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제 24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휩쓸었던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감독 김초희)가 약 5개월 만에 스크린을 찾는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CGV아트하우스상, KBS독립영화상 등 3관왕에 올랐고,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 등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3월 봄바람과 함께 찾아온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많은 영화들이 개봉을 미뤘다. '찬실이가 복도 많지' 같은 독립 영화의 경우, 개봉 영화가 몰리면 관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이게 고민 끝에 3월 5일 예정대로 개봉을 하게 됐다. 극장에 가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 영화는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영화다.
코로나19 사태 속, 첫 장편 영화를 관객 앞에 내 놓게 된 김초희 감독을 직접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40대 영화 프로듀서. 미혼에 남자친구도 없고, 있는 복이라고는 오로지 일복뿐인 주인공 찬실이는 김초희 감독과 닮아 있었다. 오랫동안 홍상수 감독 영화의 프로듀서로 함께 했던 김초희 감독은 '이것 아니면 안된다'는 마음으로 시나리오를 썼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찬실이는 복도 많지'다.
첫 장편 영화 개봉을 앞둔 기분이 어떤가.
▶어떤 날은 기쁘고, 어떤 날은 설레고 어떤날은 걱정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사람들이 좋아할까' 이런 생각만 든다. 여러감정이 섞여 하나로 표현하기 어렵다. 빨리 뚜껑이 열리고 개봉했으면 쉽다. 매를 맞아도, 성과가 있어도 얼른 나와서 받아들이는게 나을 것 같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공개 된 후 호평 받았다. 개봉 버전과 달라진게 있나.
▶ 부산영화제 이후 편집본 변한 것은 없다. 후반 작업으로 퀄리티 높이는 작업만 했다.

영화 주인공이자, 제목인 찬실이라는 이름은 어떤 뜻인가.
▶ 빛날 찬에 열매 실. 빛나는 열매다. 제가 23살에 영화 감독 꿈꿨고 올해 46살의 나이에 데뷔했다. 제가 만약 23살에 점을 보러 갔는데, 그때 점쟁이가 '너 46살에 영화 감독 된다'라고 했으면 제가 했을까? 안했을 것이다. 결국 꿈이라는 것은 앞일을 모르면서 자기가 열망하는 것을 위해 달려가는 것이다. 그렇게 오래 달리다가, 한 4년 전 쯤 일을 쉬면서 제가 살아온 인생에 대해서 깊게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오래 영화 일을 했지만 뭔가 마음에 와닿는 결실을 맺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 소망의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이 영화 시나리오를 쓸 때는 투자를 받아서 쓰는 것이 아니었다. 시나리오 써서 영화를 만들고, 그것을 관객이 보는 자체가 제 꿈의 결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잘되고 유명 감독이 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의 결실. 사실 예술하는 사람들은 다 그렇다. 경제적 보장이 안되고 무수한 실패와 소수의 성공이 있다. 그런 사람에게도 이 영화가 결실이 되길 바랐다. 나에게도 '찬실', 관객에게도 '찬실'인 그런 영화이길 바랐다.
영화 속 찬실이가, 실제 영화 프로듀서로 일했던 김초희 감독 본인의 모습과 닮은 것 같다. 실제 사투리를 쓰거나 하는 말투도 비슷하고.
▶ 저는 찬실이가 저랑 비슷하다고 생각 안한다. 물론 저도 찬실이처럼 살고 싶고, 성격적인 면에서는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주인공을 영화 프로듀서로 잡은 이유는, 제가 가장 잘 아는 이야기라서 그랬다. 완전히 다른 직업군의 인물을 만들려면 취재도 많이 하고 고민도 많이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사건 중심의 영화가 아니라 캐릭터의 힘으로 밀고 나가는 영화기 때문에 저와 가장 비슷한 조건의 인물이면 정보가 많을것 같았다. 그것이 위험하기도 하지만 그 캐릭터를 잘 알기 때문에 객관성을 확보하는 이점도 분명히 있다. 아는 인물이고 아는 감정이기 때문에 감정이 쏟아진다. 보편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김초희 감독에게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첫 작품인 것처럼 찬실이 역할의 강말금도 첫 장편 영화다. 어떻게 작업하게 됐나.
▶ 영화 촬영 한달 반 전에 강말금 배우가 출연했던 단편을 보고 캐스팅 했다. 당시 캐스팅 하고 3주 내내 강말금 배우의 연극 스케줄이 있었다. 만나서 이야기 나눌 시간이 많이 없었고, 촬영 3주 전에 리딩 하면서 만나 연기에 대해 이야기 했다. 처음에 촬영 들어갔을 때는, 이 인물이 좌절에 빠진 상황이기 때문에 좀 어두운 부분이 보였다. 그래서 좀 더 가볍게 연기해 달라고 했고, 귀엽게 사랑스럽게 해 달라는 말을 많이 했다. 이 영화는 원톱 주연의 영화라 배우가 호감이 없거나 매력이 없으면 끝까지 보기 힘들다. 제 디렉션을 잘 따라 와줬다.
찬실이가 부산 사투리를 쓴다. 원래 사투리 쓰는 인물로 시나리오를 썼다.
▶ 시나리오에는 사투리가 아니었다. 처음에 강말금 배우를 캐스팅 할 때는 서울말을 했다. 그런데 맥주 한 잔 하면서 이야기 했더니 부산 출신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제가 시나리오를 사투리로 바꾸겠다고 했다. 제가 부산 사람이라서 사투리를 한 것은 아니고 아무래도 사투리가 주는 특유의 친근함과 감정이 있다. 그런 것들이 인물에 대한 장벽을 낮춘다고 생각했다. 배우 본인에게도 아무래도 사투리가 더 편할 것 같았다.

윤여정 배우, 윤승아 김영민 배우는 어떻게 캐스팅 했나.
▶ 윤여정 선생님은 사실 친분 때문에 출연해 주셨다. 사실 그러기 쉽지 않다. 시나리오도 보고, 할 수 있는 역할인지 따져야 하고 출연료 문제도 있다. 그런데 그런거 없이 그냥 저를 도와주시려고 저를 믿고 출연해 주셨다. 너무 감사하다. 제가 큰 은혜를 입었다. 김영민 배우는 '라디오스타'에서 중화권 배우 닮았다고 하는 것을 봤다. 그 분 얼굴 속에 많은 홍콩 배우의 얼굴이 있더라. 그래서 김영민 배우 소속사로 시나리오를 보냈고, 전혀 친분이 없는데도 출연하겠다고 하셨다. 연락받고 너무 기뻤다. 직접 만나니 더 좋았고 즐겁게 작업했다. 윤승아 배우는 같이 했던 프로듀서의 추천으로 함께 하게 됐다. 일단 윤승아 배우는 너무 예쁘다. 여배우 역할은 누가 봐도 여배우 같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딱이다. 마침 제가 만든 단편 영화를 보고 호감을 가졌다고 하더라. 그래서 만나고 함께 작업했다.
영화가 참 착하고 따뜻하다
▶ 이 영화 시나리오를 쓸 때 사실 남 생각을 별로 안했다. 보통 관객들을 보통 염두에 두고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쓰는데, 그때 저의 상태는 저 자신에게 몰입한 상황이었다. 제가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가, 제가 보고 싶은 영화 또 하고 싶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 식의 글쓰기라야 저에게 의미가 있었다. 시나리오 쓰고 고치는데 한 1년 걸렸다. 각기 다른 5개 시나리오를 준비했다가 촬영 두 달 전에 제가 가지고 있던 제작비에 맞춰서 하나를 찍었다. 독립영화가 사실 만들어지기 쉽지 않다. 운이 좋았다. 이 영화를 완성시켰다는 것은 저 혼자만의 힘은 아니고 스태프들의 노력과 고충이 있었다. 이 영화가 제 복이다.
23살에 영화일을 시작해서 46살에 감독이 되기까지 오래 걸렸다. 홍상수 감독의 프로듀서로 오래 일했는데.
▶ 저는 어렸을 때부터 방황을 많이 했다. 가정사로 방황을 많이 해서 힘든 시기를 보냈는데, 영화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게 23살이었다. 영화 하겠다고 마음 먹은 후에는 순정을 지켰다. 영화를 연출 하고 싶은 열망은 컸는데 좀 더 배워야 된다고 생각해서 유학을 갔다. 지금 생각하면 유보다. 프랑스 파리에서 6년 반 영화 이론을 공부했다. 그렇게 영화 감독이 되지도 못하고 영화 언저리에서 10년을 돌았다. 그리고 그 후 영화 현장일을 처음 시작했는데 너무 재밌더라. 제가 감독이 아니어도 될 만큼 그냥 그 현장이 좋았다. 제가 영화도 좋아하고 사람도 좋아하더라.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좋은 점이 공동작업이라는 것이다. 스태프로서도 저는 충분히 의미 있고 가치있다고 생각했다. 감독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지만, 일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서 행복하게 일했다. 홍상수 감독님 영화 프로듀서로 7년 동안 10편 정도 했다. 그런데 일에 총량이 있더라. 너무 달려오니까 쉬고 싶었고, 그렇게 쉬면서 '찬실이는 복도 많지' 시나리오도 쓰게 됐다.

이 영화가 말하는 '꼭 뭔가 이루거나 성공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메시지가 와닿는다. 아니라고 하지만, 영화 속 찬실이와 김초희 감독이 굉장히 닮아있다.
▶ 기쁨에 여러가지가 있다. 뭔가를 이루는게 큰 기쁨이지만, 그 성취의 기쁨은 잠깐이다. 저도 부산국제영화제 상 탔을 때 좋았지만 그것이 지속되지는 않더라. 성취는 금방 지나가지만 성장의 기쁨은 지속 된다. 성장에는 고통이 있고 행복과 불행은 맞물린다. 그게 한 단어로 결국 삶 아닌가. 저도 나이 40이 넘어서 찬실이처럼 인생을 조금 알게 됐다. 그것이 저에게 굉장히 큰 복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가 비록 늦은 나이에 데뷔했지만 그것이 저의 복이고, 저를 많이 도와준 수 많은 얼굴이 떠 오른다. 저도 찬실이처럼 복이 많은 것 같다. 그건 닮았다. 하하.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