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떨려요" 포수가 된 박건우 & 백혈병 어린이 '감동 시구'

잠실=김우종 기자 / 입력 : 2018.05.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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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포를 한 박건우도, 구심을 본 나광남 심판도, 안방마님 양의지도 모두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두산 베어스 제공





"아직도 떨려요."


목소리는 작았지만 또박또박 차분하게 말했다. 두산 베어스 외야수 박건우(28)를 만나는 게 소원이었다. 마침내 그 꿈을 이룬 소년은 "아직까지 떨려요. 되게 좋아요"라며 수줍게 웃었다.

13일 잠실구장. 넥센-두산전. 특별한 손님이 시구자로 나섰다.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과 싸우고 있는 김헌덕(12·남) 환우였다.

플레이볼을 앞두고 김헌덕 군이 두산 베어스 마스코트 철웅이의 손을 잡고 마운드를 향했다. 이윽고 공이 김헌덕 군에게 넘겨졌다. 김헌덕 군의 공을 받을 자리에는 포수가 아닌 야수가 있었다. 바로 김헌덕 군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 박건우였다.


김헌덕 군은 지난해 가벼운 감기인 줄 알았던 병이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이후 병원서 항암 치료를 꾸준히 받았지만 계속되는 항암 치료로 인해 외출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그렇게 힘들게 투병 중인 김헌덕 군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선수. 두산 박건우였다. 두산 팬인 그가 박건우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공격과 수비가 모두 빼어나기 때문"이라고.

특히 2016년 박건우가 이승엽의 타구를 슬라이딩 캐치로 연결하는 모습을 보고 팬심이 더욱 커졌다고 한다. 또 요즘도 가끔 지치고 힘이 들면 인터넷으로 박건우의 수비 영상을 보면서 힘을 얻는다고 한다.

그런 김헌덕 군의 소원은 '박건우를 만나 시구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김헌덕 군 어머니가 '메이크 어 위시'(Make-A-WISH) 재단을 통해 사연을 신청했고, 마침내 둘의 만남이 성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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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덕 군(왼쪽)과 박건우 /사진=두산 베어스 제공





시구를 하려는 순간. 김헌덕 군을 향해 포수 쪽의 있던 누군가가 "좀 더 앞으로 와"라고 했다. 이어 이 소년 투수는 와인드업 후 공을 던졌다. 공은 바운드 없이 곧바로 포수 자리에 앉아있는 박건우에게 향했다.

노바운드로 던진 공을 잡아낸 박건우는 이내 일어선 뒤 헌덕 군을 향해 두 팔을 벌려 보였다. 그런 그를 향해 김헌덕 군이 아기처럼 뛰어간 뒤 품속에 안겼다. 근처에 있는 박건우도, 나광남 구심도, 양의지도, 상대 타자 이정후도 행복한 듯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박건우는 이날 김헌덕 군에게 시구를 지도하는 등 시간을 함께 보냈다. 일반적으로 누군가 시구할 때 외야수들은 외야에서 캐치볼을 하며 경기 준비를 한다. 하지만 박건우는 직접 포수 자리에서 공을 받은 뒤 외야로 나가겠다고 약속했다고.

당초 두산 구단은 시간을 조금 앞당겨 최대한 경기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박건우는 "다른 선수들이 경기를 준비하는데 조금이라도 방해가 될 수 있다"며 "내가 조금 더 뛰면 되니까 보통 때와 마찬가지로 시구를 준비해달라"고 전했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박건우는 김헌덕 군의 공을 받은 뒤 얼마 후 힘차게 외야로 뛰어갔다.

박건우는 뜻깊은 시포를 앞두고 "제가 힘이 될 수 있다면 좋은 건데, 사실 제가 아파 보지를 않아서 그것에 대해 언급하기가 조심스럽다"며 입을 열었다. 이어 "만약 제가 경험해 보고 아파 봤다면 그것에 대해 '아, 이렇게 해서 뭐가 좋으니 이겨내자'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텐데…. '이겨내자. 할 수 있다. 이번 행사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이런 말을 하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미안한 감정이 든다"고 했다.

박건우가 '미안해'라고 한 이유 "저는 건강한데, 그 어린 나이에 아프고 하니까,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또 괜히 야구장에 모처럼 나왔다가 조금이라도 몸이 안 좋아지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백혈병이 나을 수 있는 병이냐'하는 것도 여기저기에 물어봤어요. 어떻게 해야 좋은 거냐. 골수 기증자가 나타나면 나을 수 있는 병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뜻깊은 자리에 앞서 지난 12일 잠실구장에서 만난 박건우는 과거를 회상했다.

"솔직히 좀 많이 힘들 때…. 지금이야 관중들께서 많이 환호를 해주시지만, 예전에 군대에 가 있고 2군에 있을 때 도시락도 싸주시고, 멀리서 응원을 와주신 팬들이 계셨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사람들이 원하는 게 제가 커가는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제가 컸을 때. 야구가 잘 되고 있을 때. 조금이나마 팬들한테 보답할 수 있는 게 없나를 찾아봤어요. 겨울에는 일일 호프를 차려 팬들과 함께하는데 되게 좋더라고요. 겨울에는 또 (김)현수 형이랑 성심야구학교에 가서 아이들과 야구를 해요. 저희와 경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시구를 마친 뒤 김헌덕 군과 만날 수 있었다. 김헌덕 군은 "굉장히 좋았고 마운드에 섰을 때 떨렸다"고 말했다.

김헌덕 군이 TV가 아닌 실제로 본 박건우는 어떠했을까. 김헌덕 군은 "직접 보니까 더욱 멋졌다"며 웃었다. 경기 시작을 앞두고 박건우는 김헌덕 군을 만나 사인도 해주고 오재일, 최주환 등 다른 두산 선수들도 소개 시켜줬다. 사진도 함께 찍었고, 배트도 선물했다.

김헌덕 군은 "여러 선수가 사인을 해줬고 시구 연습 후 배트도 휘둘러 봤다"라고 밝혔다. 김헌덕 군에게 '박건우를 직접 보니 어떠한가'라고 묻자 지체없이 "멋있다"란 답이 돌아왔다.

이번 시구는 김헌덕 군의 어머니가 아들의 사연을 '메이크 어 위시' 재단에 전하면서 이뤄졌다. 김헌덕 군 어머니는 "아들이 야구를 좋아하는 건 알았지만 박건우를 그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다"며 "가족끼리 야구장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렇게 좋아하는 선수를 만나게 해주시고, 선물도 주고, 시구까지 할 수 있게 해줘 고맙다"고 이야기했다.

김헌덕 군 아버지는 원래부터 두산 열혈 팬이었다. 아버지는 "TV로 중계는 계속 보는데, 잠실야구장에 온 건 이번이 두 번째"라며 "이렇게 야구장에 오니 기분이 좋다. 집에서도 응원을 많이 한다"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김헌덕 군은 밖에서 오랫동안 돌아다닐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다. 때로는 계속 앉아있는 것도 힘든 상황이라고 한다. 그래도 이날 김헌덕 군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잠시 아픈 것도 잊고 야구장을 찾았다. 그런 그에게 박건우는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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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덕 군과 포옹을 하고 있는 박건우 /사진=두산 베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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