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뉴스 21주년 창간기획-월드와이드 K컬처]

더 이상 '두 유 노(Do You Know) 코리아'가 아니다. 이제는 전 세계 사람들이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를, 봉준호와 박찬욱을 이야기하고 있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이 세계를 휩쓴 후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브로드웨이의 전유물로 여겼던 토니상 작품상까지 받았다. K컬처는 나아가 K푸드로, K뷰티로 또 K여행으로 지평을 넓히고 있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 이후 '두 유 노 김치?'라는 밈이 생겼다면, 이제는 자신 있게 외국인들에게 물어볼 수 있다. '두 유 라이크 BTS?' 문화 콘텐츠 강국으로 거듭난 한국 K팝, K콘텐츠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한계와 극복 방안까지 고민해본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최근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본 영화 1위에 올랐다.(8월 27일 넷플릭스 집계 기준) 미국 회사에서 만든 한국 K팝 가수의 이야기인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이 K팝이나 K콘텐츠의 성공일까? 정부와 우리 콘텐츠 업계는 이 같은 흥행을 마냥 행복하게 바라볼 수만은 없다.
지난달 부산에서 열린 '국내 OTT·FAST 산업의 AI 혁신을 위한 현장 간담회'에서 최주희 티빙 대표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글로벌 흥행과 관련해 "뼈아프다"고 언급했다. 최 대표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같은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참 많이 든다"며 이같이 말했다. 류제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도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우리가 제작할 수는 없었을까 생각이 든다. 정부 입장에서도 가슴이 아프다"며 "우리 역량으로도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같은 작품을 만들어 생태계에 선순환 효과가 일어나야 한다"고 밝혔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일본 소니 그룹의 미국 자회사 소니픽처스 애니메이션이 제작하고 넷플릭스가 독점 배급한 애니메이션 영화로 한국계 캐나다인 감독 매기 강이 연출했다. K팝 아이돌이 주인공이다. 여기에 한국 전통문화까지 담겨 갓을 쓰고 도포 입은 사자보이즈가 전 세계 시청자를 열광하게 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이 K콘텐츠의 성공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영화의 스토리와 세계관의 중심에 K팝 걸그룹, 팬덤 문화, 무대 퍼포먼스 등이 배치되면서 K팝이 세계적인 스토리텔링 자원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또한 연관된 한국의 전통문화뿐만 아니라 한국 자체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이 높아지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우리는 왜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먼저 만들지 못했나"하는 업계와 정부의 목소리는 뒷북치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K팝과 K콘텐츠의 주인인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임은 분명하다.

◆韓 시장의 구조적 문제와 플랫폼의 한계..K팝·K콘텐츠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다
K컬처의 성장 뒤로 구조적 한계와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K드라마와 K팝이 세계 곳곳에서 흥행 성과를 올리고 있으나, 산업 전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K팝과 K콘텐츠는 성공과 동시에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고삼석 동국대 AI 융합대학 석좌교수(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는 스타뉴스에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에 대해 "K콘텐츠가 주도했던 한류가, 이제는 한국적인 소재를 한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단계까지 왔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한류의 성과를 높게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구조적 한계를 짚었다. 성공 뒤에 어두운 이면도 있기에 한류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현재의 한류에는 분명한 구조적 한계가 있다. 바로 K콘텐츠와 K플랫폼의 불균형한 성장이다. K팝, K콘텐츠의 첫 번째 확산 시기는 2010년 전후로, 유튜브 또는 네이버·구글 같은 인터넷 포털 기반으로 확산했다. 두 번째는 2019~2020년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OTT에서 전 세계적으로 소비됐다. 고 교수는 이 기간에 K콘텐츠 파워는 크게 성장했지만, K플랫폼의 성장세는 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현재 한국 콘텐츠 시장은 글로벌 플랫폼 의존 중심이다. 유튜브, 트위터 등 SNS를 통한 확산, 넷플릭스 중심의 K드라마 소비 등은 한류의 급성장을 이끌었지만, 한국 자체 플랫폼의 경쟁력 부재를 드러내기도 했다. 콘텐츠의 힘은 세계적으로 입증됐으나, 이를 뒷받침할 'K플랫폼 파워'는 여전히 취약하다.

이 같은 플랫폼 의존의 문제는 곧 국내 제작 생태계의 위축으로 이어졌다. 실제 콘텐츠 제작 기반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국내 영화 제작 편수는 급감했고,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의 드라마 편성 역시 줄었다. 이와 관련해 고 교수는 "제작 역량이 글로벌 OTT 중심으로 쏠리고 있다. 그래서 국내 미디어 생태계가 점차 자생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는 '일방향적 확산'이다. 고 교수는 "콘텐츠 수출과 진출에만 집중하다 보면, 일부 지역에서는 반한류 정서, 한류 거부감이 생기기도 한다"고 밝혔다. 일방적 공급 구조에 머무른다면, 한류의 성장은 지속되기 어렵다는 견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도 이런 점을 문제로 짚었다. 김 평론가는 "토종 OTT 등도 출범했지만, 어떻게 전 세계적으로 톱 플랫폼인 넷플릭스와 경쟁하겠나. 결국 CJ ENM도 전략을 바꿔 순차 공개에서 동시 공개로 가고 있지만, IP 확보 전략에선 여전히 취약하다"고 평가했다.
김 평론가는 넷플릭스에서 공개돼 큰 인기를 얻었던 '오징어 게임' 시리즈를 언급하며 "황동혁 감독이 넷플릭스에 IP를 넘겨준 것 같은 상황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 당시 국내에서는 '오징어 게임'을 제작하려는 곳이 없었고, 넷플릭스가 제작비를 일괄 지급했다. 글로벌 시장은 한 번 성공하면 가늠할 수 없는 수익을 낳기에, 결국 국내 제작·투자 환경을 고쳐야 지속 가능성이 커진다"고 강조했다.
K팝 한류의 흐름도 '국내'가 아닌 '해외'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 평론가는 "콘텐츠는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유통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K팝 같은 경우 해외 위주로 공연이 진행된다. 국내 공연은 사실상 없는 거다. 하지만 국내에서 공연해야 관광 등 다른 상품 서비스 파급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큰 공연을 할 수 있는 국내 공연장이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K팝의 위기? "변화의 시작", "더 큰 가능성 "
한류의 선봉에 섰던 K팝은 글로벌 정상에 서 있지만 이와 함께 위기론도 나오고 있다. 가요계 곳곳에서 국내 가수들의 실질적인 음반 판매량 성장세가 둔화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고, K팝이 해외의 일부 마니아만 향유하는 문화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케이팝 데몬 헌터스' 등의 흥행으로 비춰봤을 때 K팝은 더 이상 일부의 문화가 아니다. K팝의 선봉장인 플레디스 한성수 마스터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에서 보듯이 K팝을 더 이상 '일부 마니아만 향유하는 문화'라고 할 수만은 없다. 지금 K팝은 세계적인 팬층을 갖고 있고,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과 맞물려 팬덤 바깥으로 알릴 기회를 잡았다"며 "지금은 K팝의 위기를 걱정하기보다는 어떻게 더 많은 사람에게 K팝의 매력에 대해 알릴지 고민할 때다. 한국 문화와 K팝이 세계적인 관심을 얻고 있는 지금, 보다 매력적이고 혁신적인 창작물을 만들어 낸다면 K팝은 더 큰 가능성을 갖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른 가요 관계자는 "위기론은 이미 수년 전부터 업계에서 체감하고 있던 부분이다. 코로나 이후 1~2년간의 폭발적 성장은 특이 현상이었고, 지금은 시장이 성숙화되는 과정에서 현실적인 조정기를 맞고 있다고 본다"며 "톱 아티스트들의 개런티 상승과 함께 헤메코(헤어, 메이크업, 코디)를 비롯해 모든 부대비용이 따라 올라가는 상황인데,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 시장이 좀 과열된 부분도 있다. 하지만 견고한 팬덤 기반은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긍정적이니, 이제 업계 전체가 힘을 모아 적정선에서 조정하면서 저변을 넓혀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위기론이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를 '변화의 신호'라고 본다. 실질 음반 판매량 증가세가 둔화한 건 사실이지만, 이미 디지털 소비가 주류가 된 상황에서 음반 판매만으로 K팝의 성장을 평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최근 성공 사례인 '케데헌'(케이팝 데몬 헌터스)처럼 새로운 플랫폼과 장르를 통한 확장이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애니메이션, 드라마, 게임, 메타버스 등과의 협업을 통해 K팝은 일부 마니아 문화가 아니라 전 세계 대중문화의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또 음반 외에도 MD(굿즈), 공연, 팬덤 기반의 IP 비즈니스 등으로 수익 구조를 다각화할 수 있다. 특히 환경적 이슈가 커지고 있는 만큼, 피지컬 음반보다는 친환경적 디지털·경험형 콘텐츠가 점차 대체재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며 "결국 중요한 것은 'K팝이 전 세계에서 실질적인 가치를 창출하고 있느냐'다. 시대의 흐름과 각국의 특성을 반영한 새로운 수익 모델을 계속 실험하고 만들어간다면, K팝의 위상은 위기론이 아니라 오히려 또 한 번의 도약기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수익 모델에 계속 안주한다면 'K팝 위기론'이 현실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고 전망했다.
< 한국이 월드와이드 K컬처의 선봉장이 되기 위해서는 ④ [★창간 21] > 시리즈 기사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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