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억 잃고도 몰랐다니' 오타니는 '야구 바보'였다, '역대급 사기꾼' 통역사에 당했다... 현지 언론도 "거짓말하는 슈퍼스타"→"희생자"

안호근 기자 / 입력 : 2024.04.1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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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니 쇼헤이. /AFPBBNews=뉴스1
오타니 쇼헤이(30·LA 다저스)를 향한 의심 어린 시선은 완전히 사라졌다. 오타니는 '야구 밖에 모르는 바보'였고 억울한 피해자였다는 게 밝혀졌다.

메이저리그(MLB) 공식 홈페이지 MLB닷컴은 13일(한국시간) "오타니의 통역가였던 미즈하라 잇페이가 도박 빚을 갚기 위해 오타니의 은행 계좌에서 1600만 달러(220억원) 이상을 불법적으로 이체한 사실이 연방 조사에서 밝혀진 후 은행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고 밝혔다.


당초 제 아무리 미즈하라를 믿었다고 한들 자신의 계좌에서 450만 달러(62억원)가 빠져나가는 걸 눈치 채지 못했다는 주장에 대해 "역겹다"고까지 표현했던 현지 매체들도 검찰 측의 발표 이후 입장을 번복하고 있는 분위기다.

캘리포니아 중부 지방연방 검사인 마틴 에스트라다는 12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형사 고발에 대해 자세한 설명에 나섰다. 그에 따르면 미즈하라는 수일 내에 LA 시내 미국 지방연방 법원에 출두할 전망이다. 미즈하라가 저지른 은행범죄는 최대 30년형까지 선고받을 수 있는 중범죄다.

고소장에 제출된 진술서에 따르면 미즈하라는 2021년 11월부터 2024년 1월 사이 오타니의 예금 계좌에서 1600만 달러 이상의 돈을 무단 이체했다. 이는 미즈하라의 도박빚을 갚기 위해 사용됐던 것으로 알려진다.


에스트라다는 "이 점을 강조하고 싶다. 오타니는 이번 사건의 피해자로 간주된다"며 "오타니가 자신의 계좌에서 도박 관련 관계자에게 1600만 달러가 넘는 이체를 승인했다는 증거는 없었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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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오타니 쇼헤이(오른쪽)와 미즈하라 잇페이. /AFPBBNews=뉴스1
MLB는 성명서에서 "우리는 이 혐의를 알고 있다. 철저한 조사 끝에 은행 사기 혐의로 미즈하라를 상대로 검찰이 기소를 했다. 조사 결과 오타니는 사기 피해자로 간주되며 그가 불법 도박 업자의 도박을 승인했다는 증거도 없다"며 "다만 조사 결과 미즈하라는 야구에 대한 도박을 한 사실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오늘 공개된 정보와 이미 수집한 기타 정보를 고려해 추가 조사가 필요한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형사 소송이 해결될 때까지 기다릴 것"이라고 전했다.

오타니와 미즈하라의 인연은 일본프로야구(NPB)에서 뛰던 시절부터 10년 이상 이어지고 있었다. 오타니가 미국 진출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미즈하라가 오타니의 매니저 역할까지 도맡으며 관계가 깊어졌는데 영어에 능통하지 못했던 오타니가 미즈하라를 너무 믿은 게 화근이 됐다.

2018년 오타니가 LA 에인절스로 이적하면서 애리조나의 한 은행에서 계좌 개설을 할 당시에도 옆에는 미즈하라가 있었다. 오타니의 급여는 그 계좌에 입금됐지만 미즈하라에게 부여된 권한은 없었다. 에스트라다 검사는 "'오타니의 사실상 관리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 미즈하라에게 자신의 금융 계좌에 대한 통제권을 결코 주지 않았다"고 진술서에 밝혔다.

그러나 계좌 개설 과정부터 함께 했던 미즈하라는 거짓말에 나섰다. 에스트라다는 "미즈하라는 오타니의 대리인, 회계사, 재정 고문을 포함한 나머지 오타니 전문 고문들에게 계좌에 대한 접근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거부했으며 오타니가 해당 계정을 비공개로 유지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엄청난 은행 사기의 발단이었다. 미즈하라는 2021년 9월부터 불법 도박을 시작했고 진술서에 따르면 "(미즈하라가) 상당한 금액의 돈을 잃기 시작했다"고 적혀 있다. 이를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었던 미즈하라는 이 과정에서 오타니 은행 계좌에 대한 이메일 주소와 연락처 정보를 자신의 것으로 변경했다. 자신의 어디에 송금을 하더라도 오타니가 즉각적으로 알 수 없게끔 하려는 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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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하라 잇페이가 지난달 16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오타니 쇼헤이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이를 통해 미즈하라는 지난 1월까지 총 4070만 달러(557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잃었다. 베팅을 통해 1억 4200만 달러(1940억원)를 땄으나 1억 8300만 달러(2500억원)를 잃었다. 건당 베팅 금액은 1만 2800달러(1700만원)에 달했고 그 횟수는 1만 9000회에 달했는데, 이는 하루 평균 25회 수준이었다. 도박 중독으로 헤어 나올 수 없을 정도의 상태였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미즈하라는 결정적인 거짓말을 했다. 오타니의 계좌에 대한 자신의 권리가 없기 때문에 전화를 통해 송금을 했는데 조사 과정에서 입수한 전화 통화 기록에 따르면 미즈하라가 은행 직원과 여러 차례 통화하면서 자신을 오타니라고 말하며 고액 송금을 승인토록 설득했다.

지난달 중순 서울시리즈 당시 다저스가 미즈하라를 해고하면서 이 문제는 불거지기 시작했다. 당초 미즈하라는 450만 달러에 해당하는 자신의 빚을 오타니가 갚아줬다고 했는데 오타니가 이를 반박하며 국면이 전환됐다. 결국 미즈하라도 앞선 주장이 거짓이었음을 인정했고 자신의 도박 빚을 갚기 위해 불법 송금을 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당초 밝혔던 금액의 3배 이상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이날 만천하에 공개된 것이다.

이를 두고 일부 현지 언론에서는 오타니가 관여돼 있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미국 LA 타임스는 "아직도 오타니 쇼헤이를 믿는가. 아직 잘 모르겠다"며 "미즈하라가 오타니 본인이나 회계사, 은행 직원, 혹은 어느 누구라도 알아채지 못하면 450만 달러라는 돈을 훔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역겹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날 입장을 번복했다. "오타니의 전설은 도박꾼이 아니라 스타플레이어로 이어진다. 이제 오타니를 믿기로 했다"며 앞선 자신들의 기사에 대해서도 "미즈하라의 도박만큼이나 가치가 없다. 오타니는 거짓말을 하는 슈퍼스타가 아닌, 희생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고 입장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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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하라 잇페이가 해고된 뒤 오타니 쇼헤이(왼쪽)은 새로운 통역 윌리 아이어토와 함께 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매체의 입장에서도 눈여겨볼 것이 있다. 오타니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을 정도로 큰 금액을 사기 당한 결정적인 이유가 언어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매체는 "오타니의 에이전트가 이를 허락한 것일까. 역사상 가장 무능하고 가치 없는 에이전트를 데리고 있다"며 "(에이전트에) 소속된 어느 누구도 일본어를 할 줄 모른다고 한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오타니를 책임지는 사람 중 아무도 같은 언어(일본어)를 쓰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즉 영어에 능통하지 못한 오타니에게 미즈하라는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존재였고, 에이전트나 은행, 회계사 등과 소통할 때도 미즈하라의 역할이 지대했을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그렇기에 오타니도 더 미즈하라를 의지했고 결국 자신의 마음대로 오타니의 계좌에서 거액을 송금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에스트라다 검사는 "불법 베팅과 도박 업자에 대한 송금에 대해선 오타니와 미즈하라 사이 어떠한 논의도 없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게다가 오타니가 송금을 승인했다면 미즈하라가 은행과 통화에서 오타니를 사칭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미즈하라는 베팅에서 금액을 딸 경우 자신의 계좌로 입금되도록 설정해뒀다. 또 에스트라다는 오타니가 불법 도박 업자와 나눈 문자 메시지에서 미즈하라가 오타니로부터 돈을 훔쳤다고 인정했다고 전했다.

에스트라다는 "우리 조사에 따르면 미즈하라는 오타니와 신뢰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오타니의 재정에 특별한 접근권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며 "미즈하라는 오타니를 이용하기 위해 그 신뢰의 지위를 이용하고 남용했다. 미즈하라는 오타니의 은행 계좌에서 16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약탈하기 위해 그 신뢰 지위를 이용하고 남용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오타니는 자신을 둘러싼 의심의 시선을 완전히 거둬낼 수 있게 됐다. 다만 쓰린 속을 달랠 길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전적으로 믿고 의지했던 미즈하라가 희대의 사기꾼으로 밝혀졌고 220억원, 어쩌면 그 이상의 돈에 대해서도 보존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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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에인절스 시절부터 오타니 쇼헤이(왼쪽)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았던 미즈하라 잇페이. /AFPBBNews=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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