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STL의 파울러 영입, 그렇게 깊은 뜻이..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 입력 : 2016.12.20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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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팀 컵스 출신 FA로 STL로 이적한 덱스터 파울러. /AFPBBNews=뉴스1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프로페셔널’하게 구단을 운영하는 팀 중 하나로 정평이 있는 구단이다. 눈앞의 성과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선수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단기적인 성적관리에도 뒤처지지 않는다. 뉴욕 양키스나 LA 다저스처럼 돈을 펑펑 쓰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매년 플레이오프 경쟁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다. 또 구단만큼이나 팬들도 구단의 모든 것을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세인트루이스가 올해 지난 2010년 이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지난 시즌 100승을 올려 메이저리그 최다승 팀이었던 세인트루이스는 올해 86승(76패)에 그치며 무려 103승을 올린 라이벌 컵스에 크게 뒤져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2위로 밀렸고 와일드카드 레이스에서도 뉴욕 메츠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1게임차로 밀리며 6년 만에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되는 고배를 마셨다.


시즌 종료 후 세인트루이스 프론트오피스는 곧바로 올 시즌에 대한 분석을 통해 내년 시즌 월드시리즈 도전자로 돌아가는데 있어 필수적인 개선 과제를 파악해냈다. 존 모제리악 단장은 그 결과를 시즌 결산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는데 기술적인 면에서 가장 핵심과제로 뽑힌 것은 팀이 좀 더 빠르고 민첩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수비에서 총체적으로 포구와 송구 시에 약점이 거론됐고 주루에서도 특히 선두타자 위치에서 소극적인 자세가 문제라는 진단이 나왔다.

이는 올해 통계만 살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한때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안정적인 수비와 공격적인 주루를 하는 팀으로 명성을 떨쳤던 세인트루이스가 올해는 양쪽에서 모두 큰 문제가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올해 세인트루이스는 총 107개의 실책을 범하며 실책부문에서 메이저리그 30개팀 중 25위에 그쳤다. 또 도루 수는 35개로 내셔널리그 꼴찌이자 볼티모어 오리올스(19개)에 이어 메이저리그 뒤에서 2등이었다. 팀내 도루 랭킹 1위의 기록이 달랑 7개(스티븐 피스코티, 콜튼 웡) 뿐이라는 사실이 말해주듯 문제가 심각하다. 더구나 세인트루이스가 전통적으로 안정된 수비와 공격적인 주루플레이를 트레이드마크로 했던 팀이라는 점에서 이런 순위는 낯설게 느껴질 정도다.

그런 차원에서 세인트루이스가 시카고 컵스 출신 프리에이전트 센터필더 덱스터 파울러(30)와 5년간 8,250만달러에 계약한 것은 팀의 가장 큰 과제를 한꺼번에 풀 수 있는 선택이었다. 파울러는 뛰어난 선구안을 보유한 리드오프 타자 요원이고 센터필더서도 상위급 수비력을 갖춘 선수로 평가되고 있다. 올해 그가 기록한 19개의 도루는 세인트루이스 팀 도루 1위 선수 기록의 3배에 육박하는 수치다. 더구나 그는 라이벌 컵스에서 온 팀이다. 컵스와의 격차를 좁혀야 하는 세인트루이스 입장에선 이처럼 모든 조건을 구비한 후보를 찾기 쉽지 않았던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파울러의 가세 효과는 단순히 공수에서 포지션 하나씩을 업그레이드하는 것 이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사실 파울러와 기존 중견수 랜들 그리척의 수비 지표를 살펴보면 대동소이하거나 오히려 그리척이 앞서지만 이 계산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파울러의 가세로 그리척이 좌익수로 이동할 예정이어서 가장 취약한 포지션으로 꼽혔던 레프트필드가 크게 안정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올해 주로 좌익수를 맡았던 맷 할러데이와 브랜던 모스(모스는 1루수로도 많이 기용됐다)는 모두 수비에서 약점을 보였고 둘 모두 FA로 풀려 내년에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미 할러데이는 뉴욕 양키스와 1,300만달러에 1년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척이 수비부담이 덜한 좌익수로 이동하면서 타격에서도 더욱 위력을 발할 것이라는 기대가 현실화된다면 파울러 효과는 더 증폭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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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까지 계약이 연장된 마이크 매시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감독 /AFPBBNews=뉴스1


물론 파울러 역시 세인트루이스의 모든 약점을 완전히 커버해 줄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사실 그의 올해 타율(0.276)은 선두타자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편이다. 선구안이 좋은 편으로 출루율은 0.393이라는 좋은 성적을 올렸으나 삼진 비율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또 올해 13홈런을 치며 파워에서도 사실상 그가 대체하게 될 할러데이(20홈런)에 비해 나을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 파울러는 지난 수년간 입증된 내구성과 높은 출루율, 그리고 아직도 상승세를 타고 있는 수비지표들을 보유하고 있어 세인트루이스에게 공-수-주 모든 면에서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9년부터 지난 8년간 최소한 4,000타석 이상을 기록한 선수들 가운데 파울러의 출루율 0.368은 11위에 해당된다. 지난 8년간 파울러보다 높은 출루율을 기록한 선수가 단 10명밖에 없다는 사실에서 그의 가치가 생각보다 높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이 기간 중 파울러는 1,051경기에 나서 시즌 평균 131경기에 나서는 단단함도 보여줬다. 세인트루이스가 충분히 투자를 결심한 만한 선수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세인트루이스가 오프시즌 시작과 함께 파울러를 최고의 영입후보로 지목한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선수단이 홈 도시인 세인트루이스를 좀 더 잘 반영할 수 있는 팀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른 대도시들에 비해 흑인 비율이 높은 편인 세인트루이스는 팀내 흑인스타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세인트루이스와 근교지역의 인구 약 240만명 가운데 흑인 비율은 18%에 달한다.

모제리악 단장은 “덱스터 파울러에 대한 우리의 생각 중 야구 외에 사안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종 갈등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한 그의 자세였다”면서 “그는 대단히 명석하고 지적인 인물이고 사회적인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파울러의 계약에 대해 현지 NAACP(유색인종 권익향상위원회) 지부가 팀에 감사하는 성명까지 발표한 것은 파울러의 계약이 세인트루이스 커뮤니티에 미치는 영향이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음을 말해준다.

세인트루이스는 지난 19년 동안 흑인 올스타 선수를 배출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세인트루이스 구단은 그동안 팀을 응원하는 팬들의 모습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사실 이는 세인트루이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메이저리그 전체적으로 볼 때 1975년 27%에 달했던 흑인선수 비율은 계속 떨어져 최근 수년간은 역대 최저수준인 8% 선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흑인들 사이에서 메이저리그는 백인들의 스포츠라는 인식이 깊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세인트루이스는 구단 역사에서 흑인선수들의 비중이 매우 높았던 팀이었다. 구단의 역대 WAR 톱10을 살펴보면 이들 중 4명이 흑인이고 이중 밥 깁슨, 루 브락, 오지 스미스 등 3명은 명예의 전당에 올라있다. 1980년대 3차례나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을 때도 오지 스미스, 윌리 맥기, 빈스 콜만, 로니 스미스 등 흑인선수들의 팀의 주축을 이룬 바 있다.

그런 세인트루이스 입장에서 흑인 스타는 팀에 꼭 필요한 존재 중 하나였다. 지난해 제이슨 헤이워드가 1년간 뛰고 난 뒤 오프시즌 후 컵스와 FA 계약을 맺고 떠나가면서 흑인스타급 선수의 공백이 생겼고 이에 따라 팀의 얼굴이 되어줄 흑인선수의 부재가 더욱 절실했다. 올해 세인트루이스의 흑인선수는 후보 외야수였던 토미 팸과 시즌 막판에 합류한 구원투수 제롬 윌리엄스 두 명 뿐이었다. 파울러의 영입은 결국 세인트루이스 입장에서 선두타자 겸 중견수 확보 차원에서는 물론 흑인 커뮤니티와의 관계를 위해서도 절대 필요했던 과제였던 것이다.

더구나 파울러가 올해까지 라이벌 컵스에서 뛰었다는 것은 세인트루이스 입장에서 ‘추가 보너스’다. 컵스가 파울러가 빠졌다고 전력이 크게 약화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해도 다른 팀이 아닌 컵스에서 온 선수라면 ‘플러스-마이너스’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세인트루이스가 내년에 컵스를 상대로 얼마나 경쟁력을 보여줄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그래도 파울러의 가세는 상당한 힘이 될 수 있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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