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스크린 뒤에는 뭐가 있을까(22)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입력 : 2018.02.10 10:00
  • 글자크기조절
image
/AFPBBNews=뉴스1


2007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사회를 했던 엘렌 드제너러스는 오프닝에서 몇몇 스타들을 소개하다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Leonardo DiCaprio·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이름을 부른다. 카메라가 디캐프리오를 비추자 "특별히 할 얘기가 있어서 부른 건 아니고 여성 팬들이 잠시 볼 수 있게 해주려고"라고 하고는 디캐프리오를 보면서 "아이 멋져!"라고 장난을 쳤다.

이 시상식에서는 상복이 별로 없던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디파티드'(The Departed, 2006)로 드디어 감독상을 받았는데 디캐프리오는 스코세이지와 작업을 가장 많이 한 배우다. '갱스 오브 뉴욕'(Gangs Of New York, 2002), '에비에이터'(The Aviator, 2004), '디파티드', '셔터 아일랜드'(Shutter Island, 2010),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The Wolf Of Wall Street, 2013), '오디션'(The Audition, 2015)이다. 그러나 스코세이지와 마찬가지로 상복이 별로 없었다.


특히 '더 울프'에서 아깝게 상을 놓쳤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후보에 선정되었지만 작품상은 '노예 12년'에게, 감독상은 '그래비티'(Gravity, 2013)의 알폰소 쿠아론에게, 남우주연상과 조연상은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Dallas Buyers Club, 2013)의 매튜 매커너히와 자레드 레토에게 각각 양보했다.

디캐프리오는 최고 수준의 연기를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다섯 번째로 고배를 마셨는데 경쟁이 너무 치열했고(운이 나빴다) 영화 자체가 60대 이상이 대세를 결정짓는 아카데미상에서는 너무 요란하고 불편한 것이었다. 'F-word'가 550회 정도 사용되는 신기록을 세웠다. 러닝타임 3시간 중에서 여성 누드와 마약 흡입 장면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도 문제였다.

image
1998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참석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 /AFPBBNews=뉴스1



디캐프리오의 이름이 리어나도인 이유는 어머니 뱃속에서 첫 킥을 했을 때 어머니가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박물관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관객에게 더 잘 어필할 수 있는 미국식 이름으로 바꿀 것을 권고 받기도 했으나 거부했다.

디캐프리오는 LA 태생이지만 부모와 조부모가 이탈리아-독일-러시아계다. 그래서 디캐프리오는 이탈리아어와 독일어를 한다. 부모가 한 살 때 헤어져서 어머니와 같이 살면서 성장했다. 사는 동네가 험해서 마약과 폭력이 난무했다. '할리우드의 게토'라고 불렸다. 어린 디캐프리오는 종종 건달들에게 얻어맞았다.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배우생활을 시작한 디캐프리오에게 할리우드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게 해 준 작품은 1993년 작 '길버트 그레이프'(What’s Eating Gilbert Grape)다. 길버트 그레이프는 조니 뎁이고 디캐프리오는 지체가 있는 그 동생 역을 했다. 감독은 원래 디캐프리오가 너무 잘생겨서 캐스팅을 망설였는데 말을 가장 잘 듣는 지원자라 디캐프리오로 결정했다. 영화는 성공했고 디캐프리오는 19세에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디캐프리오가 월드 스타가 된 것은 1997년 작 '타이타닉'(Titanic)에서다("I am the king of the world!"). 22세의 디캐프리오는 두번째로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 선정되었다. 아카데미상 후보에는 오르지 못했다. 수많은 팬들이 아카데미에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image
사진=영화 '갱스 오브 뉴욕' 스틸컷


디캐프리오는 내가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최고작으로 꼽는 서사 드라마 '갱스 오브 뉴욕'(Gangs Of New York, 2002)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이 영화는 19세기 중반 뉴욕의 파이브 포인츠 지역에서 일어났던 폭동을 소재로 한다.

아일랜드는 무려 800년 동안 영국의 압제 하에 있다가 독립된 나라다. 영국의 압제도 압제려니와 자연환경이 척박해서 거의 감자만 먹고 살았다. 19세기 중반에 감자 농사가 실패해서 대기근이 일어났고 그 여파로 많은 아일랜드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현재 미국 인구의 약 1할이 아일랜드계인데 보스턴과 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성장했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미국에 도착했을 무렵 미국은 독립과 남북전쟁 사이의 시기로 특히 도시지역은 안정되지 못해서 무법천지였다. 먼저 정착한 잉글랜드계는 노골적으로 아일랜드계를 미워했고 아일랜드인들은 나름대로 해방된 흑인들이 일자리를 뺏아갈까봐 겁내고 미워하는 상황이었다.

이 영화는 뉴욕에 먼저 도착해 자리를 잡고 있던 이민들과 새로 유입되기 시작했던 아일랜드 이민들과의 갈등이 두 갱단 사이의 대규모 폭력사태로 발전하는 것을 생생하게 그린다. 디캐프리오는 아일랜드 이민 지도자 리암 니슨의 아들인데 아버지를 죽인 다니엘 데이-루이스에게 복수극을 벌인다. 그러나 폭동은 군에 의해 진압된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

image
사진=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 스틸컷


내게는 1990년대 시에라리온 내전을 배경으로 한 '블러드 다이아몬드'(Blood Diamond, 2006)와 디캐프리오가 CIA 요원으로 나오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바디 오브 라이즈'(Body of Lies, 2008)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디캐프리오 특유의 '감성적이거나, 한 성격하는 주인공이 고생하는' 영화들이다.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내전과 다이아몬드산업의 관계가 소재다. 실제로 2000년에 다이아몬드 원석에 원산지 표시를 하기로 한 이른바 '킴벌리 프로세스'가 합의되었는데(후일 흐지부지되었다) 그 배경 스토리를 들려준다. 디캐프리오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가 되었다. 촬영 때는 모잠비크의 한 마을에서 스물 네명의 고아들과 같이 작업했다. 그 아이들과 교감하면서 디캐프리오는 큰 감동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모잠비크 사람들이 열악한 환경에 살면서도 영혼이 밝은 것에 놀랐다고 전한다.

image
2016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주상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AFPBBNews=뉴스1


디캐프리오는 이냐리투 감독의 2015년 작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The Revenant)로 마침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는다. 여섯 번째로 후보에 올랐던 때다. 스코세이지 감독이 '디파티드'로 감독상을 받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전 할리우드가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었다.

절친 톰 하디와 같이 한 '레버넌트'는 배신당하고 버려진 한 사람이 자연이 내리는 역경과 싸우는 내용이다. '복수는 나의 것'이 아니라 하늘이 알아서 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도 전한다.

이 영화는 원래 박찬욱 감독이 사뮤엘 잭슨과 함께 하려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이냐리투의 프로젝트가 되었다. 눈이 있는 곳을 찾아서 아르헨티나의 끝자락까지 촬영을 다녀오느라 작업이 지연되기도 했다. 촬영 여건이 열악해서 배우들이 무진 고생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디캐프리오도 얼음물에 들어갔다 나오는 등 생애 가장 힘든 촬영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디캐프리오 영화들 중에서도 주인공이 가장 고생한 영화다.

image
/AFPBBNews=뉴스1


1998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해서 지구 에코시스템 보호 활동에 나선 환경운동가 디캐프리오는 수상 소감에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강조하면서 자신이 아카데미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듯이 우리가 지구와 환경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기 드문 명연설이었다. 디캐프리오는 2007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도 앨 고어 전 부통령과 함께 무대에 나와서 시상식이 처음으로 환경 친화적인 방식으로 기획되고 제작되고 진행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디캐프리오는 2016년에 프란체스코 교황과 만난 자리에서 자선사업에 기부하면서 환경문제를 논의한 적이 있다. 이 만남의 영향으로 며칠 후에 교황청은 교황이 영화에 출연한다고 발표했다. 아르헨티나 영화 '비욘드 더 선'(Beyond the Sun, 2017)이다. 물론 카메오이고 교황 자신의 역할이다. 분량은 6분이다. 덕분에 이 영화는 가장 본격적으로 바티칸에서 촬영한 영화가 되었다. 어린 아이들이 신앙을 찾는 내용인데 수익은 장애아동들을 위해 전액 기부되었다.

2010년에 디캐프리오는 국제호랑이보호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러시아로 향하다가 비행기 엔진 화재로 JFK로 회항했고 다시 탑승한 비행기는 강풍으로 연료소모를 많이해 헬싱키에 비상착륙하는 일을 겪었다. 그래도 결국에는 상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는데 행사 호스트였던 푸틴은 "변변치 못한 사람이었다면 안 좋은 조짐이라고 여행을 포기했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디캐프리오를 치하했다. 이 행사에서 디캐프리오는 아시아 호랑이 보존을 위해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

image
/AFPBBNews=뉴스1


디캐프리오는 다시 스코세이지 감독과 힘을 합쳐 테오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전기 영화인 '루즈벨트'(Roosevelt)로 팬들을 찾을 예정이다. '에비에이터'에서 항공산업의 거부 하워드 휴즈 역,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제이 에드가'(J. Edgar, 2011)에서 FBI 국장 에드가 후버 역을 한 이후 역사적 인물에 대한 첫 전기 영화다.

영화배우들은 우리를 대신해서 여러 인생을 살아주고 그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우리 모두는 한 번에 한 인생을 살 수 있을 뿐이지만 배우들은 여러 사람의 인생을 살아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겪는 기쁨과 보람, 상실감과 혼돈을 우리는 멀리서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 우리 각자의 인생과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게 된다.

디캐프리오도 연기란 다른 사람의 캐릭터를 체화하면서 자기 자신을 잊는 작업이라고 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장고: 분노의 추적자'(Django Unchained, 2012)의 농장주 캘빈 캔디를 예로 들었다. 자기가 연기한 캐릭터들 중에 실제의 자신과는 아무런 접점이 없는 가장 끔찍한 인간상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배우들이 주어진 캐릭터를 잘 소화하고 명연기를 보일 때 찬사를 보내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 각자가 자신의 캐릭터를 쉽지 않게 끌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자기 인생에서의 역할과 자신의 캐릭터가 진짜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안다.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무대 조건에서 내 주위의 캐릭터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언제나 자신의 모습을 100% 드러낼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우리 인생이 영화 속이고 우리는 각자가 스스로 만든 각본을 꿈속에서 다시 꿈꾸듯이 연기하는 배우일지도 모르겠다('인셉션', Inception, 2010).

image
/AFPBBNews=뉴스1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