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지PD와 안재욱 첫만남 엔딩 신 구상

2일 종영한 드라마 ‘오!필승 봉순영’(KBS 2TV)은 푸근하면서도 정의로운 필승, 야무지면서도 심약한 유정 등 새로우면서도 생생한 인물형으로 불황에 지친 시청자들의 감성을 사로잡았다.
뿐만 아니라 빼어난 카메라 기법, 감각적인 영상미, 스피디한 진행, 코믹 터치 등 작품 전반 디테일 하나하나에는 입사 10년 만에 데뷔한 지영수 PD의 땀과 혼이 배어 있다.
첫 작품을 출산한 뒤 오만가지 심정이 얽혀 있는 지PD를 3일 종방연 자리에서 만나 연출 뒷이야기를 나눠 봤다.

드라마를 끝낸 심경은?
-극중 인물들 오필승, 봉순영, 윤재웅, 노유정이 내 맘 속에 계속 남는다. 어떻게 살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 진짜 이런 인물들이 있었던 것 같다. 한 명 한 명 다들 나름대로 아픔을 가진 인물이라 연민이 밀려든다.
‘필승은 부산에서 잘 살고 있을까’ ‘봉순영은 결혼했을까’ ‘노유정은 좋은 남자 만났을까’ 등 마음이 쓰인다. 다 잘 살 거라는 믿음을 가지려고 한다.
2일 마지막 분량을 급하게 방송한다고 정신이 멍했는데 하루 지나니까 이제 생각이 나고 그리워진다. 네 명 모두 애착이 가는 인물들이다.
어머니가 방송 끝나고 전화하셨다(어머니는 인천에 거주하시고 나는 목동 오피스텔에 나와 산다). ‘우리 아들 고생 끝나서 좋은데 아들 드라마 못 보는 것은 서운하다’고 하시는데 마음이 짠했다.
촬영 중 가장 힘들었던 때는?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지옥 같은 고생을 했다. 영업 피크 시간이라 협조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대사도 잘 안 들렸다. 반면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는 대사가 거의 없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부산 촬영 때 불어닥친 태풍 때문에 체류하던 송도 바닷가 모텔 삼층까지 파도가 쳐 급하게 차를 옮기는 해프닝도 있었다.
드라마 촬영지로 예전에는 백화점이 환영 받았는데 불황기를 맞아 발빠르게 할인점을 택했다는 해석도 있다.
-순영과 필승을 블루 칼라로 설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여주인공을 시장 바닥에 놓이면 그림이 안 된다.
그나마 도회적 공간이면서 삶의 터전으로 마트가 적절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필승은 마트 사장이 됐다.
극중 신회장(여운계)의 이미지는 신세계 이명희 회장에게서 따왔다는 얘기도 있다
-처음 듣는 말이다.
네티즌들은 극중 자막처리, 매회 끝부분 단색 톤의 회상 장면, 다양한 화면 분할 등이 일본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테크닉이라고 말한다.
-이 작품은 나만 만든 것이 아니다. 작가와 많이 의논했다. 자막 삽입 등은 작가 대본에 나와 있다

극중 재웅의 아이스하키 신이 일본 드라마 ‘프라이드’, SBS 드라마 ‘파리의 연인’을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있다.
-근사해서 차용한 게 아니다. 초반에 재웅의 역동적인 면을 살리고 싶었다.
축구는 이미지가 안 살고 럭비는 더위 때문에 연기가 안 돼 그나마 아이스하키는 좀 시원했다.(드라마 촬영은 여름에 시작됐다)
아마도 ‘프라이드’도 같은 이유로 아이스하키를 택한 게 아닌가 한다. ‘프라이드’ ‘파리의 연인’을 의식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비난을 감수하고 우리 드라마 자체에 충실하자는 대의를 살리기로 했다.
박진감 넘치는 드라마 전개에 비해 엔딩이 미흡하다는 중론이 있다.
-엔딩에 원래는 재웅도 한 신이 더 있고 필승의 자갈치 시장 신도 있는데 시간이 없어 다 못 찍었다.
또 마지막회 끝부분에 캐스팅 때문에 안재욱씨과 내가 처음 만난 장면을 넣으려고 했는데 그것도 결국 못했다. 이 장면은 안재욱씨와 오필승 인물이 만나는 순간이기도 해 꼭 넣고 싶었는데….

노유정 신드롬은 어떻게 보는가?
-박선영씨가 드라마에 플러스 역할을 하리라는 것을 막연히 기대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배역 자체가 좋아서였는데 다음엔 선영씨의 연기력이었다.
솔직히 안재욱과 노유정 춤추는 장면은 졸면서 찍었다. 그런데 편집하고 음악을 깔고 나니까 왜 시청자들이 노유정한테 반했는지 그제서야 알 것 같았다.
연기자들뿐만 아니라 시청자들도 14회에서 갑자기 재웅이 무릎을 끓는 등 갑자기 극의 개연성이 뚝 떨어졌다는 지적이 공통적이다.
-문제가 많았다. 최고그룹 신은 교보빌딩에서 촬영했는데 기업 이미지를 고려해 줘야 했다. 기업 이미지와 직결되는 오필승 이미지는 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재웅인데…. 순영이와 멜로라인이 너무 붙어버려 빨리 빼내야 했다.
드라마가 너무 김 빠지는 부분이 없지 않았다는 것 인정한다. 밝힐 수 없는 나름대로 아쉬운 사정도 많다.
평소 연출할 때 신경 쓰는 부분은?
-제가 예민해서 작은 것도 리얼리티를 깨는 것을 싫어한다. 드라마적인 걸로 넘어가는 부분도 있어야 하는데….
예를 들어 공중전화를 거는데 동전을 넣지 않았다, 통화 후 카드를 빼지 않았다 등에 집착해 작가와 출연자가 힘들어 하는 부분도 있다.
열린 결말로 설정한 이유가 있나?
-순영이 필승이 사는 부산행 티켓을 쥔다는 것은 완성된 결말이다. 웨딩 사진이나 약혼식 사진 등 기존의 상투적인 결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필승이가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오필승과 노유정의 결합은 고려하지 않았는지?
-필승이가 노유정에게 마음을 주면 멋진 인물이 아니다.
일편단심인 필승을 외면하고 순영이 다른 남자에게 가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화나고 반발하는 면이 없지 않다. 필승이 노유정과 잘 되면 웃기는 놈이 돼버린다.
필승이는 안재욱과 너무 잘 어울리고 생생한 캐릭터다. 혹시 실제 인물에서 따왔나?
-이전에 안재욱을 개인적으로 잘 안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안재욱이 연기를 잘 해서 필승이가 된 것인지, 아니면 안재욱이 실제로 원래 필승이와 비슷한 성격인지 내가 헷갈릴 정도다.
작가와 연출자가 공상으로 인물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필승을 그릴 때 오래 친하게 지낸 내 친구를 염두에 뒀다. 걔한테 이런 행운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열심히 살지만 되는 일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사람이다. 마음이 힘들고 슬픈 일 있어도 그는 농담을 하고 너스레를 떤다.
바닷가 부산을 필승의 고향으로 택한 이유는?
-제가 개인적으로 부산을 좋아하고 친한 친구가 있어 좀 아는 지역이다. 또 서울과 거리가 먼 느낌을 주지 않는가? 제주도는 이미 많이 나왔고….
인성 자체도 영남 사람이 액티브해 필승과 어울릴 것 같았다.
전 출연진이 입을 모아 지PD의 대화하는 연출법을 선호한다.
-저는 대화 많이 하기를 즐긴다 어떤 때는 연기자가 인물에 대해 더 잘 알 것 같은 믿음이 있다.
저는 평소 연기자에게 ‘그 인물을 연기하지 말고 그 인물 그대로 살았으면 하고 부탁한다.
아무래도 그 인물을 사는 사람이 나보다 더 잘 알지 않을까? 믿고 맡기면 ‘그러면 재웅이는 이렇게 할 것 같아요’ 같은 말을 우리 배우들은 자주 했다.
주인공 안재욱의 연기력에 대해
-재욱씨가 10개를 얘기하면 나와 9개가 맞아 이견이 거의 없었다. 생각이 다르면 서로 얘기를 많이 해 맞췄다. 재욱씨는 오필승이 되는 퍼펙트한 연기력을 보여줬다.
드라마를 꼼꼼히 보면, 재욱씨는 김밥집에 앉아 있으면 냅킨을 꺼내어 닦는다. 이건 밑바닥 인생의 특징이다. 또 그는 순영과 카페를 떠나면서 카운터에 돈을 낸다.
‘저 인간이 그 인물로 정말 살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다음 작품은 어떤 색깔일까?
-아직 확실히 정하지는 않았지만 다음에는 코미디는 아닐 것 같다. 정이 있고 따뜻한 인간 이야기는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우리 드라마는 그동안 외로워도 슬퍼도 기뻐도 펄펄 뛰지 않는 박제된 인물만 다뤄온 편이었다. 또 악다구니 쓰는 작품은 안 하고 싶다.
한참 뒤에 제대로 준비해서 ‘총알 탄 사나이’ 같은 류, ‘오!필승…’의 민전무 분위기의 코미디를 해보고 싶다는 바람은 있다.
혹시 무난하게 살아와 그런 것은 아닌지?
-살만큼 살고 겪을 만큼 겪었다. 미쳐버릴 것처럼 터뜨리고 싶은 욕구가 내 안에도 잠재한다. 하지만 드라마에는 알게 모르게 사회적인 묘한 중독이 있다.
남의 여자를 뺏는 드라마가 1~2년 판치면 그래도 되는 줄 아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기왕이면 건강하고 따뜻한 게 좋지 않은가?
사회적으로 사람들의 생활을 변질시키는 드라마는 안 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다. 만약 영화를 하게 된다면 미치도록 폭발하는 잔혹한 멜로를 하고 싶다. 맘만 먹으면 볼 수 있는 죽은 자의 컨셉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

지 PD는 듬직한 체격에 여린 감성을 지닌 찬찬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종방연 자리에서 얼굴이 살짝 불콰해진 어느 주연급 연기자는 “우리 감독님 배 너무 귀엽지 않아요? 아기 곰 푸우 같아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오!필승…’은 맛보기고, 그의 복중에 십년간 세심히 공들여 품어온 얘기 보따리를 조심스럽게 풀어 시청자 앞에 하나둘씩 펼칠 것 같다는 예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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