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dict
안전의 볼보가 조심스럽게 내놓은 XC90의 전기차 버전
Good
- 덩치와 무게가 무색한 기민한 거동과 출중한 출력
- 출력과 섀시의 조화가 만들어낸 핸들링이 흠 잡을 데 없다
Bad
- 1억 2120만원… 볼보코리아는 세계 최고수준의 가격이라고 소개했다
- 조신하게 운전했지만, 안전보조장치는 신경질적이고 예민했다
Competitor
- 현대차 아이오닉 9 : 더 '한국적' 승차감과 가속성능 그리고 UX와 공간가변성은
- 볼보 ES90 : EX90의 핵심 가치는 다 담았는데 가격은 초강력

플래그십이란 브랜드의 헤리티지와 미래를 나타내는 핵심 모델이자 정수다. 볼보는 XC90에서 EX90으로 브랜드 플래그십의 정체성을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이전했다. SDV로 나아가기 위한 볼보자동차 자체 개발 핵심 시스템 '휴긴 코어(Hugin Core)'를 적용했다는 것과 실내외 첨단 센서 세트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이를 지능형 정보로 전환한 후 주행 보조 시스템 학습한다. 쉽게 말해 볼보 EX90은 점점 더 사용자의 취향에 맞춰 발전하는 자동차라는 것. 이 차를 삼복더위를 버티며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서 원 없이 타봤다.

시승차로 나선 볼보 EX90은 7인승 트윈 모터 퍼포먼스 모델이다. 최고출력 680마력에 이르는 막대한 힘을 가진 차로 전후 전기모터를 장착하고 차체 하단부에 배터리를 배치한 전형적인 전기 SUV다. 볼보 90클러스터의 핵심모델이던 XC90을 전동화부문에서 계승한 만큼 XC90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을 터. 볼보 EX90은 전장 5,040mm 전폭 1,965mm, 전고 1,740mm다. 한마디로 더 낮고 더 크다. 여기에 프렁크 용량 46L를 더 갖췄고, 디자인도 새롭다.
볼보 XC90의 화제성에 힘입어 EX90은 등장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더군다나 중국 지리자동차가 볼보와 공동으로 개발한 전기차 전용 아키텍처 SPA2(Scalable Product Architecture 2) 플랫폼을 기반으로 제작했다는 점도 관심을 모았다. 이 플랫폼은 단순히 동력계통의 구조적 프레임을 제공하는 틀로서가 아니라 휴긴코어를 결합한 모듈형 플랫폼이다. EX90은 플래그십이기에 볼보가 가진 SDV 자산을 모두 보여줄 수 있다는 기대가 컸다. 플랫폼을 쓴 폴스타 3나 ES90은 받을 수 없는 기대다. 흡사 대감집 맏아들이 첫 사냥에 나설 때 피어나는 설레임처럼.


다만 볼보 EX90은 출시 초기 루프탑에 루미나(Luminar)사의 Iris 라이다(LiDAR) 센서를 탑재하여 완전 자율주행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쳤으나, 개발 지연 및 공급업체 문제로 여러 기능이 변경·제외됐다. 우리나라에 도입되면서도 마찬가지. 라이다 센서는 장거리 카메라 센서와 함께 빠졌다. 하드웨어가 사라졌으니 이를 기반으로 하는 소프트웨어는 설 자리를 같이 잃은 셈이다.
배터리는 중국 CATL의 대용량 NCM 배터리를 채택했다. 106kWh 용량이다. 800v 아키텍처를 썼고 DC 충전은 350Kw를 지원한다. 이를 기반으로 국내에서 받은 1회 충전시 주행거리는 448km. 차체 바닥에 몸을 낮춰 보면 거대한 배터리 팩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디자인은 기존 볼보의 것을 계승하면서도 전동화 요소를 가미해 전체적으로 하나의 덩어리로 된 유선형의 매끈함이 돋보인다. 볼보 아이언마크와 토르의 망치로 불리는 DRL 디자인은 헤리티지를 HD픽셀 라이트 기술로 앞과 뒤 램프를 구성한 것은 전동화를 반영해 미래지향적이다.

볼보 EX90의 백미는 실내다. 재활용 플라스틱 소재를 48kg이나 들여오며 친환경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고, 14.5 인치 센터 디스플레이, 9 인치 운전자 디스플레이,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등 3 개의 새로운 디스플레이와 통합되어 필요한 정보를 적시에 확인할 수 있는 차세대 사용자 경험 '볼보 카 UX'도 환상적이다.

칭찬을 아끼지 않을 부분은 시트다. 나는 개인적으로 볼보는 지난 12년간 소유하고 있는데 단 한번도 불만이 없었다. 그런데 EX90의 시트는 내 오래된 볼보보다 4배정도 더 좋다. 좋은 시트의 감각적 표준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리고 이 시트가 3열까지 이어진다. 3열을 다 세우면 트렁크 공간이 약간 손해를 보긴 하지만 흉내만 낸 3열은 아닐 정도로 본격적이다.
시승하던 날은 폭염중대경보가 울려대며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그야말로 '백주대낮'이었다. 일렉트로크로믹 글라스 루프는 볼보EX90의 광활한 지붕을 덮고 있으면서도 실내로 들어오는 자연광을 산뜻하게 막아냈다. 버튼 하나로 투명도를 조절할 수 있어 조작하기도 수월했다.

시승구간은 대체로 평이했다. 서울의 도심구간과 외곽순환도로를 거쳐 국도를 타고 경기도 인근 카페를 왕복했다. 시동음은 전기차답게 아예없고,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순간에 타이어 소음만 가득하다. 600마력 후반대의 고출력 차량이지만 저속에서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추진력이 더 돋보인다. 앞(47%)보다는 후방(53%)이 약간 더 무겁게 셋팅한 탓인지 차량 앞면이 들릴 듯 하지만 신경을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쭉 뻗은 도로를 만나 이내 가속을 해보니 단절감없이 속도를 쭉 끌어올리는 맛이 상쾌하다. 변속도 없고, 힘의 단절도 없다. 밟는 순간만큼 계속 속도는 상승했다. 제동의 순간에 머리를 아득하게 만드는 어지러움도 2열은 물론 3열에서도 없었다. 회생제동은 매끄러움보다는 효율에 집중한 것이 분명하다. 작동여부와 기능만 확인해 보고 말았다. 전통적인 풋 브레이크를 추천한다.

볼보 EX90 주행능력의 포인트는 회전구간에 있었다. 볼보 EX90은 플래그십 SUV답게 에어 서스펜션을 갖추고 있었는데, 격한 회전으로 차체를 코너에 내던져 봐도 노면을 놓치는 일이 없다. 본격적으로 섀시 튜닝에 대해 고출력 전기차임을 감안하고 충분히 다져낸 결과이리라. 최근 덩치가 크고 출력이 높은 전기차들은 이 정도로 차를 작정하고 거칠게 굴려보면 어색하고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마는 구간이 툭툭 불거져 나온다. 하지만 볼보 EX90은 대체로 이런 면에서 합격점을 줄 만큼 핸들링의 조화가 탁월했다. 굽이치는 도로를 만나면 호기심부터 샘솟는다.

솔직히 볼보 EX90이 SDV로서 어떤 역량을 갖고 있는지 찾았지만 아쉽게도 발견하는데 실패했다. 볼보 EX90은 스티어링 휠 뒤에 설치된 센서는 눈의 움직임을, 중앙 스피커 부근에 설치된 센서는 머리의 움직임을 감지해 운전자의 컨디션이 최상인지 아닌지를 파악한다. 하지만 무더위에 어지럽힌 나의 컨디션에 대해선 어떤 알림도 받지 못했다. 경고 수준까지는 아니었나 보다.

시승을 마친 후 EX90은 전기차로서 정말 풍부한 감각적 만족감을 남겼다. SDV로 앞으로 어떻게 더 발전할 지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말의 숙제가 덜 끝난 느낌이랄까. 충전의 부담이 썩 말끔하게 사라진 사람이 아니라면 여전히 XC90을 끄적여 보겠지만 EX90은 XC90의 빈자리를 채울 훌륭한 전기차다. 안전과 편의성 그리고 소재의 친환경성 등에서도 이 차는 XC90에 비해 한층 더 진일보한 면모를 보여줬다. ES90으로 이어지는 볼보의 플래그십 라인업은 이제 완성의 단계에 올라섰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에게 EX90이 어떤 평가를 받을 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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