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허', 그 '벤허'는 잊어야 할 액션 블록버스터

[리뷰] '벤허'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6.09.08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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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벤허' 포스터


돌아온 '벤허'는 보고 보고 또 본 그 '벤허'가 아니다. 반세기를 넘어 회자 되는 그 '벤허'에 비할 바도 아니다. 포스터에 떡 박힌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걸작'이란 카피 또한 이 '벤허'의 것이 아니다. 러시아의 액션 스타일리스트 티무르 베크맘베토브가 연출한 2016년의 '벤허'는 그냥 액션 영화다. 2시간이 후딱 간다.

'벤허'의 하이라이트는 예나제나 전차신이란 걸 주지라도 시키듯 영화는 서기 33년 경주를 준비하며 신경전을 벌이는 유다 벤허(잭 휴스턴), 메살라 세베루스(토비 켑벨)의 모습에서 출발한다. 곧 8년 전 둘의 좋았던 시간이 펼쳐진다. 예루살렘의 유대인 왕족 벤허과 입양된 로마 출신 메살라는 피를 나눈 형제 같은 사이. 그러나 종교·신분의 차를 견디다 못한 메살라는 출세하겠다며 전쟁터에 뛰어들고, 3년 뒤 로마의 호민관이 돼 예루살렘을 접수한 로마군과 함께 돌아온다. 둘은 반갑게 재회하지만, 벤허 일가는 누명을 쓰고 몰락하고, 메살라는 방관한다. 군함의 노를 젓는 노예로 5년을 보낸 벤허는 천신만고 끝에 빠져나와 복수를 결심한다. 그는 아프리카 출신 상인 일데르임(모건 프리먼)의 도움으로 전차 경주에 출전, 로마 대표 메살라에게 복수하려 한다.


'벤허'는 1880년 나온 동명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1907년, 1925년, 1959년 그리고 2016년 영화로 만들어졌다. 신상 '벤허'는 이 가운데 "원작에 가장 충실하다"지만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건 1959년 나온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걸작 '벤허'다. 유대인 벤허의 드라마틱한 삶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교차시킨 장장 222분의 대서사시는 시간을 초월해 사랑받는 고전이다. (심지어 지금도 상영 중이다!) 주제의식과 종교적 신념까지 분명한 강력한 드라마에 매력적인 캐릭터, 입 떡 벌어지는 스펙터클이 어우러졌고, 후대 영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벤허'는 블록버스터 5편을 만들 천문학적 액수였던 1500만 달러가 들어갔고, 기대와 우려 속에 대박을 쳤으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11개 부문을 휩쓸었다. '타이타닉'과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이 타이를 이루긴 했지만, 아직까지 깨지지 않은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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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벤허' 스틸컷


새 '벤허'는 1959년 영화의 줄거리를 거의 그대로 따라가면서도 소소하게 다르다. 러닝타임 99분을 줄이느라 잔가지는 대부분 쳐냈다. 메살라는 벤허의 여동생과 사랑하는 사이며, 노예 생활을 하던 벤허를 발탁한 로마 장군은 아예 사라졌다. 당시엔 여동생이 총독에게 실수로 기왓장을 떨어뜨려 온 집안이 반역자로 몰렸다면, 이번엔 벤허만 억울할 뿐 총독 암살 시도가 분명히 그려진다. 특히 메살라가 크게 달라졌는데, 친구를 배신한 후 단순 악역 역할을 톡톡히 했던 그에게 나름의 이유를 부여했다. 비중도 커져 영화가 벤허-메살라의 버디물처럼 보일 정도다. 무엇보다 그 '벤허'가 복수극이었다면 이 '벤허'는 화해의 드라마다.


짤막해지고 단순해진 이번 '벤허'는 2시간짜리 오락영화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드라마틱한 전개 덕에 지루할 틈이 없다. 그 사이 발달한 촬영 기술로 박진감과 속도감이 더 붙은 전차신은 여전한 하이라이트다. '고프로' 액션캠을 써 흙바닥에서까지 찍어낸 영상이 거친 느낌을 생생히 전달한다. 허나 안타깝게도,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 '벤허'의 장엄함, 영성, 집념에는 결코 미치지 못한다. 그 '벤허'를 모른다면 즐길만한 액션영화지만, 그 '벤허'에 경탄했던 관객이라면 허전하고 서운할 것이다. 새 '벤허'는 할리우드에서 한 해에도 몇 편씩 나오는 여러 블록버스터 중 하나일 뿐. 할리우드가 진정한 '꿈의 공장'이었던 황금시대에 탄생시킨 위대한 영화에 비할 바가 안 된다.

오는 14일 개봉. 러닝타임 123분. 12세 이상 관람가

P.S. 1959년 '벤허'가 끝끝내 드러내지 않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과 목소리가 이번엔 전면적으로 담겼다. 가려져 있어 더 성스러웠던 분위기는 확실히 반감됐다. 브라질 출신의 미남 배우 로드리고 산토로가 예수 그리스도 역을 맡았다. 2007년 영화 '300'에서 매끄러운 검은 피부에 황금을 주렁주렁 매달고 시선을 빼앗았던 크세르크세스 왕, "짐은 관대하다"고 하던 그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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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벤허'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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