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류현진의 이유있는 '패스트 스타트'

장윤호 기자 / 입력 : 2017.02.21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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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AFPBBNews=뉴스1


어깨수술로 인한 지난 2년간의 공백기를 딛고 올 시즌 컴백에 도전하는 LA 다저스의 류현진이 올해 스프링캠프에서 출발부터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개인적으로 동계훈련을 마친 뒤 지난달 말 일찌감치 애리조나 글렌데일의 캐멀백랜치 스프링캠프에 들어와 개인 훈련을 해온 류현진은 지난주 구단의 공식 스프링 트레이닝캠프가 시작된 뒤 첫 팀 공식훈련에서 바로 불펜투구를 한 데 이어 지난 주말에는 타자를 상대하는 라이브 피칭에 나서는 등 캠프에 들어온 모든 투수가운데 가장 빠른 페이스를 보이고 있다.


특히 아무런 제약 없이 활기찬 모션으로 공을 던짐으로써 어깨수술을 받은 투수들에게서 볼 수 있는 추가부상에 대한 두려움과 그로 인한 위축감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스프링캠프 초반은 조심스럽게 시작한 뒤 갈수록 페이스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출발부터 매우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성공적인 컴백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높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런 류현진의 빠르고 적극적인 행보는 단순히 희망과 기대를 높여주는, 기분 좋은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류현진이 올해 시즌 개막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진입해 재기를 향한 순항 코스에 들어가는데 있어 이런 ‘패스트 스타트’는 100% 필수적인 단계였다. 캠프 초반엔 ‘천천히’ 출발하더라도 중반이후 바짝 페이스를 끌어올리면 선발 로테이션에 진입이 가능했다고 생각했더라면 큰 낭패를 볼 뻔 했다.

메이저리그는 철저히 실력만으로 평가받는,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정글의 세계다. 류현진이 이미 빅리거에서 첫 2년간 연속 14승을 거두며 검증을 끝낸 투수라고 해도 지난 2년간의 공백기는 그를 다시 스타트라인으로 되돌려놓은 상태였다. 지금 그는 2년전 태평양을 건너온 루키 투수 시절보다 약간 나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저스 수뇌부가 류현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만약 류현진이 캠프 시작과 함께 조금이라도 공을 던지는데 이어 제한된 모습을 보였더라면 그의 컴백 시도는 생각지 못했던 다른 요인에 의해 무기한 늦춰질 수밖에 없었다. 다저스 캠프에 선발투수 후보들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다저스가 예전의 류현진을 기대하며 자리 하나를 남겨놓고 기다려줄 것으로 생각했다면 큰 착각일 수밖에 없다.

당장 다저스 캠프가 열리기 하루 전날 나온 미 언론의 기사를 살펴보면 이런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다저스는 프리에이전트로 영입한 셋업맨 서지오 로모와 외야수 프랭클린 구티에레스, 그리고 재계약에 합의한 내야수 체이스 어틀리를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 올리기 위해 그 누구를 뺄지는 놓고 고민하고 있고 류현진을 시즌 개막과 함께 60일짜리 부상자명단(DL)에 올리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다저스 40인 로스터는 이미 선수들로 꽉 차 있어 누군가를 빼지 않으면 새 선수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이들 3명을 로스터에 더하려면 이미 로스터에 있던 선수 3명을 빼내야 하는데 류현진을 60일짜리 DL에 올리면 자동적으로 그는 40인 로스터에서 제외되기에 다른 선수를 잃을 고민 없이 자리 하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보도가 얼마나 사실에 기초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실적으로 가능성은 충분했다. 40인 로스터의 자리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 지는 한국팬들도 이미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의 충격적인 계약 양도선수 지정(designated for assignment-DFA) 케이스에서 잘 본 바 있다. 더구나 다저스 캠프에는 4, 5 선발 자리를 놓고 류현진 외에도 강력한 후보가 5~6명이 더 있었다. 류현진 입장에선 이제 막 뭔가 보여주려고 하는데 40인 로스터 자리 때문에 그런 기회조차 빼앗길 뻔 했던 것이다. 만에 하나 류현진이 캠프 첫 날부터 개막부터 선발로테이션 진입이라는 강력한 도전의지와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했더라면 류현진은 캠프 중반에 페이스를 끌어올릴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바로 60일 DL에 올랐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가 생각했던 모든 컴백 계획이 다 꼬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류현진은 캠프 시작 전부터 개인적으로 훈련하며 꾸준한 불펜피칭을 통해 캠프 시작과 함께 바로 팀에 그의 컴백이 멀지 않았음을 입증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동안 류현진에 대한 보고서를 통해 그의 진척상황을 알고 있는 수뇌부는 캠프 첫날 류현진의 던지는 모습을 본 뒤 그에게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고 류현진 대신 구원투수 이미 가르시아를 60일짜리 DL로 옮긴 데 이어 외야수 대린 러프의 계약권을 한국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에 넘겼다.

이어 20일에는 베테랑 좌완 구원투수 비달 누뇨를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싱글A 투수 라이언 모셀리와 트레이드해 내보내며 40인 로스터에 마지막 자리를 만들었다. 볼티모어는 트레이드를 마친 뒤 누뇨를 40인 로스터에 올리기 위해 바로 베테랑 왼손투수 T.J. 맥팔랜드를 DFA시켜야 했다. 트레이드 하나가 발생하면 그 여파는 트레이드 당사자 들 만이 아니라 전혀 관계없는 다른 선수에게도 여파가 미치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류현진을 60일짜리 DL에 올리지 않은 것을 보면 다저스가 류현진이 시즌 개막부터 선발투수로 나서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조치가 나올 수 있게 된 것은 류현진이 캠프 첫날부터 바로 불펜투구에 나설 만큼 공격적인 컴백 스케줄을 보여줬기에 가능했다. 천천히 해도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면 또 다시 긴 시간을 허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패스트 스타트’는 말 그대로 ‘스타트’일 뿐이다. 지금 40인 로스터에 살아남았다고 도전이 끝난 것이 아님은 당연하다. 이제부터 스프링캠프에서 보여주는 모든 것이 평가의 대상이며 조금이라도 불안하다는 느낌을 준다면 언제 어떤 상황을 맞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 류현진에게 확실한 것은 그의 남은 2년 계약이 보장돼 있다는 사실일 뿐이다. 마운드에 다시 설 수 있느냐는 전적으로 그가 이번 캠프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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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수-오승환-강정호-김현수./AFPBBNews=뉴스1


이런 스프링캠프의 약육강식, 적자생존 현실은 모든 팀에서 마찬가지로 찾아 볼 수 있다. 사실 올해 스프링캠프에 나서는 한국인 선수들에게 닥친 도전을 살펴보면 류현진 뿐 아니라 모두가 각자 돌파해야 할 관문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필드 밖에서의 문제로 정상적인 트레이닝캠프 합류가 불가능해진 강정호(피츠버그 파이리츠)를 제외하고 이번 스프링캠프에 들어가 있는 7명의 코리안들 가운데 포지션이 비교적 확실한 입지에 있는 선수는 오승환(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한 명 밖에 없다. 컴백에 나서는 류현진과 40인 로스터에 포함돼 있지 않은 로스터 외 초청선수 신분인 황재균(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과 최지만(뉴욕 양키스),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 등은 말할 것도 없고 김현수(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처럼 로스터 포함여부를 걱정할 필요없는 선수라도 그렇게 여유가 넘치는 것은 아니다.

김현수는 아직도 험난한 주전경쟁이 남아있고 이번 캠프를 통해 지난해 17타수 무안타에 그쳤던 왼손투수 상대 약점을 극복한 모습을 보여줘야 풀타임 선수로 올라설 기반을 구축할 수 있게 된다. 추신수의 경우는 이미 캠프에 들어가기도 전에 구단에서 이미 그를 지명타자로 돌릴 조짐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번 캠프에서 무엇보다도 100%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원하는 외야수 출전 경기수를 늘릴 수 있는 입장이다.

특히 고려해야 하는 것은 한 달 반이나 되는 스프링트레이닝 기간이 상당히 길어 보여도, 뭔가 보여줘야 할 선수들에겐 결코 긴 시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류현진이 캠프 첫날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면 자신을 입증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뻔 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이 그리 많은 것이 아니다. 특히 황재균과 박병호, 최지만 등 초청선수들의 경우는 캠프 시작부터 강렬한 인상을 안겨주지 못한다면 엄청나게 많은 경쟁자들을 상대로 과연 얼마나 많은 기회를 더 얻을 수 있을지 낙관하기 힘들다. 지난해 스프링캠프에서 김현수가 그처럼 부진하고도 그만큼이나 기회를 얻었던 것은 그가 40인 로스터에 올라 있을뿐 아니라 마이너행 거부권까지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초청선수에게 그렇게 많은 기회는 없다고 봐야 한다. 얼마 되지 않을 몇 번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살려야 하는 것, 그것이 초청선수들의 숙명이다.

재기에 나선 류현진 역시 마찬가지다. ‘시작이 반’이라지만 컴백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것에서 만족해선 안된다. 당장 시범경기 스케줄이 시작되면 바로 두 세 번의 선발등판 만에 5~6이닝을 거뜬히 소화할 수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다저스는 바로 다른 옵션을 찾을 것이다. 사실 팀 입장에서 10명이나 되는 선발투수 후보들에게 고르게 등판기회를 배분하는 것도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류현진에게만 계속 기회를 줄 수는 없다. 계속 자신을 입증하지 못하면 어느덧 기회는 계속 줄어들다 결국은 사라질 것이다. 부상에서 돌아온다고 ‘살살’ 하다간 어느새 밀려날 수밖에 없다. 생존을 위한 싸움은 첫날부터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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