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폰 화면을 살며시 넘기는 손가락 끝에서 시작된 클릭 하나가 청소년의 일상을 송두리째 흔드는 시대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한 번의 터치는 빚과 거짓말, 절망으로 이어진다. 최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2026 청소년 도박문제 포럼'은 그 서늘한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자리였다. 불법도박 광고 노출률 54%, 경험 청소년 16만 명이라는 실태조사 결과는 이것이 개인의 일탈이 아닌 사회적 위기임을 고발한다.
더 두려운 것은 도박이 초등학생의 일상까지 파고들었다는 사실이다. 드라마 '참교육' 속 고등학생이 팝업 광고에 속아 불법도박에 빠지고 대포폰까지 동원하는 모습은 현실과 판박이다. 나는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사무처장으로서 예방과 치유, 감시와 단속에 적극 힘써왔으나, 진화하는 불법도박 사이트를 따라잡기엔 현행 제도만으로 한계가 있었음을 솔직히 인정한다. 국회에 계류 중인 불법도박 관련 법률안이 조속히 통과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날 포럼에서 내 마음을 가장 오래 붙잡은 것은 숫자가 아닌 열일곱 살 청소년의 한마디였다.
"청소년 도박 문제를 해결하려면, 뜻있는 청소년들이 직접 참여해 판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동안 어른들은 보호라는 명분 아래 아이들을 문제의 대상으로만 두고 위에서 해법을 내려주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우리 문제를 우리 없이 해결하지 말아 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아이들을 단순 보호 대상으로만 제한할 때, 스스로 헤쳐 나갈 '주체성'을 빼앗게 된다.

지금 도박의 유혹에 흔들리거나 홀로 번민하는 청소년이 있다면 꼭 전하고 싶다. 당장 손 안의 화면을 끄고 밖으로 나가 운동장을 크게 한 바퀴 달려보라.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달리고 나면 모니터 속 가짜 숫자의 허무함과 내가 딛고 선 진짜 세상의 소중함이 느껴질 것이다. 혼자 고민할 필요 없다. 도움을 청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어른들은 언제든 손잡을 준비가 되어 있다.
해법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미디어와 교육 당국의 책임도 막중하다. 언론 보도가 자칫 호기심이나 모방심리를 자극하지 않도록 '도박문제 보도 가이드라인'을 새로이 마련하고 철저히 준수해 나갈 필요가 있다. 교육 현장 역시 기존 금융경제교육의 한계를 재검토하여 건전한 금융활동과 도박위험 인식을 함께 가르치는 촘촘한 안전망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참교육의 출발점은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는 아이의 손가락 끝에 있다. 위험한 링크를 누르지 않도록 막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왜 위험한지 스스로 판단하고 멈추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아이들을 어둠 속에 가두지 않고 문제 해결의 주체로 믿어주는 것,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에 먼저 귀 기울이는 것에서부터 진짜 교육은 시작된다.
이진식 국무총리 소속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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