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 허영지 "어렸을 적 별명 '야생마'였죠"(인터뷰)

박한빛누리 기자 / 입력 : 2015.04.0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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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 허영지 /사진제공=더스타


영지 효과는 대단했다. 카라에 합류한지 고작 200일 남짓 지났을 뿐이다. 그야말로 단기간에 공중파뿐 아니라 케이블 예능 프로그램을 섭렵했다. 누구는 낙하산이라며, 카라를 등에 업은 금수저라며 질투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혹독한 연습생 시절을 아는 사람이라면 허투루 내뱉을 수 없는 말들이다. 영지는 누구보다 오랜 기간을 연습생 신분으로 땀을 흘렸다. 학창시절 딱 한번 뿐인 수학여행에 대한 추억도 포기한 채 연습에 매진했다. '영지 효과'는 운이 아닌, 그간 노력의 산물이다. 요즘 '너무 행복해서 미칠 지경'이라는 영지를 만났다.

-사내아이 같은 유년시절을 보냈다면서요?


▶어렸을 적 별명이 야생마였어요. 뱃속에 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다 남자일 거라고 예상했대요. 뱃속에서 너무 신나게 뛰어놀아서 엄마도 '아이고, 배야'를 입버릇처럼 내뱉으셨다고 했어요. 그래서 유아용품도 다 남자용으로 사놓으셨대요. 어렸을 때 사진을 보면 다 로봇을 손에 쥐고 있어요. 저는 바비인형보다 로봇을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꽤나 개구쟁이였나 봐요.

▶하루는 엄마가 아이섀도를 그리는 게 너무 예뻐 보였나봐요. '그냥 진한 색깔을 바르자' 해서 매니큐어를 눈에다가 발랐어요. 보통 눈을 감고 그리잖아요. 어릴 때 그런 걸 어떻게 알아요. 그냥 눈을 뜨고 그 위에 매니큐어를 바른 거예요. 난리가 났죠. 엄마는 운전을 못하셔서 앞집 아저씨 차를 타고 응급실에 갔어요. 민폐죠. 자칫하면 실명할 뻔 했데요. 했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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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 허영지 /사진제공=더스타


-학창시절엔 어떤 학생이었어요?

▶수업시간에 열심히는 하는데 잘 못하는 학생이었어요. 너무 서러워서 엄마랑 얘기하다가 운적도 있어요. 엄마가 대기만성 형이라고 위로해줬던 게 기억이 나요. 물론 공부가 힘들어서 예체능으로 빠진 건 아니에요(웃음). 쉬는 시간에는 날아다니는 아이였어요. 하도 뛰어놀아서 양발을 번갈아가면서 깁스를 하고 다녔어요. 선생님이 '너 왜 아직도 깁스를 안 풀었니?'라고 물으시면, 반대쪽을 다친 거라고 얘기했죠. 제가 조용하면 그날은 아픈 거예요.

-꾸미기를 좋아하는 학생이었나요?

▶전혀요. 컨버스 운동화가 뭔지도 모르고 엄마랑 동대문 걸어가다가 가짜 신발을 사기도 했어요. 신발을 사고 기분이 너무 좋아서 다음날 박스채로 들고 학교에 가서 자랑했거든요. 애들이 진짜 배꼽을 잡으면서 웃었어요. 신발에 'ALL STAR'가 아니라 'TWO STAR'라고 써 있더라고요. 그 정도로 브랜드 이름을 잘 몰랐어요.

-그럼 학창시절 관심사가 뭐였어요?

▶학교에서 신나게 노는 것에 빠져있었죠. 꿈이 많은 아이였어요. 그래서 누군가 아프면 '의사가 되고 싶다'고 하고, 그날 본 드라마에 따라 하고 싶은 게 맨 날 바뀌었어요. 어렸을 때는 누구나 그러잖아요.

-학창시절을 돌아봤을 때 아쉬운 것은 없나요?

▶더 신나게 못 놀아서 아쉬웠던 것 같아요. 연습생 생활한다고 오전수업만 하고 갔거든요. 친구들이랑 추억이 많지 않아서, 너무 아쉬워요. 수학여행도 못 갔어요. 친구들이 너무 재밌었다고 약 올리는데 어찌나 화가 나던지.

-설 때 부모님께 드릴 내복을 사는 내용의 인터뷰를 봤어요.

▶아직 정산을 안 받아서 제가 돈이 많이 없어요. 내복도 용기내서 샀어요. 코 묻은 돈이죠.(웃음) 다들 제가 많이 벌었을 거라고 하시는데 오해에요. 나중에 좋은 것 사드려야죠. 부모님도 얼마나 대단한 것 해줄지 기대 많이 하고 있다고 하세요.

-정산 받으면 어떤 걸 해드리고 싶어요?

▶제 카드를 드릴 거예요. 아, 물론 지금도 드릴 수 있어요. 근데 잔고가 하나도 없어요.

스타뉴스 더스타=박한빛누리 기자 today@mtstarnews.com / 사진 <더스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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