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체인지업]10구단 시대 한국프로야구 미래로 가는 길

[특별 기획 시리즈] 한국야구의 새 길을 묻는다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 입력 : 2015.09.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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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척돔. /사진=뉴스1





1982년에 출범한 한국프로야구는 올해 34년 째이다. 금년은 한국프로야구 KBO리그가 사상 처음으로 10구단 시대를 열었고 내년에 35주년이 된다. 이 시점에서 우리 프로야구가 과연 어느 정도의 기반 위에 올라 서 있는지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글쓴이는 프로야구 29번째 시즌인 2010년 한국야구의 길을 묻는다 시리즈를 베이스볼 클래식(현, THE BASEBALL)에 6회 연재했다. 그 후 한국프로야구는 구본능 총재의 강력하고 전문적인 리더십으로 획기적인 도약을 이루었다.

내년 2016시즌에는 넥센 히어로즈가 가장 혹독한 시련을 겪을 전망이다. 고척동 돔구장으로 이전해 연간 80억원에 이르는 구장 운영비를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서울시는 넥센에 확실하게 지원 약속을 하지 않고 있다. 넥센 히어로즈는 야구 전문 기업으로 타 구단과는 경영 상황이 다르다.

우리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프로야구에서는 지난 2004년 긴테쓰 버팔로즈가 누적되는 구단의 적자 규모 때문에 결국 팀 운영을 포기했다. 모기업의 경영난이 심각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순전히 야구단의 연간 적자가 우리 돈으로 약 400억 원에 달하자 아무 조건 없이 팀을 넘긴 것이다.


그룹 계열사들의 지원금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한국프로야구는 사실상 지금까지 흑자 구단이 단 한 구단도 없었다. 의문을 가져 본다.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어 앞으로도 현재의 상황이 무작정 계속된다면 긴테쓰나 현대 유니콘스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는 팀들이 다시 안 나올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긴테쓰 구단이 경영 포기라는 결단을 내렸을 때 소액 주주들이 가장 먼저 박수를 치고 환영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제는 우리 기업에도 수많은 소액 주주들이 존재하고 IMF 이후 외국 주주들까지 급증해 경영 전반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국프로야구는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을 앞두고 원년 이후 처음으로 명예직이 아닌 전문 경영인 커미셔너인 유영구 총재를 영입했다. 유영구 총재는 취임 직후 WBC 준우승의 성적을 거두고 이어 계속된 2009시즌 사상 최대인 592만 명 관중에 320억 원 입장 수입 신기록을 세웠다. 한국야구는 이에 앞서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프로야구를 바탕으로 야구 수준의 기술적인 발전에 있어서는 성과가 뚜렷하게 나타나 세계 정상급에 근접해 있다. 여러 측면에서 한국프로야구의 무한한 성장 가능성은 모두가 확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2009년8월22일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 한국프로야구의 제 19대 총재로 취임해 KBO리그에 기업 경영 마인드를 접목해 새로운 시장을 개쳑했고 그 결과 재 추대돼 2017년까지 한국프로야구를 이끌게 됐다.

10구단 시대는 바로 프로야구가 산업화 됐음을 의미한다. 통일이 되지 않는 한 더 이상의 창단은 없다. 이제 프로야구가 팀 승리에만 집착하지 말고 구단과 리그 경영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와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업적 측면에서 진정한 프로 스포츠 기업으로 자립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글쓴이는 한국야구의 길을 묻는다 2010년 시리즈를 업데이트 해 KBO리그의 미래, 새 길을 찾아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세계최고의 프로스포츠 리그인 NFL의 성공 전략을 연구해본다.

NFL은 무엇이 특별한가 - NFL의 부침과 성장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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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L 경기 장면. /AFPBBNews=뉴스1





매년 2월을 전후 해 미국이 스포츠 종목 가운데 단일 게임 이벤트로 모든 부문에서 세계 최대 규모라고 자랑하는 ‘슈퍼볼(Super Bowl)’을 통해 NFL(National Football League)은 잠깐 동안 한국 스포츠 팬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곧 잊혀진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열리거나 하는 종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풋볼(미식축구)은 순전히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스포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NFL의 역사나 경기 방식의 변천 등을 깊이 연구해보는 것 자체는 의미가 없다. 다만 NFL이 세계적으로 훨씬 더 대중화된 종목인 MLB, NBA(미 프로 농구), NHL(북미 아이스하키 리그)을 제치고 미국 시장에서 최고의 팬 집중도와 최다 수익(收益, revenue)을 올리고 있는 배경이 더 궁금해진다.

한국의 기아차가 2010년부터 금년까지 6년 연속 슈퍼볼에 광고를 하고 있음을 주목해보자. 기아차는 올해 슈퍼볼 광고에 007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 역할을 맡았던 피어스 브로스넌을 출연시켰다. 슈퍼볼은 2010년 2월8일(한국 시간) 미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에서 뉴 올리언스 세인츠가 강호 인디애나 폴리스 콜츠를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창단 43년 만에 첫 진출, 첫 우승을 차지한 제44회 경기의 시청자 수가 ‘AC 닐슨’ 조사에 의하면 무려 1억650만 명이었다. 이는 1983년 방송된 미 인기 코믹 드라마 ‘매시’의 최종회 시청자 수 1억597만명을 넘어 선 미 TV 역사상 최고 수치이다.

한국프로야구의 미래, 새롭게 갈 길을 찾고자 하는 특별 기획 시리즈에서 NFL을 가장 먼저, 그리고 깊게 연구해보자고 주장하는 이유는 현재의 폭발적인 인기 때문만이 아니다. 오히려 NFL이 강력한 커미셔너 중심 운영 체계를 확립해 구단들과 리그 경영에 대한 총체적인 협력과 노력을 집중하기 전까지는 미 4대 리그 가운데 최하위에 뒤처져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무엇보다 먼저 NFL이 어떤 과정을 거쳐 단연 1위로 발전했는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32개 클럽으로 구성된 NFL의 팀 당 한 시즌은 시범 경기 4게임, 정규 시즌 16게임에, 12팀이 출전해 지면 탈락하는 ‘싱글 일리미네이션(single elimination)’ 방식으로 슈퍼볼 출전 팀을 가리는 플레이오프와 챔피언십 게임인 ‘슈퍼볼’로 구성된다. 팀 당 전체 경기 수가 모두 합해도 20 여 게임으로 타 프로리그에 비해 수익을 올린 기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런데 NFL 최고 인기 클럽인 댈러스 카우보이즈의 경우 <포브스(Forbes)>지가 9월15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현재 구단 가치가 40억 달러($4 billion, 한화 약 4조7680억원, 1달러 1,192원 환산)에 달한다. 댈러스 카우보이즈는 금년에 스페인 프로축구 구단 레알 마드리드를 제치는 파란을 일으켰다. 포브스에 따르면 레알 마드리드는 약 3조8000억원으로 평가 돼 댈러스 카우보이즈와 거의 1조원 차이가 났다.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는 NFL 슈퍼볼 챔프,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와 함께 약 3조7750억원으로 공동 3위에 올랐다. 한 때 세계에서 가장 비싼 프로스포츠 구단이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3조6655억원으로 6위에 머물렀다.

과연 무엇이 댈러스 카우보이즈를 상상을 초월하는 가치의 구단으로, NFL을 미국에서 최고 인기 프로스포츠에 각 구단의 평균 기업 가치를 10억 달러(약 1조1191억원)이상으로 만들었을까. 주목해야 할 점은 32개 클럽 모두가 10억 달러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1위인 댈러스부터 다소 차이는 있다. 그러나 32개 클럽 전체가 균형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특이하다.

NFL의 역사를 통해 본 부침

데이비드 해리스가 1986년 출간한 ‘The League: The Rise and Decline of the NFL’을 읽어보면 NFL의 성장사가 잘 나온다. 저자인 데이비드 해리스가 이 책에 쓰고자 한 바를 요약하면 프로 풋볼 클럽을 놓고 자기 팀의 수익을 먼저 추구하는 구단주들과 리그 전체 발전 간의 갈등 구조를 규명하며 마침내 최고의 리그를 만들어낸 배경을 설명한 것이다.

1869년 럿거스와 프린스톤이 사상 최초로 대학 사커 풋볼을 펼치면서 미국식 풋볼의 탄생을 예고했다. 그 경기는 영국 런던 풋볼 협회의 규칙을 수정 적용했는데 럭비에서 미국식 풋볼이 시작된 것이다. 미국식 풋볼의 규칙은 1876년 매사소이트 회의에서 처음 제정됐으며 월터 캠프가 미국식 풋볼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1899년에는 현재 애리조나 카디널스의 모태가 된 모간 어슬레틱 클럽이 시카고에 창단됐고 1902년 야구의 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피츠버그 스타즈와 함께 ‘National Football League)’라는 사상 첫 프로 리그 창설을 시도했으나 1906년 도박 사건이 벌어지는 등 혼란기가 계속됐다.

당시 발전을 저해한 3가지 요소는 승리에만 집착하던 클럽들 간의 무한 경쟁으로 선수들의 몸값이 급등하고 선수들이 높은 급여를 제시하면 무조건 팀을 옮겨 가 재정적으로 버티지 못하는 팀들이 속출하고 한편으로 대학 재학 선수까지 뛰게 하는 일 들이었다.

이에 1920년 하나의 같은 규칙에 운영되는 리그 조직 창설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마침내 오하이오주 캔턴에서 열린 1차 회의에 이어 9월17일 2차 회의를 통해 참가비 100달러를 내는 APFA(American Professional Football Association)이 출범했다. 그리고 1922년 명칭을 NFL(National Football League)로 변경했고 18개 팀으로 구성됐다.

NFL에 대항하는 프로리그는 1936년 결성됐다. AFL(American Football League)이다. AFL은 몇 년 뒤 중단 됐다가 1959년 재출범하게 된다. 이런 가운데 NFL은 1939년 100만 관중을 넘어섰으며 1941년 3월 엘머 래이든이 첫 커미셔너로 선출됐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AAFC(All-American Football Conference)가 탄생하는 등 격변기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1951년에 NFL 챔피언십 경기가 처음으로 전국에 중계됐다. 듀 몽트 네트워크가 7만5,000달러를 내고 램스가 브라운스에 24-17로 이기는 경기를 방송해 새로운 수익원으로 떠올랐다. 1954년에는 NBC가 10만 달러를 내고 중계권을 따냈다. NFL은 1959년 버트 벨 커미셔너가 심장 마비로 사망하면서 1960년 후일 NFL의 발전 기반을 다진 인물로 평가 받는 피트 로젤이 새 커미셔너로 등장하게 된다.

NFL의 성장과 커미셔너들의 공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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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1월 취임한 피트 로젤(사진, 1926~1996)은 1989년 은퇴할 때까지 무려 30년 가까이 커미셔너로 일했다. 그는 NFL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스포츠 리그의 하나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대학 출신으로 프로 풋볼 팀 LA 램스의 홍보실, 1956년 멜번 올림픽 마케팅 일을 거쳐 1956년 LA 램스의 단장을 맡아 팀을 인기구단에 흑자로 전환시켜 주목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커미셔너가 되는 길은 험난했다. 무려 23번의 투표를 거쳐다. 피트 로젤이 커미셔너가 됐을 때 NFL은 12개의 팀이 정규 시즌 12경기를 반쯤은 텅 빈 구장에서 하는 초라한 리그였다. TV 중계권 계약을 맺고 있는 팀들도 2~3개에 불과했는데 사실상 193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이에 NFL 구단 관계자들은 겨우 34세에 불과했던 새 커미셔너 피트 로젤에게 입장 수입과 TV 중계권 수익을 공유하는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전권을 줬다. 사실 수익 공유(revenue-sharing) 시스템은 1959년 새롭게 출범한 AFL의 먼저 적용한 방식을 차용한 것인데 피트 로젤은 수익 공유가 스몰 마켓 팀의 성공을 보장할 수 있는 방식이며 AFL에서의 성공으로 이미 효과가 증명됐다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리그 발전이라는 지상 과제를 위해 강력한 권한을 위임 받은 피트 로젤은 AFL의 모델에 따라 네트워크들 간의 경쟁을 유도하며 성공적으로 중계권 계약을 맺는 등 리그에 소속된 모든 팀들이 동등하게 수익을 공유하고 드래프트를 하는 카르텔 방식의 리그를 만들어 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냈다.

이후 NFL은 AFL과 치열한 경쟁 구도를 형성한다. AFL은 NBC TV와의 대형 계약을 맺었으며 양 리그 간에는 선수 쟁탈전이 진행됐다.

결국 과다 경쟁으로 리그 자체의 붕괴 가능성까지 나오자 1965년 NFL, AFL 양 리그의 구단주들이 비밀리에 회동하기에 이른다. 이 자리에서 양 리그가 NFL로 통합됐다. NFL과 AFL의 합병은 피트 로젤의 선서 등을 거쳐 미 의회의 승인을 받았으며 NFC, AFC 양대 컨퍼런스에 ‘슈퍼 볼’이 창설됐다.

이후 피트 로젤은 인기 프로그램인 ‘먼데이 나이트 풋볼’, 리그의 확장, 중계권 수익 배분 등을 주도하면 NFL의 첫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가 시장 규모가 작은 팀들까지 NFL 전체 구단들의 경영을 호전시키는데 성공한 것은 먼저 구단들로 하여금 경기 입장 수입의 40%를 커미셔너 사무국으로 반납시킨 것에서 시작됐다. 여기에 중계권 계약을 커미셔너 사무국에서 전담해 전체 수입을 관리하고 라이센싱과 상품 판매 등의 수익을 커미셔너 사무국에 집중시켜 커미셔너 사무국이 분배하는 방식을 확립함으로써 전체 발전을 이끌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선수 노조와의 갈등과 각종 소송들, 수익 분배에 대한 구단주들 간의 이견 조정과 팀 연고지 이동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피트 로젤 커미셔너의 재임 중 NFL은 최고의 브랜드로 성장하는 기초를 다졌으며 미국 프로 스포츠의 상징이 됐음은 확실하다. NFL은 두 차례 선수 노조 파업과 2개의 새로운 리그 창설 파동을 겪으면서도 정상의 자리에 올랐고 클럽을 28개로 늘렸다.

폴 타글리아부 커미셔너와 현재

피트 로젤에 이어 1989년 NFL 고문 변호사 출신인 폴 타글리아부가 새 커미셔너가 됐다. 폴 타글리아부는 법률가 출신으로 2006년 9월1일 은퇴할 때까지 스포츠 배경이 없다는 것이 단점으로 작용했으나 특유의 협상력으로 구단주들과의 갈등을 해소하고 특히 방송 중계권 분야에서 최고의 계약을 이끌어냈다.

리그의 확장에도 성공해 6개의 도시가 새로운 프랜차이즈로 편입됐다. 뉴욕 월드 트레이드 센터와 펜타곤에서 9.11 테러 사건이 났을 때 NFL 게임 스케줄을 취소해 과거 1963년 케네디 암살 사건 당시 경기를 강행해 비난을 받았던 피트 로젤과 대조를 이뤘다.

폴 타글리아부는 북미 프로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커미셔너라는 소리까지 듣는다. 특히 진 업쇼가 이끌던 선수노조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 재임 기간 중 단 한차례의 파업도 없었다.

그리고 피트 로젤 커미셔너의 성공에 힘입어 커미셔너로서 더욱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된 그는 다른 프로 스포츠 리그와 비교해볼 때 NFL의 구단 간 ‘수익 균등 분배’ 구조를 더욱 강화시켰고 선수 파업 없이 구단의 연봉 총액 상한제인 샐러리 캡 제도를 도입 정착시켰다. 2006년 3월 단체 협약에 의하면 2012년까지 8억5,000만 달러~9억 달러까지 매출 상위 15개 구단들이 수익을 재분배해야 한다. 아울러 금지 약물 사용에 관한 규칙을 엄격히 제정하고 24시간 전문 방송인 NFL 네트워크를 비롯해 NFL.com, NFL Shop 등을 계속 출범시켰다.

이 밖에 여성과 남미계인 히스패닉 팬들에 대한 마케팅, 아마추어 선수 및 팀들에 대한 지원으로 저변 확대 등이 폴 타글리아부 커미셔너 재임 중 체계화됐다.

그러나 선수 노조와의 새로운 단체 협약 체결,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중계권 문제, 선수들의 사고 방지 등의 어려운 과제들을 2006년9월1일 취임한 로저 굿델 현 커미셔너에 넘겼다.

NFL은 2008-2009시즌 76억달러(약 8조7,400억원)의 총 매출을 기록하는 프로 스포츠 최고의 리그 중 하나로 발전해 있다. 폴 타글리아부 커미셔너는 재임 기간 중 무려 17개의 스타디움이 신축되도록 만들어 스포츠 팬들의 발길을 NFL로 이끌었다. 아울러 1998년 CBS, NBC, Fox, ESPN 등과 계약한 8년간 22억달러(약 2조5,300억원)의 중계료를 각 구단마다 9,400만 달러(1,081억원)씩 배분해 준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미국인의 정복 기질에 가장 잘 맞는 경기 방식을 기반으로 클럽들 간의 기본 적인 수익 균형 공유 방식이라는 차별화된 리그 운영 방식과 샐러리 캡 등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스몰 마켓 팀들도 언제든지 우승을 할 수 있는 전력을 갖출 수 있어 팬들의 흥미를 더하고 있다. 현재의 NFL은 북미에서 단순 프로리그의 수준을 넘어 ‘나이키(Nike)’를 능가한다고 일각에서 말 할 정도까지 최고의 ‘스포츠 브랜드(brand)’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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