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와 '쉰들러 리스트'

스크린 뒤에는 뭐가 있을까(20)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입력 : 2018.02.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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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 /AFPBBNews=뉴스1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감독은 이른바 신 할리우드 시대'(New Hollywood Era)의 시조들 중 한 사람이다. 신 할리우드 시대는 196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신예 감독들이 스튜디오의 파워를 대체하면서 TV로 인해 쇠락하였던 영화의 위상을 높인 시기를 말한다. 우리가 아는 많은 감독들이 여기에 속한다. 시드니 폴락, 마틴 스코세지, 리들리 스콧 등이다.

스필버그는 할리우드의 대표 브랜드이기도 하다. 월스트리트의 한 애널리스트가 말하기를 할리우드 영화산업에는 브랜드가 디즈니와 스필버그 딱 두 개 밖에 없다. 또, 스필버그는 드림웍스의 공동창업자다. 하버드대학교 역사에서 졸업식 연사로 초청된 유일한 영화계 인사다(2016). 정장에 트레이드 마크인 흰색 운동화를 신고 나타났다. 연설은 약간 썰렁하고 별 재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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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영화 '죠스'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한 스티븐 스필버그 /AFPBBNews=뉴스1


스필버그는 16세 때 첫 SF 영화를 제작했다. 동네 극장에서 상영되었고 1달러의 수익을 남겼다고 한다. 할리우드의 대표 흥행감독이 첫 영화부터 흑자를 낸 셈이다. 스필버그는 역사 상 가장 흥행에 성공한 감독인데 대략 10조원 이상의 흥행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죠스'(Jaws, 1975), 'ET'(E.T. the Extra-Terrestrial, 1982), '쥬라기 공원'(Jurassic Park, 1993)을 찍는 사람이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 1993), '뮌헨'(Munich, 2005), '우주전쟁'(War of Worlds, 2005), '링컨'(Lincoln, 2012)을 찍는다. 참 믿기 어렵다. 소화하지 못할 장르가 없다.


스필버그는 인디아나 존스 프랜차이즈의 감독이기도 하다. 내가 대학교 3학년생일 때 조지 루카스가 만들어 낸 캐릭터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1편, '레이더스'(Raiders of the Lost Ark, 1981)가 개봉되었었다. 무한히 몰입했던 영화다. 채찍을 휘두르는 액션 캐릭터 고고학자 해리슨 포드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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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 /AFPBBNews=뉴스1


내가 스필버그 작품들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1972년 뮌헨 올림픽 테러사건을 다룬 '뮌헨'이다. 그러나 스필버그 하면 뭐니뭐니해도 '쉰들러 리스트'다. 1994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을 포함해서 7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흑백영화인데 흑백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것은 수십 년 만에 처음이었다.

이 영화는 스필버그의 오락, 흥행영화 감독 이미지를 완전히 벗겨 준 걸작이다. 비평가들은 디즈니가 만든 홀로코스트 영화 같은 것을 예상했다. 그러나 막상 개봉되니 예상과는 전혀 다른 진지하고 심리적으로 소재를 완벽하게 소화한 작품이 나타났다. 스필버그 자신도 이 영화가 자신의 영화제작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고 회고한다.

처음에 스필버그는 자신이 홀로코스트 영화를 만들만큼 성숙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이 작품을 로만 폴란스키 감독에게 넘기려고 했다. 폴란스키 감독은 홀로코스트 희생자다. 모친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도착 직후 사망했고 배다른 누이는 수용소 생활을 견딘 생존자다. 폴란스키의 부친은 폴란스키가 여섯 살 때 아들이 보는 앞에서 독일군들에게 수용소로 끌려갔다. 그러나 폴란스키는 스필버그의 제의를 고사했고, 대신 나중에 '피아니스트'(The Pianist, 2002)를 만들었다.

스필버그는 시드니 폴락 감독이나 마틴 스코세지 감독에게 이 영화의 제작을 넘길까도 고민하다가 결국은 본인이 짊어지기로 한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후에 신나치주의가 대두되고 심지어는 홀로코스트가 조작된 것이라는 말들이 슬슬 나오기 시작하자 결단을 내렸다. 다만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같은 해에 개봉된 '쥬라기 공원' 연출이 먼저다. 반대의 순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두 다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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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쉰들러 리스트' 스틸컷


나치당원 오스카 쉰들러(Oskar Schindler, 1908 – 1974)는 니암 리슨이다. 수용소장 아몬 괴트는 셰익스피어 연극배우로 유명한 영국배우 랄프 파인즈다. 수용소의 유대인들을 재미삼아 라이플로 사냥하던 전범 괴츠는 전쟁이 끝난 후 폴란드에서 재판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바로 옆에 만들어진 세트에서 71일간 촬영이 진행되었다. 단역배우도 연인원 3만 명이 동원되었다. 독일인 배우들과 이스라엘인 배우들은 아무런 문제없이 잘 조화를 이루어 작업했다. 나치 SS군인 역할을 한 독일인 배우들은 스필버그에게 조상의 수치스러운 과거를 청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스필버그는 영화를 독일어와 폴란드어로만 찍고 자막을 쓰려고 했다. 그러나 관객의 시선이 화면 아닌 자막에 집중되는 것을 우려해서 영어를 섞었다. 영화에 시간적 감각을 부여하지 않기 위해 스튜디오 측의 우려를 물리치고 흑백을 선택했다. 평생 컬러로만 모든 작업을 해 온 스탭들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세트와 의상 모두 새 콘셉트에 맞추어 준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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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쉰들러 리스트' 스틸컷


영화 중에 단 한 컷에만 컬러가 나온다. 이른바 '붉은 코트를 입은 소녀'(Girl in Red) 장면이다. 이 소녀는 네 살 남짓한 소녀가 눈앞에서 사살되는 것을 본 한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기억에 의해 재현된 것이다.

이 소녀 배우의 이름은 올리비아 다브롭스카다. 당시 세 살이었다. 다브롭스카는 스필버그에게 18세가 될 때까지 영화를 보지 않기로 약속했는데 약속을 어기고 열한살 때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약속을 어긴 것을 후회했다. 너무나 충격적인 영화였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모두가 자신에 대해 잘못된 관심을 갖게 되어서 인생의 일부가 파괴되었다고 생각하며 출연을 시킨 부모를 원망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영화에 출연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음악은 역시 존 윌리암스가 맡았다. 처음에는 자기보다 나은 작곡가가 맡아야 한다고 고사했으나 스필버그가 "맞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다 고인이요"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주제 선율은 폴란드계 유대인 바이얼리니스트 이작 펄만이 연주한다. 듣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이 선율은 '시네마 천국'의 주제와 함께 내가 가장 즐겨 연주하는 레퍼토리다.

영화는 스필버그의 대표작들 중 하나지만 비판도 없지 않았다. 열다섯에 아우슈비츠 지옥을 경험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케르테스(Imre Kertész)는 영화에 그려진 홀로코스트를 저속하다고 평가했고 영화가 지나치게 감상적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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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제 6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쉰들러 리스트'로 감독상과 작품상을 수상한 스티븐 스필버그가 배우 클린턴 이스트우드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어쨌거나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 영화로 첫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수상 발표를 했는데 스필버그의 이름을 부르기 전에 "Big Surprise"라고 덧붙였다. 작품상 수상은 해리슨 포드가 발표했고 스필버그는 간단한 소감에서 당시 세계에 35만명의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있으며 이들은 남은 여생동안 홀로코스트가 무엇인지를 알리는 데 자신들이 활용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니 모든 학교에서는 그들을 활용해서 교육을 부탁드린다고 말한다.

스필버그는 후일 '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 1998)로 두 번째 감독상을 받았다. '링컨'으로 세 번째 감독상을 받을 듯 했으나 성사되지는 못했다. '링컨'은 2013년에 개최된 85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최다인 12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작품상은 벤 애플릭의 '아르고'(Argo, 2012)에게, 감독상은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 2012)의 이안 감독에게 양보했다. 다만 다니엘 데이-루이스에게 역사적인 3회 남우주연상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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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제 7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2번째 감독상을 수상한 스티븐 스필버그 /AFPBBNews=뉴스1


'링컨'은 퓰리처상 수상작이고 오바마가 특히 좋아한 도리스 굿윈의 링컨 대통령 전기 '권력의 조건'(Team of Rivals, 2005)에 기초한 작품이다. 스필버그는 굿윈의 계획을 듣고는 이 책이 씌여지기도 전에 드림웍스를 통해 영화용 판권을 매입했다. '뮌헨'의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한 토니 쿠쉬너가 쓴 시나리오는 링컨 임기(생애) 마지막 네 달의 기간에 초점을 맞추어서 작성되었다.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데이-루이스와 샐리 필드, 새미 리 존스의 연기가 탁월했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도 90%이고 여러 차트에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래 스필버그 감독 작품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스필버그의 연출력도 연출력이고 쿠쉬너의 시나리오도 탁월하지만 데이-루이스의 링컨 연기가 이 영화의 생명이다. 음악은 존 윌리암스와 시카고 심포니가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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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 /AFPBBNews=뉴스1


비디오 게임 마니아이기도 한 스필버그의 영화 저변을 흐르는 한 가지 주제는 가족과 어린이에 대한 애정이다. 스필버그 자체의 관상이 천진난만이다. 부모와 자녀간의 긴장관계도 같이 다루어진다. 때때로 순진무구하기까지 한 경탄과 믿음의 메시지가 거의 모든 영화에 들어 있다. 'ET'(1982), '후크'(Hook, 1991)가 대표작이다. 스필버그의 영화는 따라서 전반적으로 낙관적이다.

스필버그는 가족이든 연인이든 친구든 그 사이가 한 번 비틀어지더라도 결국에는 다시 복원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그 영화 전부에 걸쳐서 지속적으로 반복한다. 그래서 그런지 스필버그는 한 번 같이 작업한 스탭들과 거의 평생을 같이 하는 감독이다. 존 윌리암스가 가장 오래된 친구이고 시나리오 작가 존 쿠쉬너를 포함해서 스필버그는 항상 같은 사람들과 일한다. 그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고 가족같이 생각한다고 한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할리우드의 지존이라고 할 만한 위치에 있는 지금에도 여전히 겸손하고 수줍은 성격이다. 아직도 성실하고 예의바른 우등생 같은 이미지다. 2018년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사회자 세스 마이어스가 '더 포스트'(The Post, 2017)가 상을 휩쓸 것 같은 농담을 하자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거장 스필버그이지만 촬영장에서 새 씬을 시작할 때마다 긴장이 된다고 한다. 믿기 어렵다. 그 긴장이 심해져서 패닉에 가까워질 때면 언제나 멋진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한다. 스필버그는 촬영장에서 리허설을 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모든 것은 HBO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스티븐 스필버그'(2017)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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