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나의 레슨실의 풍경은 점점 더 콤팩트해지고 있다.
한 곡을 완곡하는 일은 손에 꼽는다. 쇼츠(Shorts)와 릴스(Reels)가 일상이 된 시대처럼, 보컬 레슨 역시 필요한 1~2분, 혹은 하이라이트 구간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용음악 입시 역시 1분 남짓한 시간 안에 심사위원의 귀를 사로잡아야 한다. 어느새 우리 모두 '짧고 빠른 결과'를 향해 달리는 시대의 거대한 흐름 속에 타고 있는 듯하다.
짧은 시간 안에 직관적인 결과물을 내야 하기에 트레이닝의 과정도 자연스럽게 변했다. 학생마다의 특성을 고려해 빠르게 선곡을 커스터마이징한다. 사람마다 가장 매력적인 톤이 터져 나오는 '골든 보이스'의 음역대가 다르기에, 1차 선곡이 끝나면 의상을 가봉하듯 키(Key)를 맞추고 디테일한 방향을 수정한다.

이 과정은 매우 효율적이고 기계적으로 진행된다. 미디(MIDI) 프로그램이나 전조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하면 빠르게 작업할수 있다. 정교하게 제작된 MR은 정확한 리듬과 그루브를 익히기에 더없이 좋은 도구다. 빠르고 효율적이다. 나 역시 그런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러나 얼마 전 레슨 중 발생한 작은 변수를 통해, 효율성이 곧 최선의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깊이 느꼈다.
어제 레슨 한 학생중 한명은 집안 일정등으로 일주일간 전혀 연습을 해오지 못한 상태였다. 보통 이런 상황이 되면 학생들은 목이 아프다거나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레슨을 당일 취소하기도 한다. 그러나 완벽히 준비되지 않았음에도 레슨실로 향해 준 학생의 태도가 고마웠다.
나는 이런 변수에 대비해 늘 스페어(Spare) 수업 프로그램들을 준비해 둔다. 갑작스러운 감기로 목을 쓰지 못하거나, 연습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을 때 진행하는 가이드라인이다. 어제는 멜로디 카피와 스케치 과정을 레슨실에서 학생과 실시간으로 함께 진행했다.
평균적인 남자 키로 세팅을 맞추고, MR 대신 피아노 앞에 앉아 천천히 멜로디를 짚어가며 코드반주를 해주었다. 보통은 카피와 멜로디 연습은 학생이 1차적으로 혼자 집에서 해와야 하는 숙제다.

그러나 이 과정을 실시간으로 함께 하자 학생의 약점 혹은 어려워하는 부분이 명확히 눈에 들어왔다. 이 친구는 6/8박자의 곡에 멜로디 리듬을 파악하는데 유독 시간이 걸렸다. 4/4박자 곡에만 익숙해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트레이너로서 이건 의외의 수확이었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소리의 깊이감이었다.
6/8에 대한 기초설명과 부분연습을 마치고 어쿠스틱한 피아노 소리에 맞춰 느릿하게 노래를 부르는 과정에서 그동안 단 한 번도 낸 적 없던 '가장 질 좋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MR에 맞춰 노래할때 듣지 못했던 그 친구만의 날것 그대로의 매력적인 음색이 들렸다. 속도를 줄이고 템포를 유연하게 조율하는 과정에서 이 학생의 음색과 더불어 무드(Mood), 음악적 아우라(Aura)를 볼수 있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효율적인 시스템을 매우 선호하는 편이다. 종이악보보다는 패드를 선호하고 손글씨보다는 타이핑을 선호한다. 그럼에도 디지털 시대에 여전히 몽블랑 만년필이 존재하는 이유, 그 손맛이 주는 대체 불가능한 매력을 어제 레슨실에서 체감했다.
많은 것이 쇼츠처럼 빠르게 흘러가고 빠른 피팅과 기계적인 훈련이 대세가 된 세상이다. 하지만 때로는 기계의 속도에서 벗어나 피아노 한 대 앞으로 돌아가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타임키핑에서 벗어나 어쿠스틱한 하나의 악기 반주 위에 자신만의 호흡과 속도로 노래하며 음악적 주도권을 찾는 것에 대해 느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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