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선 볼멘소리, '세계 최초' ABS 벌써 삐그덕... '자화자찬' 대신 이해·설득 먼저다

창원=양정웅 기자 / 입력 : 2024.04.17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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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들이 14일 대구 삼성-NC전 3회말 2사 2루에서 나온 ABS 관련 NC 측의 항의에 모여 논의하고 있다.
ABS(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Automatic Ball-Strike System)와 관련해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성공률로 자화자찬할 것이 아니라 현장의 의견을 청취해야 할 상황이 됐다.

올 시즌 KBO 리그에 도입된 ABS, 이른바 '로봇 심판'은 세계 1군 야구리그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일이었다. 그동안 심판의 판단 영역이었던 스트라이크/볼 판정을 기계에 맡긴 것이다. KBO는 "리그 공정성 강화 및 팬들에게 혁신적으로 관전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장기적인 시각에서 ABS 도입을 준비해 왔다"고 밝혔다.


논란이 많았던 피치클락과는 달리 ABS는 비교적 호평을 얻었다. 기계가 확실한 기준을 통해 판정을 내리기 때문에 '감정 싸움'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 투구로 들어왔는데 스트라이크 판정이 나오는 등 기존에는 겪지 못했던 일에 대해서 타자들이 황당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나오기도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판정에 수긍하고 돌아선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는 정확도에 대해 긍정적으로 자평했다. 허구연 KBO 총재는 지난 13일 열린 '제2회 SA 베이스볼5 아시아컵' 개회식에 참석해 취재진과 만나 "지금까지 ABS의 성공률은 99.9%다. 그런 면에서는 별 문제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장의 불만도 있었다. 구장이나 날씨 등에 따라 ABS의 스트라이크존이 달라진다는 반응이 선수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한화 류현진(37)은 지난달 17일 시범경기 등판 후 "구장마다 스트라이크존이 좀 다른 것 같다. 그걸 선수들이 빨리 캐치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류현진은 "저번(3월 12일 대전 경기)보다 오늘(17일 사직 경기) 높은 존의 스트라이크가 많이 나왔다"고 말했다. 한 야구계 관계자는 스타뉴스에 "KBO에서는 구장마다 존이 같다고 하지만, 몇몇 구장에서 다르게 나오고 있다"며 "몇 구단은 KBO에 항의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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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김태형 감독(가운데)이 13일 고척 키움전에서 5회 초 심판진에 어필하고 있다.
또한 김태형(57) 롯데 감독은 지난 14일 고척 키움전을 앞두고 "(ABS에 대해) 현장에서는 불만이 많다. 어떤 기준에서 되는 건지 모르겠다"고 작심발언을 던졌다. 김 감독은 전날 경기에서 1-4로 뒤지던 5회 초 무사 1루 전준우 타석에서 3구째 시속 126km의 슬라이더가 스트라이크 판정이 나오자 그라운드로 나와 항의에 나섰다.

김 감독은 "볼이 스트라이크가 되면 투수들이 좋아할 수도 있다"면서도 "심판들도 인정을 하고 터무니 없는 걸로 경기력에 지장이 있으면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심판들이 (스트라이크를) 판단하는 건 양쪽 비교해서 어떤 건 아깝다 이 정도지 터무니 없는 걸로 하는 건 아니잖나"며 "로봇이 판단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감독의 발언은 개인적인 불만으로 치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같은 날 결국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같은 날, 대구 삼성 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는 ABS가 스트라이크 판정을 한 공을 심판이 볼로 선언하고, 이를 은폐하려 한 정황도 드러났다.

NC가 1-0으로 앞선 3회 말 2사 1루, 선발 이재학은 이재현를 상대로 1스트라이크 0볼에서 2구째 시속 137km의 패스트볼을 던졌고 ABS 상에는 스트라이크로 나왔다. 그러나 심판은 스트라이크 콜을 하지 않았고, 뒤늦게 태블릿 PC를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NC 강인권 감독이 어필에 나섰다. 중계화면과 전광판에는 2스트라이크 3볼로 나왔으나, 사실 이미 삼진으로 끝났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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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강인권 감독(왼쪽)이 14일 대구 삼성전 3회말 2사 2루에서 ABS 관련 항의를 하고 있다.
심판진은 합의 끝에 NC의 어필을 기각했다. 규정상 다음 투구가 이뤄지기 전에 항의했어야 했으나 늦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NC는 "ABS 판정과 태블릿 PC가 평균적으로 15~20초의 딜레이가 있다"고 항변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심판진이 "음성은 분명히 볼로 인식했다고 들으세요(하세요). 아셨죠? 이거는 우리가 빠져나갈 궁리는 그거 밖에 없는 거에요"(이민호 심판)라며 은폐가 의심되는 발언을 했다.

공교롭게도 이후 이재학은 이재현에게 볼넷을 내준 후 구자욱의 1타점 2루타와 데이비드 맥키넌의 2타점 적시타로 인해 3점을 내주며 흔들렸다. 이어 4회에는 이성규(1점)와 김재상(2점)에게 홈런포를 허용한 후 이재학은 그대로 강판되고 말았다.

결과도 결과지만 심판들의 대화가 중계를 통해 팬들에게 퍼지며 논란이 됐다. KBO는 하루 만에 빠르게 움직였다. KBO 베테랑 심판들을 즉각 직무에서 배제하고 인사위원회에 회부해 구체적인 징계를 논의하기로 했다. 더불어 양 팀 더그아웃에서도 주심, 3루심과 동일한 시점에 스트라이크-볼 판정을 전달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음성 수신기 장비를 배치하기로 했다.

NC 강인권(52) 감독은 16일 창원 한화전을 앞두고 "인사위원회도 열리고 있고 한데 제가 그 부분을 다 말씀드릴 수는 없을 것 같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발생하기 전에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그런 상황을 만들었다는 게 많이 안타깝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어 "시범경기를 통해서 ABS에서 태블릿 PC로 전송되는 시간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며 "KBO에서도 분명 인식하고 있었고, 시즌이 시작하면 개선될 거라고 했는데 일찍 개선되지 않은 부분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KBO의 대책에 대해서도 "일찍 해주셨으면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으리라는 안타까움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강 감독은 "누구의 잘못을 떠나서, 그런 상황을 안 만들었어야 하는 게 맞다"고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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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이재학이 14일 대구 삼성전에서 4회 홈런 2방을 맞고 마운드를 내려가고 있다.
공교롭게도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이재학은 ABS에 호의적인 입장이었다. 시범경기 기간 이재학은 "사람이 볼 때는 놓치고 하면 감정이 있지만, ABS가 하니까 그 부분이 없다.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 하는 게 없어서 편하고 가볍다"고 말한 바 있다.

허구연 총재는 "구장과 그라운드 경사에 따라 ABS 존이 다르다는 이야기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선수들의 느낌일 뿐이다. 우리도 스포츠투아이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려 맞춰본 것이다. 구장마다 설치된 카메라 3대의 각도를 다 맞췄기 때문에 다를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여러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할 것이 아니라 정확한 수치를 통해 이해를 구해야 하는 게 맞다. 자칫 좋은 취지에서 도입된 ABS의 의미 자체가 퇴색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KBO에 필요한 건 자화자찬이 아니라 설득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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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ABS 스트라이크 존 기준. /그래픽=KBO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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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웅 | orionbear@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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