최선을 다해 부른 그의 오디션곡 'Green Green Rocky Road'가 이처럼 귓전에 강렬하게 남는 것은 왜일까. 마치 밥 딜런의 1963년 앨범 재킷처럼, 지금도 뉴욕 거리 한 귀퉁이에서 르윈 데이비스가 쓸쓸히 걷고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꼭 뮤지션이 아니라 해도, 1961년이나 2014년이나 이 사회라는 것은 언제나 대중과 조직의 변덕스러운 취향과 입맛에 영합하는 자들만이 살아남는 것이니까. 밥 딜런도 결국은 일렉 기타를 잡았고, '위대한 60년대'는 그래서 결국 막을 내린 것이니까.

'인사이드 르윈'이 한 천재형 인디뮤지션의 성공스토리가 아닌 점이 반갑다. 기승전결과 갈등과 화해라는 빤한 공식을 통해 뮤지션의 성장기를 할리우드식으로 포장하지 않아서 더 반갑다. 그리고, 밥 딜런의 음악 정도로만 기억했던 포크의 맨얼굴을 구체적으로 집약해서 보여준 점이 반갑고 또 반갑다. 이것은 '원스'도 '어거스트 러쉬'도 심지어 다큐 형식을 취한 '서칭 포 슈가맨'도 못했던 일이다. 시대와 사람의 이야기를, 단 일주일의 행적을 커트해서 보여준 코엔 형제. 그 장인 정신이 그리고 그들이 빚어낸 영화속 포크사운드가 그지없이 순결하다.

김관명 기자 minji2002@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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