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영화기행

스크린 뒤에는 뭐가 있을까(28)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입력 : 2018.03.2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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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투어리스트' 스틸컷


나는 이탈리아 팬이다. 지금까지 이탈리아에 서른 번을 넘게 입국했다. 물론 스위스 취리히에 살 때 주말이면 종종 밀라노에 다녀오곤 했던 것 까지 포함해서다. 그 나라의 풍광은 물론이고 문화유산, 그리고 사람들을 좋아한다. 리조또를 포함한 이탈리아 음식도 빼놓을 수 없다.

어느 나라나 영화로 그 나라를 여행한 것 못지 않은 감흥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이탈리아는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곳이라 영화의 무대가 되는 일이 흔하다. 매년 6천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이탈리아를 찾고 거기서 나오는 수입이 GDP의 10%를 차지하는 나라가 이탈리아다.


조니 뎁과 안젤리나 졸리의 '투어리스트'(The Tourist, 2010)는 물의 도시 베네치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다. 베네치아를 보여주기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닌가 할 정도다. 14세기에 지어진 유서 깊은 다니엘리 호텔을 비롯해서 베네치아의 약 20 곳에서 촬영했다. 다니엘리 호텔은 괴테, 바이런에서 시작해서 해리슨 포드, 스티븐 스필버그가 묵은 곳이다. 졸리와 뎁이 머문 스위트는 프루스트와 발자크가 묵고 간 방이다. 또 이 영화는 졸리가 가장 아름답게 보여진 작품이기도 하다.

'007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 2006)은 이탈리아 북부의 꼬모 호수가에 있는(조지 클루니의 별장이 여기 있다) 발비아넬로 빌라에서 촬영했고 후반부에는 베네치아 씬이 있다. 베네치아의 오래된 건물이 붕괴되면서 베스퍼(에바 그린 분)가 죽는다. 이 장면은 카나레지오 지역에서 촬영했는데 무너지는 건물은 CG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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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베니스의 상인' 스틸컷



알 파치노가 샤일록, 제러미 아이언스가 안토니오로 나오는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 2004)은 물론 베니스 전역이 무대다. 12세기에 지어진 리알토 다리도 보인다. 이 영화의 원작인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상거래 분쟁은 왕이나 영주 앞에서가 아니라 법정에서 판사 앞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가르쳐 주었다.

이탈리아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지역은 중부의 토스카나지방이다. 미켈란젤로의 피렌체, 13세기에 건립된 대학이 있는 시에나를 중심으로 펼쳐진 환상의 전원과 언덕 위 마을들이 있는 곳이다. 햇빛이 쏟아질 때면 세상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곳이다. 와인 산지인 몬테풀치아노와 몬탈치노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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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007 퀀텀 오브 솔러스' 스틸컷


시에나에서는 매년 두 번 시내 중심의 광장에서 전통 경마대회가 열린다(Palio di Siena). 14세기에 시작된 이 행사는 '007 퀀텀 오브 솔러스'(Quantum of Solace, 2008) 초반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이 경기장과 고색창연한 시에나 시가지의 지붕 위에서 제임스 본드가 추격전을 벌인다. 어디를 영화로 보는 것은 실제 여행보다 못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실제 여행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것들도 볼 수 있다. 이 경마대회가 그렇다.

TV영화인 '태양의 그림자'(Shadows in the Sun, 2005)는 토스카나에서 생긴 러브 스토리이기 때문에 내내 토스카나의 전원을 보여준다. 다이안 레인의 '투스카니의 태양'(Under the Tuscan Sun, 2003)은 남편의 배신으로 절망에 빠진 주인공이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는 영화다. 여행으로 떠났다가 거기서 빌라를 사서 정착하려고 애쓴다.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Life Is Beautiful, 1999)는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과 남우주연상 수상작이다. 피렌체에서 남쪽으로 시에나 정도 거리에 있는 아레초에서 찍었다. 아레초에는 물론 관광 상품으로 ‘인생은 아름다워 투어’가 있다.

'전망 좋은 방'(A Room With a View, 1985)은 토스카나의 중심지인 피렌체를 보여준다. 다니엘 데이-루이스가 조연으로 나오는 영화다.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이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도시다. 로베르토 베니니가 산다. 구치가 창업한 곳이기도 하다.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 셰어와 주디 덴치의 '무솔리니와 차 한 잔'(Tea with Mussolini, 1999)도 주로 피렌체에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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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인페르노' 스틸컷


댄 브라운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톰 행크스의 '인페르노'(Inferno, 2016)는 피렌체의 베키오 궁전에서 촬영했다. 세트가 아니고 진짜다. 행크스는 스티븐 콜베어 쇼에 나와서 피렌체 시 당국이 실제 베키오 궁전에서 촬영하는 것을 허가해 줄 줄은 몰랐다고 했다. 시청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 궁전은 피렌체 대성당(두오모)과 함께 피렌체 최고의 건축물이다. 물론 관광객들도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이 궁전의 중심인 500인의 방 화려한 천정 위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보여준다. 500인의 방에서는 미켈란젤로와 다빈치가 프레스코화 경연을 벌였다.

피렌체가 한 번도 나오지 않으면서 내내 "플로렌스, 플로렌스" 하는 영화도 있다. 산드라 벌록의 '당신이 잠든 사이에'(While You Were Sleeping, 1995). 거기서 벌록은 피렌체 여행이 평생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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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 스틸컷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 베로나가 무대인 영화는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레터스 투 줄리엣’(Letters to Juliet, 2010)이다. 베로나의 비아 카펠로에 있는 13세기 건물 줄리엣 하우스와 로미오가 줄리엣에게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 발코니를 볼 수 있다. 재미있게도 올리비아 핫세의 1968년 작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탈리아 각지에서 찍었지만 베로나는 제외다. 디캐프리오가 로미오인 1996년 영화는(Romeo+Juliet) 마피아 버전이라 이탈리아와 관계없다. 2013년 영화는 일부 베로나에서 촬영했다.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감동적인 명화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 1988)은 시칠리아(시실리)를 무대로 펼쳐진다. 토르나토레의 고향인 바게리아에서 찍었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서정적인 음악이 흐르는 이 영화는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다. ‘일 포스티노’(Il Postino, 1994)도 시실리에서 많은 부분을 촬영한 영화다. ‘대부’(1972)도 물론 시실리에서 촬영되었다.

시실리는 이탈리아 마피아(Cosa Nostra)의 발상지라는 나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지중해의 정중앙에 위치한 더 할 수 없이 아름다운 섬이다. 이탈리아 반도와 연결되는 메시나는 중세 십자군과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기항지이기도 하다. 리들리 스콧의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 2005)에서도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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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로마의 휴일' 스틸컷


이탈리아는 로마다. 로마가 나오는 영화는 셀 수 없이 많다. 우선 로마제국에 관한 영화들은 모두 세트지만 다 로마를 무대로 한다. 우리가 옛 로마 관광을 할 수는 없으니 이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영화는 고증을 잘 하기 때문에 사실 가만히 앉아서 옛날 로마를 볼 수도 있는 셈이다.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 헵번의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 1953)에서는 1950년대의 로마를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영국의 가디언지가 꼽은 로마를 무대로 한 최고의 영화다.

내가 이탈리아 배경 영화들 중에 가장 좋아하는 마리사 토메이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온리 유’(Only You, 1994)도 로마를 잘 보여준다. 남쪽 나폴리와 그 외 이탈리아의 몇몇 지역도 그림과 같이 멋지게 잡아낸 영화다. 우디 알렌의 앙상블 캐스트 영화 ‘로마 위드 러브’(To Rome With Love, 2012)는 로마에서 펼쳐지는 네 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 2010)에서 이혼 후 새 인생을 펼치려는 줄리아 로버츠가 향하는 곳도 로마다. 키아누 리브스의 ‘존 윅: 리로드“(John Wick: Chapter 2, 2017)는 네오 느와르 다운 톤으로 로마를 잘 담고 있다.

젊은 시절의 맷 데이먼과 기네스 펠트로가 나오는 ‘리플리’(The Talented Mr. Ripley, 1999)도 로마와 나폴리를 포함한 이탈리아 곳곳이 무대다. 케이트 블란쳇, 주드 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도 볼 수 있는 앙상블 캐스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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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천사와 악마' 스틸컷


로마에서도 관광의 중심인 바티칸과 성 베드로 대성당은 톰 행크스의 ‘천사와 악마’(Angels and Demons, 2009)가 보여 준다. 관광객은 들어 갈 수 없는 바티칸 교황청의 도서관 내부와 교황 집무실(이건 세트다)도 볼 수 있다. 교황을 지키는 스위스 가드(Pontifical Swiss Guard)가 어떻게 일하는지에 대해서도 상세히 알 수 있다.

‘007 스펙터’(Spectre, 2015)에서 본드는 감히 바티칸에서 야간 자동차 추격전을 벌인다. 애쉬톤 마틴 DB10이다. ‘스펙터’는 이탈리아의 여러 시민단체들의 항의를 받아가며 로마에서 5주간이나 촬영했다. 움브리아 지방 출신인 모니카 벨루치가 본드 걸인데 51세로 가장 나이가 많았던 본드 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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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점퍼' 스틸컷


또 콜로세움을 관광객으로서는 들어 갈 수 없는 곳까지 보고 싶으면 ‘점퍼’(Jumper, 2008)를 보면 된다. 지금까지 나온 영화들 중에서 가장 많이 콜로세움을 보여준다. 주인공들이 콜로세움 안으로 불법 침입을 하기 때문이다. 이소룡의 ‘맹룡과강’(Return of the Dragon, 1972)도 거의 콜로세움 특집 영화다.

이 경기장은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했던 서기 70년에 생긴 전리품을 처분해서 베스파시우스 황제가 짓기 시작한 것이다. 10만의 유대인 포로들이 티볼리의 채석장에서 석재를 날랐다. 80년에 티투스 황제가 완공했는데 완공기념 행사에서 9천 마리의 동물이 희생되었다. 검투사들은 이 경기장에서 약 300년이 넘는 기간동안 싸웠다. 특히 영화에 나오는 지하 공간과 통로는 검투사들과 노예들의 영혼이 어른거릴 법 하다.

러셀 크로우의 ‘글라디에이터’(Gladiator, 2000)는 경기장의 완전한 모습을 복원했다. 말타에 약 백만 달러를 들여 콜로세움의 1/3 크기로 높이 16 미터짜리 모형을 몇 달이 걸려 지었다. 나머지는 디지털 기술로 처리한 것이다. 단역 배우를 2천명이나 썼는데 역시 디지털 기술로 스크린에는 관중이 3만5천명으로 나온다.

옛날 사람들은 이탈리아에 여행을 가기 전이나 가지 않고 이탈리아에 대해 알고 싶으면 예컨대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1816)을 읽었을 것이다. 괴테는 도합 1년 9개월을 이탈리아에서 보내고 이 책을 썼다.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기 전의 우리나라에서도 사정은 같았을 것이다. 우리는 여행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지금도 여행에 좋은 책이 동반자이기는 하다. 정보를 많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우리에게 여행지에 대한 느낌까지 준다. 영화도 미리 많이 보고, 좋은 책을 챙겨서 눈부신 이탈리아로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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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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