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레슨실에서 서로 다른 노래를 연습하던 학생들에게 연달아 비슷한 질문을 들었다.
"장르가 뭐예요?"
"장르라는 것에 대해 알고 싶어요."
"제가 장르라는 걸 잘 모르고 노래하는 것 같아요."
한 명은 아프로비츠(Afrobeats)의 영향을 받은 곡을 연습하고 있었고, 한 명은 R&B 곡을 카피하고 있었다. 또 다른 한 명은 공연을 위해 록 음악을 연습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저마다 음정과 박자를 틀리지 않으려고 멜로디를 열심히 익혀왔다. 하지만 노래의 '맛'이 살지 않았다. 틀린 곳은 특별히 없지만 그 음악 특유의 분위기가 들리지 않는 것이다.
이럴 때 나는 장르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이 곡은 R&B니까 리듬을 조금 뒤에 기대듯 레이드백(lay-back)해서 불러보면 좋겠어." "이 곡은 아프로비츠의 영향을 받은 곡이니까 멜로디만 따라가기보다 비트 안에서 리듬의 움직임을 더 세밀하게 느껴보자." 발라드라면 음 하나하나를 끊어내기보다 긴 프레이즈의 흐름을 만들어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면 조금씩 노래가 달라진다. 그리고 그때 학생들이 묻는다. "아, 그게 장르예요?" 노래를 열심히 연습했어도 노래가 평면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있다.

보컬 레슨에서 흔히 접하는 대중음악의 가창용 악보에는 대개 멜로디와 리듬, 가사가 중심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실제 가수가 한 곡 안에서 사용하는 모든 표현을 악보가 담아내지는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는 생략이고, 또 다른 의미에서는 여백이다.
같은 음표라도 어디에 악센트를 둘 것인지, 음의 길이를 어떻게 조절할 것인지, 비트보다 조금 앞에서 부를 것인지 뒤에서 부를 것인지, 자음을 얼마나 강하게 사용할 것인지, 모음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에 따라 노래는 전혀 달라진다. 소리를 거칠게 사용할 수도 있고, 숨을 섞어 부드럽게 만들 수도 있다. 악보의 여백은 보컬의 해석으로 채워지며 완성된다.
나는 이 과정을 평면의 멜로디를 입체적인 음악으로 만드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악보에 그려진 멜로디가 기본적인 설계도라면, 보컬은 그 위에 프레이징과 리듬, 딕션, 강약, 음색과 같은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을 더해 실제의 음악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그 수많은 선택을 안내하는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장르다. 같은 멜로디라도 R&B로 해석하는지, 록이나 힙합의 문법으로 접근하는지, 발라드의 호흡과 프레이징으로 풀어내는지에 따라 리듬을 타는 방식과 발음, 음색, 소리의 무게가 달라진다. 그래서 멜로디와 음정만 열심히 연습하다 보면 틀린 곳은 없는데도 이상하게 '그 음악답지 않은' 노래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장르마다 왜 서로 다른 문법이 생겼을까. 누군가 어느 날 R&B는 이렇게 불러야 하고, 힙합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정해놓은 것은 아니다. 장르는 특정 시대와 지역, 그 음악을 만들고 향유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 오랜 시간 형성되어 왔다. 블루스와 힙합의 역사는 미국 흑인 공동체의 역사적·사회적 경험과 떼어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라틴 음악 역시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 지역의 다양한 문화와 음악적 전통 속에서 발전해왔다. 컨트리 또한 미국의 특정 지역과 공동체의 삶, 문화적 이미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성장했다. 그런 점에서 장르는 때로 음악적 스타일을 넘어 한 공동체의 정체성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다른 문화권의 음악가가 특정 장르의 표현을 차용할 때는 단순히 새로운 사운드를 가져오는 것 이상의 문제가 따라오기도 한다. 그 음악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사람들의 경험과 역사 속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 역시 장르를 이해하는 일의 일부다. 그렇다고 장르가 서로의 경계를 지키기만 해온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중음악의 역사는 서로 다른 음악이 만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온 역사이기도 하다. 우리가 흔히 '크로스오버'라고 부르는 현상 역시 그 과정의 하나다. 장르는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지니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장르와 만나 변화해왔다.

최근의 대중음악에서는 이러한 경계가 더욱 빠르게 움직인다. 한 곡 안에서도 서로 다른 지역과 시대에서 출발한 음악적 문법이 만나고, 때로는 몇 개의 장르가 짧은 시간 안에 교차한다. 특히 여러 장르의 문법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결합하는 K-POP을 노래하는 보컬에게는 이제 장르를 이해하고 구별해내는 귀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장르를 공부한다는 것은 R&B 가수처럼 부르고, 록 가수처럼 소리 내고, 특정 장르의 대표적인 창법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장르는 공식이라기보다 음악을 이해하기 위한 문법에 가깝다. 문법을 모르면 문장을 만들기 어렵지만, 같은 문법을 배웠다고 모두가 똑같은 문장을 쓰는 것은 아니다. 보컬도 마찬가지다. 먼저 장르의 문법을 이해하고, 좋은 음악을 반복해서 들으며 그 문법을 귀와 몸으로 익힌다. 그다음에는 그 안에서 무엇을 취하고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원곡 가수의 프레이징과 음색을 그대로 복제하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불렀는지를 이해한 뒤 나는 어떻게 부를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처음 학생이 했던 말이 다시 생각난다. "제가 장르라는 걸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단순히 장르의 명칭이나 특징을 잘 모른다는 뜻처럼 들렸다. 하지만 어쩌면 그 질문은 조금 더 본질적인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저는 아직 이 음악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내 노래가 왜 이렇게 밋밋한지 고민해본 적이 있다면 악보 위의 음표만 바라보기를 잠시 멈춰보자. 내가 부르는 음악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어떤 리듬과 정서를 품고 있는지, 그 장르의 다른 음악들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먼저 들어볼 필요가 있다. 장르의 문법을 배운다는 것은 악보라는 평면 위에 놓여 있던 멜로디에 입체적인 결을 더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그 문법을 배우는 목적은 누군가를 그럴듯하게 흉내 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 음악의 언어를 이해한 뒤, 그 안에서 자신의 표현을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 그때 노래는 비로소 '그 음악답게' 들리면서 동시에 '나답게' 들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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